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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문화!

산사에서 나를 찾다

 

2010년 3월 10일. 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 일생동안 무소유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또 버리며 홀로 산사에 은거해 왔던 법정스님. 그러나 그는 언제나 시대와 함께였다. 그는 펜을 들어 우리와 만났다. 때때로 그는 날카로운 펜 끝으로 어리석게도 소유와 발전만을 집착하며 스스로 소유한 것에 소유당하고 마는 우리들을 꾸짖었다. 그리고 때로는 세상이 주는 수많은 번뇌의 고통으로 발버둥 치던 우리의 영혼을 묵묵히 위로 했다. 

또한 그는 떠나면서 우리들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법정 스님의 입적 이 후, 많은 이들이 스스로 어쩌면 살면서 한번 도 해보지 못한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따금 본능이 이끌어온 삶에 대해 스스로 환멸을 느끼게 하기도 하였다. 법정스님은 불교계의 큰 거목이기도 했지만 종교를 불문하고 존경받는 시대의 참 어른이기도 했다. 그는 불교가 가진 자비정신으로 다른 종교들과도 벽을 허무는 큰 발자취를 남겼다. 실제로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의 조각가가 바로 독실한 천주교신자였던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였고 김수환 추기경과 깊게 교제하며 명동성당에서 강론을 하기도 하였다.

금선사로 들어가는 길 ⓒ 정하늘 

법정 스님의 입적은 결국 그의 정신과 가르침을 국민들이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불교를 하나의 종교가 아닌 '문화‘로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화로서의 불교’를 직접 느끼고 종교를 막론하고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불교의 메시지를 찾기 위해 기자는 직접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산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숲, 바람, 계곡, 그리고 산사

금선사에서 내려다본 서울 도심 ⓒ 정하늘

아이러니 하게도 어지럽고 복잡한 서울 도심 한가운데의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고즈넉한 산사인 금선사. 사찰을 둘러싼 소나무 숲에서 바람을 따라서 은은히 전해지는 솔향에 벌써부터 머리가 맑아온다. 이번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기자를 비롯한 일곱명의 여성 참가자들은 도착 하자마자 내다보이는 반대편의 화려한 도시를 바라보며 마치 맞추기나 한 듯 모두 입을 모아 감탄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법은 스님의 안내에 따라 절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 정하늘

이틀 간의 일정을 이끌어갈 법은 스님이 참가자들을 이끌고 가장 먼저 절 곳곳을 돌며 소개해주었다. 600년의 시간을 지켜왔다는 사찰. 사찰의 공간적 정의는 문화적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단지 불교의 종교적 행위를 위한 장소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수백년 또는 수천년의 역사를 머금은 소중한 공간으로서의 그 의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절은 고궁과 또 그 의미를 달리한다고 한다. 둘 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지만 고궁이 단지 과거만 존재하는 시간이 멈춘 공간이라면 사찰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 이루어진다. 바로 살아있는 문화가 존재하는 곳,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모두 녹아내린 사찰에서 우리는 공존하는 시간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사찰 그대로의 공간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면 생활에 쫓겨 사는 현대인이 도시의 삭막함에서 잠시 벗어나 조용히 잊었던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사찰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더욱 소중해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깨어있는가? - 내 안의 작은 문을 열다

조그마한 것에서 잔잔한 기쁨이나 고마움 같은 것을 누릴 때, 그것이 행복이다 -법정스님- ⓒ 금선사

본격적으로 불교문화체험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절하는 법을 배운다. 사찰에서의 ‘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인사와 같이 매우 평범하며 또 가장 많이 쓰이기에 불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 종교를 가진 사람은 처음에 큰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절은 온몸을 바닥까지 낮추는 행위로 본질적으로 결국 가지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절하는 법을 알려주던 법은 스님은 스스로 우리를 향해 절을 하며 말했다. 

“일상생활도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은 절대 손해가 아닙니다. 칼날같이 자존심을 세울수록 결국 자기 자신은 한없이 낮아지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무한히 낮추다보면 그만큼 올라가게 되지요.”

단무지로 모든 발우를 깨끗이 헹구고 난 후 ⓒ 정하늘

‘발우공양’이란 수행하는 스님들의 전통 식사법이다. 수행자의 자세로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무소유의 불교정신을 직접 실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체험중의 하나이다. 먼저 줄을 맞추어 정돈된 자세로 않아 자신의 4가지 ‘발우’를 가지런히 펼쳐놓는다. 이후 각 줄에 있는 수행자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서로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며 음식은 절대 남기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자신이 먹을 만큼만 덜어 먹는다. 이 때 특히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들이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후 식사가 시작되면 상대방에게 음식을 씹는 모습을 보이거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밥그릇으로 얼굴을 가리고 온전히 밥을 먹는다는 것에 집중하여 식사를 마친다. 이제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과정은 물과 단무지를 이용하여 밥그릇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국그릇까지 모든 그릇을 헹구는 것이다. 그리고 오독오독 단무지를 씹어 먹고 헹군 물을 숭늉과 같이 맛있게 마신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은 자기 자신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한 모든 이들을 생각한다. 한 참가자는 말했다. '한 끼의 식사를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고. '정말 간소한 듯 했지만 결국 가장 풍성한 식사'였다고.

말은 생각을 일으키고 정신을 흩뜨려 놓는다. 우주의 언어인 거룩한 그 침묵은 안과 밖이 하나가 되게 한다 -법정스님- ⓒ 금선사

불교에서의 ‘참선’이란 일반적인 의미로 표현하면 명상과 같다. 참선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본 마음’ 즉 ‘참된 나’를 밝히는 시간이다.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상과 같은 바른 자세로 이 시간 만큼은 모든 근심, 걱정, 생각들을 멈춘 채로 오직 자신의 호흡에 집중한다. 처음 시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미 바쁜 일상에 한 순간도 걱정을 놓지 못했던 우리의 뇌는 1분도 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사실 가장 쉬운 듯 하지만 참으로 집중하기 어려운 참선을 통해 그동안 마음속 무거운 짐으로 내가 얼마나 내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여러 가지 뒤죽박죽 복잡한 생각들 속에 파묻혀 만날 수 없었던 내면 속 자아와 만나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기에 일상으로 지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


과거나 미래 족에 한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 -법정스님- ⓒ 정하늘

템플스테이의 마지막 일정으로, 마치 풍경처럼 든든히 금선사를 둘러싸고 있는 북한산에 올랐다.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것이 얼마만인가. 극심한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은 기자는 신나서 앞장섰다. 하지만 경사가 급해질수록, 나타나는 바위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온몸을 떨어 마치 충실히 문자 메시지의 수신을 알려주는 휴대폰이 된듯이 덜덜 떨며, 맨 뒤로 뒤처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평소 고무신을 신고 북한산 정상에 자주 오르시던 스님과 다른 일행들의 도움으로 일생의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스님의 말씀대로라면 정상 한가운데의 소나무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 제 발로 불교를 알기위해 산사를 찾아온 템플스테이 체험자들 아닌가.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소나무 아래 차례로 앉아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시작했다. 그리고 참선이 끝날 때 즈음 이틀간의 일정을 이끌어온 법은 스님께서 멀게 펼쳐진 도심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이제 사바세계(일상)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우리는 보통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늘 현재에 깨어있으세요. 매 순간, 지금 이 순간을 사시길 바랍니다.” 

산사에서 길을 묻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이다. -법정스님- ⓒ 정하늘

우리는 매일 불안과 슬픔을 느낀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틈나는 대로 두려움과 걱정을 느낀다. 왜냐하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를 생각하느라 마음이 바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끊임없는 욕심과 미련 때문이다. 법정스님은 이런 우리들에게 말했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고. 그리고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고. 이것이 바로 불교의 가르침이 주는 무소유의 정신이다.

‘늘 현재에 깨어있으라.’ 이것은 불교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실제로 템플스테이를 통해 체험한 모든 활동들은 일상과 관련이 있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일상에서 충분히 실천 할 수 있는 활동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침묵’이었다. 침묵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집착을 잠시 벗어나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템플스테이는 이렇듯 일상에서 잊어버린 전통문화의 향훈과 자연과 하나 되는 마음자세에서 본래 내 모습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마음의 풍요로움을 갖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생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종교를 초월하는 감동과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 지친 그대여, 모든 상념은 잠시 잊고 자연의 풍경소리와 함께 산사에서의 하룻밤 어떠한가. 

한 줄 에필로그

마음이 열리면 사람과 세상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 진다 -법정스님- ⓒ 정하늘

템플스테이를 통해 나는 내 자신을 찾았다. 그리고 사람을 얻었다.

글/정하늘(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