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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백제인들의 장인정신을 배우자

 

백제인들의 찬란한 장인정신은 천4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거울처럼 빛나고 있다.

 지난 1965년 익산 왕궁리유적(사적 제408호) 5층 석탑(국보 제289호) 지붕돌에서 놀라운 유물들이 발견됐었다. 화려한 무늬의 금사리함, 얇은 금판에 새긴 금강경판, 아름다운 색과 균형미를 갖춘 유리사리병 등 이들 사리장엄구는 나중에 국보 제123호로 지정되면서 통일신라의 유물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그러나 유물을 발견한 지 40 여년이 지난 최근, 왕궁리 석탑 금제품은 통일신라의 것이 아닌 백제인들의 걸작이란 연구 결과가 나와 흥미를 끌고 있다. 

 금사리함 연꽃 무늬가 사비시대 다른 유물의 무늬와 비슷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백제에서 만들었다는 추정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는 국내 최고(最古)이자 백제 유일의 사리장엄구가 되는 셈이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왕궁의 공방’이란 책자를 통해 왕궁리유적의 공방 유적에서 출토된 도가니와 금제품의 성분과 제작 기법 등을 분석, 최고 기술을 가진 백제 장인 집단이 이 사리장엄구를 만들었다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금사리함 연꽃 무늬는 백제 사비시대에 유물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문양과 동일하기 때문에 사리장엄구의 제작 연대를 백제 무왕대에 해당하는 7세기 전반기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왕궁리 공방 유적에서 나온 금아말감과 금은아말감 덩어리를 중요한 증거로 꼽았다. 금-수은이 2대 8의 비율로 나온 게 바로 그것이며, 석탑에서 나온 유물들이 모두 도금 기법을 사용해 1400여 년간 눈부신 금빛을 지킬 수 있었던 것. 

 숯불에 도가니를 올려놓고 풀무질로 양질의 순금을 정련하는 등 장인들은 구리 주석 납의 함량을 조절해 순동 청동 황동까지 따로 만들어내는 등 고도의 세공 기술을 보유했음을 입증 할 수 있게 됐다.
 
 백제인들의 장인정신을 오늘을 살아가는 사회 전반에 도입,확대한다면 날림 공사, 대충대충 문화가 생활 주위에서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입력 : 2007-07-10 11: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