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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범종 꼭대기에 용머리를 붙인 까닭

 

 

 상원사 동종(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상원사, 국보 제36호)은 경주 성덕대왕 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을 새겼다.

 우리 전통 범종의 꼭대기를 보면 용머리 모양의 고리가 달려 있다. 용뉴(용 꼭지,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함)라 하는 이 고리를 만들어 붙인 것은 당연히 종각(鐘閣)에 종을 걸기 위해서다. 

 용뉴는 용의 모양을 취한 범종의 가장 윗부분으로, 이곳에 쇠줄 등을 연결하여 종을 매달게 된다. 즉 용뉴란 ‘용의 모습을 취한 고리’라는 뜻이다. 범종을 ‘경종’, ‘장경’, ‘화경’이라고 하는 까닭도 포뢰용을 겁주어 더욱 훌륭한 종소리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종의 고리가 하필이면 왜 용 모양일까. 종과 용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중국 명대의 호승지(胡承之)가 쓴 ‘진주선’에 따르면 초능력과 권위를 지닌 용에게는 아홉 아들이 있었다. 비희, 이문, 포뢰, 폐안, 도철, 공하, 애자, 산예, 초도 등. 이들은 각기 성격과 특성이 달랐다.

 그 아들 중 하나인 포뢰는 울기를 잘해 소리가 우렁찼다고 한다. 이 포뢰야말로 소리를 내야 하는 종에 안성맞춤이었다. 범종 꼭대기에 용이 올라앉게 된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문화재 이야기 보는 즐거움, 아는 즐거움’)

 바닷가에 살던 이 포뢰는 또 고래를 무척이나 무서워했다. 고래가 다가오기만 하면 놀라서 큰 소리를 질렀을 정도였다고 한다.

 종을 치는 막대기(당목)도 원래는 고래 모양으로 만든 나무였거나 고래뼈로 만든 것이었다. 이는 고래로 종을 두드려야만 종 꼭대기에 앉아 있는 용(뱀의 몸매에 잉어 비늘, 시슴의 뿔, 토끼의 눈, 소의 귀, 뱀의 이마, 배 발톱, 범 발바닥을 취한,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날아 다닐 수 있는 용의 모양)이 무서워 종소리가 크게 울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종 머리에 포뢰를 조각하는 것은 고래를 만난 용이 크게 울듯, 종소리가 크고 우렁차게 울려야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부처의 뜻이 만방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지 않겠는가.

 절에 가면 기념품처럼 범종 하나씩은 있는데 종의 윗부분에는 용두라는 게 조각되어 있다. 그 녀석이 바로 포뢰다.

성덕대왕 신종(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제29호)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8.9톤으로 확인됐다.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 만들어진 종으로 화려한 문양과 조각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다. 또한, 몸통에 남아있는 1,000여자의 명문은 문장뿐 아니라 새긴 수법도 뛰어나, 1천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오고 있는 문화재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 신종이라고 불렀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따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용뉴는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종 몸체에는 상하에 넓은 띠를 둘러 그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종의 어깨 밑으로는 4곳에 연꽃 모양으로 돌출된 9개의 유두를 사각형의 유곽이 둘러싸고 있다.

 용주사 범종(경기도 화성시 태안면 송산리 용주사, 국보 제120호)은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종이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 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어깨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있다. 아래 위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이 띠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과 한 면이 붙어 있다.

 전등사 범종(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 보물 제393호)은 일제시대 말기 금속류의 강제수탈로 빼앗겼다가 광복 후 부평군기창에서 발견하여 전등사로 옮겨 현재까지 보존하고 있다.

 종 꼭대기에는 두마리의 용이 서로 등지고 웅크려서 종의 고리를 이루고 있으나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은 없다. 몸통 위 부분에는 8괘를 돌려가며 나열하고, 그 밑으로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8개의 정사각형을 돌렸다.

 의왕 청계사 동종(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청계사, 보물 제11-7호)은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 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마리의 용이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와 종 입구부분에는 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가 있다. 어깨 띠 아래로는 연꽃 모양의 9개의 돌기가 사각형의 유곽 안에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들이 서있다.

 서울 보신각종(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2호)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칠 때 사용됐다.

  이 종은 2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원형에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명문(銘文)이 남아 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금산사 방등계단(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 보물 제26호, 수계의식을 집전하던 것이 방등계단(方等戒壇)이다)은 경내의 송대(松臺)에 5층 석탑과 나란히 위치한 석종으로, 종 모양의 석탑이다.

 석종형 탑은 인도의 불탑에서 유래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외형이 범종과 비슷해서 석종으로 불리운다.

 기단의 각 면에는 불상과 수호신인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특히 아래 기단 네 면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돌기둥이 남아 돌난간이 있었던 자리임을 추측하게 한다. 난간 네 귀퉁이마다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넓적한 돌 네 귀에는 사자머리를 새기고 중앙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판석 위에는 종 모양의 탑신이 서 있다. 꼭대기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머리를 밖으로 향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고 그 위로 연꽃 모양을 새긴 2매의 돌과 둥근 석재를 올려 장식했다. 이 탑은 가장 오래된 석종으로, 조형이 단정하고 조각이 화려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