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산하에 간간이 눈발이 날립니다. 채 녹지 않은 설경은 이내 마음을 황홀경으로 이끌고 있네요. 집 옆의 소나무 가지들이 천근만근 눈의 무게 때문에 활처럼 휘어져 장관이랍니다. 울 안 잎을 떨군 나무들의 가지 위에도 휘게 백설기마냥 쌓이고 있습니다. 이에 질세라, 절 주변에 우뚝 솟은 삼나무는 묵묵히 눈을 맞으며 강한 자태를 뽐냅니다.
얼키설키 풍광에 ‘세월의 낚싯줄’을 곱게 드리운 채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아름다움이 머물다가는 모악산 너머의 계곡, 흐르는 물소리는 한굽이를 돌 때마다 ‘설국(雪國)’으로 변신을 거듭합니다.
새들이 노래하는 잔뜩 구름 낀 하늘, 웅장한 모악산은 분명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남쪽으로 끝없이 뻗어 있는 백두대간의 허리를 곱디곱게 마름질한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신전마을.
일명 신뱅이골로 통하는 이곳에서 한국화가 춘보 이형수씨(한국전업미술가협회 전북지회 고문)는 빼꼼한 하늘를 빼곤 모두 다 하얀 나라인 세상에서 ‘꿩’을 통해 화목한 가정 이야기와 세상사를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행복 바이러스’를 널리 전파해온 작가는 특히 올해는 모든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더 더욱 웃음꽃을 피우라네요.
‘꿩’ 작가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작가는 ‘꿩’의 일상을 담아내기 위해 오늘도 ‘느린 호흡’을 하고 있답니다. 대금이나 피리소리 한 곡조 들리지 않는데도 ‘호호부실 인인화락(戶戶富實 人人和樂)이며 여의주(如意珠)라’
“우리 조상들은 겨울에 눈을 피해 민가로 내려오는 산짐승을 잡지 않고 먹이를 잘 먹여 돌려보내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노루, 산토끼, 꿩 등이 눈 덮인 산중에서 먹을 것이 없어 마을로 내려오면 동네 사람들은 산신령이 딱하여 내려 보낸 것으로 여겨 해치지 않고 잘 먹여 돌려보냈답니다. 이는 시련을 겪는 동물들을 잡아먹거나 해치면 재난을 당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이 겨울이면 간혹 꿩들이 집안으로 날아들곤 합니다. 작가는 외진 모퉁아리 토방 한 군데 눈을 치워버리고 보리쌀 한 줌을 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몇 번 쪼아보고는 낱알이 제 먹기에 너무 큰지 먹질 않아 상심한 적이 여러 번입니다. 너무 귀여워서 만져 주려고 가까이 가니 해치려는 줄 알고 재빠르게 달아나 버릴 때 갖는 서운함이란.
“꿩은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암컷이 반할 만한 화려함을 갖추고 있어야 하죠. 그래서 꿩은 암컷보다 수컷이 훨씬 화려하고 동작도 크고 무늬도 많은 것입니다”
‘내가 산을 내려갈 때, 당신은 산을 오르시고 있나요. 건너편 골짝의 장끼 울음 울린 곳만큼 벌써 가까이 오시고 있나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모악산 자락에 터를 잡은 것도 꿩그림을 그리기 위한 계획된 포석인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자연을 벗삼아서 인가요. 꿩은 물론 풍경, 산수, 화조 등 소재에 거칠 것이 없어라.
널찍한 마당 왼편 2층 정자 ‘모악루실(우관 김종범)’ 저 멀리, 산자락 붉은 황토 언덕배기에는 쑥이 파릇하니 돋아나고 있습니다.
아직 찬 기운이 감도는데 그것도 하얀 매화꽃이 청초하게 피었습니다. 모악의 금빛 햇살이 황홀한 연유입니다.
솔숲 사이 사이 장끼 울음 새어나는 소담스러운 신뱅이골, 언덕배기에 숱한 꿈을 키우면서 나 여기서 영원히 살렵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1.작가의 말
꿩은 직선으로 날렵하게 날아오른다. 학이나 매처럼 원형으로 선회하는 일이 없다. 어느 새, 빨랫줄처럼 날아간다.
그렇다면 인류가 꿩을 좋아하였으나 가두어 두고 기르지 못한 까닭은. 죽더라도 직선으로 날아오르는 뜻을 잃지 않으니 절개를 지키는 선비를 닮았다. 화미(華美)한 문식(文飾)을 갈고 닦아 저절로 드러나니 가슴에 품은 뜻을 숨기지 못한다. 선비의 폐백이 꿩임을 비로소 알겠도다.
나는 텅 빈 육중한 공간에 필묵의 선이 신비한 분위기로 확장되길 원한다. 화가의 진실한 얼굴은 계속되는 작업 사이에 있다는 생각에 삼백예순다섯날 작업실에서 문방사우를 매만지고 있다.
2.김남곤시인이 말하는 작가
모악산 밑에 살고 있는 춘보 이형수씨의 화필은 모악산맥처럼 건강하고 건실하다. 날마다 산물에 붓을 빨고 산바람에 붓을 말리는 작업을 피가 나게 한다. 하루도 질리는 날이 없다는 게 오히려 질리도록 느껴진다.
꿩, 설경, 화조 등이 성정만큼이나 수려하고 단아해 보인다. 평소 작가의 생활 철학이 그러하듯이 온화한 맛이 시선을 끌어 당긴다. 붓 끝에 묻어난 자연의 형상이 매사를 깊이 있게 살아가고 있는 삶의 조화를 읽게 한다.
3.작가가 걸어온 길
전남 구례출신
일본 니이가다 초청 개인전
전주 개인전 7회
전북화랑미술제 개인전
서울 현대화랑, 대전 홍명화랑 초대전 등 다수
코리안 아트 페스티벌
전북도전 특선 및 추천작가
서울미술제 특선 및 심사위원
창암 이삼만선생 추모전 이사, 운영위원, 심사위원
무주반딧불축제, 전주종이축제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전북지회 부지회장
(현)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전북지회 고문, 한국미술협회, 자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