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어느 날 오후, 뿌연 안개 사이로 아름답게 가을물이 든 나무가 줄지어 있는 길을 달리는 기분은 정말로 좋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날씨가 더욱 차가워져서 그런지 단풍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정교하고 디테일한 묘사력을 보이고 있는 작품 ‘시원한 오후’.
추슬추슬 내리는 비, 그 사이로 바람이 달린다. 이윽고 내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분위기를 띄워주기에 적합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바흐의 ‘BVW1043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피아노 연주’를 듣노라. 쌉쌀한 맥주 한 잔으로, 그동안의 온갖 시름을 말끔이 씻어낼 수 있다면.
고전을 신선한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한 서예가 최동명(36, 한국민족서예인협회 전북지회장, 동명서예원장)씨는 한글, 한문, 문인화, 전각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차별성과 독자성으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전통 서예의 한계를 극복하고 현대 서예의 새로운 방향과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 다른 세계로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다.
지난 2004년 제5회 강암서예대전 휘호대회 한문부문에 참가, 왕유의 시 ‘산거추명(山居秋暝)’을 휘호해 평소에 다져진 서체 훈련과 고전을 철저하게 연구한 흔적이 두드러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상을 수상하기도.
다양한 조형 어법과 절제된 조형 언어의 독자성을 꾸준히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성과 변화를 통해 나타나는 세계는 안온한 느낌으로 보는 서예를 추구, 그윽한 묵향으로 인도한다.
“‘필묵당수시대(筆墨當隨時代)’란 말이 있습니다. 필묵은 시대 감각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죠. 잘 아시다시피 서예는 예술이고 예술은 문화입니다. 서예는 그 종류가 무엇이든지 자기수련으로부터 출발되어 서사 능력과 조형 의식이 선행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극복이 되면 서법의 범주 안에서 문자를 뼈대삼아 서예만이 지니고 있는 본질을 최대한으로 압축시킬 필요가 있죠. 그래서 우리 역사와 풍토 속에서 어우러져 살면서 느끼는 감동을 특유의 미적 직관력을 갖고 시각예술의 심미적 대상으로 바라보며 표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랑’은 현대적인 미감을 살리는 등 디자인적 조형으로, ‘새옹지마’는 전서를 현대적으로 맛깔나게 풀어 해석한 작품이다.
‘채금담 구’는 행서를 음률에 맞게, ‘이백선생시’는 행서의 멋을 시원하게 각각 표현하고 있으며, ‘이신(怡神)’은 공간의 여백을 살려내어 문자를 현대적 조형으로,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추억만이 남는다는 생각으로 화선지의 여백을 충분히 살렸다는 느낌 바로 그 자체.
전통 서법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현대 서예를 추구하는 젊은 작가들의 서예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선흔(先痕)’의 멤버로도 활동하는 연유에 다름 아닌 듯.
원광대학교 서예학과를 졸업하고 전남, 전북, 광주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서예작가들이 ‘앞선 흔적’이라는 뜻을 지닌 ‘선흔’은 ‘예술인은 본연의 순수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실천하기 위해 창립한 단체.
작가는 서연회를 통해 ‘한글 서예로 떠나는 전북기행전’을 갖기도 했다. 전북의 명승지 또는 유적지에 관한 시, 수필, 자작시 등을 한글 서예로 표현, 전북을 널리 알리고 한글 서예의 위상도 함께 높인 것.
장애우와 함께 하는 서예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먹빛 통해 내 마음터 찾아가는 체험전’을 개최하면서 장애우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 사회와 적극적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등 비장애인들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자는 뜻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8년에 가질 첫 개인전은 문자성과 일회성을 십분 활용, 시각예술과 인문예술의 조화로서의 서예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또한 필묵과 전각 기법이 적절히 화음을 내어 조형언어로서의 가능성과 대중성을 점검해볼 생각입니다”
휘영청 달 밝거든 ‘유유자적(悠悠自適)’네 놀러 오소. 달맞이꽃 하나 둘 피어나 온통 그리움의 꽃밭을 이루는 성스러운 밤이여! 그대에게 저녁 강물같은 낭만, 아침 햇살같은 희망, 편지에 가득 담아 띄워보내잔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1.최동명 서예가의 말
헤어진듯 하면서도 풍요로우며, 형식이 자유로운데다가 조형성이 잘 드러나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다. 전통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시대성과 자신의 사상이 넉넉히 담겨있는 작품을 잉태하기 위해 오늘도 먹을 갈고 있다.
전통의 소중함은 그것이 시대에 적응될 때 참다운 의미와 가치가 있다. 더욱이 오늘날은 한문의 시대도 아니고 과거와 같이 모필의 시대도 아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기록 차원의 서예나 남의 문학 작품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서예를 할 것인가, 아니면 표현 미술로서의 서예술을 할 것인가.
2.작가가 걸어온 길
전주 출생
원광대학교 서예학과 졸업
원광대학교 대학원 서예학과 수료
전국 대학생 서예대전 대상
강암서예대전 대상, 초대작가
동학농민미술대전 대상
전국 서화백일대상전 초대작가, 운영위원
남도 문인화 서예대전 우수상 및 초대작가
전북미술대전 특선 4회, 입선 3회, 추천작가
전북서도대전 초대작가, 이사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3회 출품(천인천자문, 서예유산 임서전, 청년작가전, 2001, 2005, 2007)
(현) 서주 동인, 선흔, 서연회 회원
(현) 한국민족서예인협회 전북지회장, 동명서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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