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곧 겨레의 생명이다. 한글은 패션과 디자인의 좋은 소재로도 각광받고 있으며, 인터넷에서 한글이 적힌 의상을 입은 외국인의 사진이 자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야흐로 한글 디자인의 우수성이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독일의 언어학자 베르너 사세는 얼마 전에 열린 ‘한글 문화정보화 포럼’에서 “서양이 20세기에야 이룩한 음운이론을 세종은 5세기나 앞서 체계화하였으며, 한글은 전통철학과 과학이론이 결합한 세계 최고의 글자”라고 극찬하기도.
한글 창제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문자 조형성 연구와 그 위상을 널리 알려온 서예가 죽봉 임성곤(44)씨는 도내에서 거의 드문,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한글부문 초대작가다.
작가는 한국 서단의 주류를 형성했던 전라북도, 그 가운데서도 서예대가들을 배출한, 한국서예사에 큰 획을 그은 김제출신의 예술가. 유즙, 조속, 송일중선생을 필두로, 이정직, 송기면, 유영완, 조기석, 송성용선생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전하는 서예의 묵묵한 향기는 하늘로 솟구친 묵죽처럼 현재까지 올올이 이어지고 있다. 아니, 김제지평선처럼 하늘과 땅 사이를 번갈아가며 ‘추구의 추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리라.
“매년 10월 9일 한글날만 되면 우리말의 우수성과 정체성을 들먹거리지만 일상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생활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시골에도 온갖 상호의 간판이 서양 이름으로 도배질당한 현실인 만큼 뉴스를 통해 본 ‘김텃골돌샘터씨의 가족 얘기’는 싱그러운 우리말의 색감과 감성을 느끼게 하니 마냥 고맙게 느껴집니다.”
한글의 아름다운 멋을 붓끝에 담아 인간의 정신적 생명처럼 세상에 알려온 작가는 무엇보다도 친근한 이해인수녀의 따사로운(?) 글귀를 통해 한글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이해인수녀의 시는 우선 접근하기가 쉽지요. 소년소녀들이 일기장에 적어놓은 글처럼 아직도 동심이 남아있음을 보게 됩니다. 영혼이 한없이 맑아 그렇겠지요. 들판에 피는 꽃, 또는 어느 누구의 뜰 안에 피는 꽃처럼 고운 단어와 맑은 시어들로 조합된 시를 만날 수 있으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말을 위한 기도’, ‘새해엔 이런 사람이’, ‘기도 일기’, ‘남과 북의 한겨레가’, ‘낡은 구두’, 제비꽃 연가’ 등 작품은 철학적이거나 명상의 느낌보다는 생활의 지혜, 살아감의 각성에 중심이 맞추어져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게 작품의 주된 내용.
그러나 한글 서예는 획이 단조롭고 단순해 기맥이 왜소할 뿐만 아니라 음양조화가 미흡해 형태적 조형미나 필세가 약하고 생동감이 부족한 흠을 갖고 있단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작가는 글씨에 색깔을 넣어보기도 하고, 서체의 필의를 자연의 형상에서 얻어내는 등 시각적 조형미와 의사 전달을 통한 작업을 시도해오고 있다.
“한글은 정보화 시대에도 적합한 언어입니다. 한글은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있어 배우기도 쉽고 발음기관 및 발음작용을 본떠 만든 글자로 아주 과학적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문맹률을 기록하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한글의 경우, 자음 10개, 모음 14개이구요. 된소리, 이중모음을 합쳐도 40개로 수천 개의 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한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사랑은 여느 작가 못지 않고, 서예를 통해 빚어내는 촘촘한 작품은 논리적인 탄탄함의 배경이 되었고, 오늘의 작가를 완성시킨 배경. 올 한글날에는 ‘우리글 터’ 회원들과 한글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대규모 기획전을 열 계획이라고.
“옛 선비처럼 서로 좋은 점을 인정해주고 모자람을 보충할 줄 아는, 진정으로 서예를 위한, 서예계를 위한, 서예를 사랑하는 예술인이 되기를 꿈꾸어봅니다”
‘사랑해서 행복한 먹글’이라고 말을 하는 작가는 앞으로 손글씨(자연글씨)를 통해 더욱 더 지평을 넓힌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묵향에 가득한 풍류 때문인가, 여백에 그윽한 사랑 철철 넘쳐난다. 운필의 묘미 똑똑, 청량한 울림으로 스며든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1.임성곤 서예가의 말
‘대학(大學)’의 구(句)에 ‘구일신(苟日新)이면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이라는 말이 나온다. 탕(湯)임금이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욕조에 새겨 넣었던 경구이다. 여기서 ‘신(新)’ 의 목적어는 자신의 마음이고, ‘신(新)’ 공부를 하는 목적은 백성들을 내 가족처럼 대하는 인(仁)의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자기계발을 권유한 이 말을 항상 생각하면서 어느 덧 묵향속에 묻혀 삶을 맡긴 지 25년 여의 세월이 흘렀다. 변화가 나쁠 것이 없다. 기실 이는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덕목이다. 밝은 마음을 찾아가는 배움과 도리는 끝이 없다.
2.원로 서예가 권갑석씨의 평
작가는 묵묵히 노력하는 작가이므로 양양(洋洋)한 전도가 자못 기대된다. 작품을 보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게 됐다는 사실을 느끼게 만든다. 지난번 첫 개인전을 성황리에 개최한 것을 서예계의 선배로서 다시 한 번 축하해마지 않는다.
그러나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을 스스로 평가하다 보면 만족하기 보다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야 발전이 기약됨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한글을 포함, 한문, 사군자 등 전 영역들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에 전북서단의 앞날이 밝다.
3.작가가 걸어온 길
김제 출생
1회 개인전(2007년)
대한민국서예전람회 특선 2회, 입선 3회, 초대작가(한글부문)
전라북도서예전람회 우수상, 대상, 초대작가, 심사위원
(현) 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서예문화학과 최고 지도자 과정 재학
(현) 한국서가협회, 한국서예정예작가협회, 한국서예연구회, 우리글 터 회원, 한국서가협회 전북지회 사무국장, 죽봉서예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