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낀 돌틈 사이에서 도란도란 선조들의 호흡을 들어봅니다. 마른 넝쿨들만 서러운데 덤불을 헤치고 무너진 성벽 넘으니 주인 모를 무덤 가 폐허와 무상함이 곳곳에 있을 때란.
자연석 축대의 돌틈 사이로 빼꼼히 청초한 모습을 내밀고 피어있던 금낭화. 가녀린 자태와 분홍빛 색깔이 이끼낀 진회색 바위와 어찌 그리도 잘 어울리던지.
지금도 그 금낭화는 청순한 매력을 내뿜으며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겠지요. 야속하게도 세월은 그렇게 흔적만을 남겨두고 저는 제 갈 길 그렇게 떠나갑니다.
힘찬 생명력과 단순성, 집약성, 상징성, 그러면서도 먹의 운용과 조형을 바탕으로 원시미술이 우리에게 있어 어떠한 의미로 읽혀지면서 현실성을 띠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한국화가 임대준(41)씨.
1회 개인전 임대준 풍경전(1995, 전북예술회관), 2회 개인전 마음가는 대로, 붓가는 대로(2001, 전북예술회관), 3회 개인전 자연과 인간(2002, 전주 서신갤러리), 4회 개인전 기원(2005, 전북예술회관), 5회 개인전 동양화새천년전-2007 한국화 지평전(2007, 예술의전당), 제6회 개인전 전북아트페어전(2007, 한국소리문화의전당)등 타이틀에서 보듯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게 작가의 큰 장점이랍니다. 요즈음은 수묵의 차원을 뛰어넘어 혼합재료를 통해 기원과 소망의 지평과 그 메시지를 더욱 넓히고 있는 중이라네요.
단순화와 해체를 통한 수묵성과 주술적 상징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미술평론가 김선태씨의 평입니다.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는 길고 긴 세월의 흔적인지 음각으로 새겨진 사슴, 고래, 사람 등등 온갖 모양들은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다소 희미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 찾으면 조명이 암각화를 옆으로 비추기 때문에 음영이 뚜렷해져 선명히 보일 텐데 말이죠”
바위 그림을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람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며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 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라고 귀띔합니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 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 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됨에 분명하질 않습니까.
작품 ‘인간과 자연’은 홍살문, 소나무, 해, 돌집, 산풍경’ 등 각 소재가 하나로 어루어지면서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기원의 메시지를 잘도 갈무리한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왼쪽과 오른쪽에 톨탑 등 2개의 형상물을 통해 서울에 가신 아버지를 위해 할머니가 매일 정화수를 떠 놓으시고 빌었던 그 마음을 그대로 담아보았습니다.
특히 ‘표정’은 추상적인 의미가 아주 강합니다. 일종의 수묵의 물성을 실험한 이 작품은 둥그런 형상이 모두 제각각입니다. 먹의 번짐을 자유자재로 시험한 가장 최근의 작품으로 대표작으로도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드네요.
언젠가 3열씩 11행으로 모두 330글자의 ‘수’자와 ‘복’자를 10폭 ‘백수백복도’ 병풍에 새긴 작품을 보았는데, 같은글씨가 단 하나도 없었던 데 마음이 움직인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하지 않은가요. 인생은 서로 같으면서도 서로 달라야 제맛이 나는 법이기 때문이죠. 바로 그런 느낌을 읽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여름 여행’이란 작품에 시선을 모아봅니다. 개발이란 명분 아래 변해만 가는 고향의 모습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아련한 그리움과 쓸쓸함만을 남겨주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 기다림과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작가는 우리 삶의 밑바탕에 선명한 빛깔로 어려 있는 전북의 자연을 새롭게 기록하고, 우리의 삶의 모습을 그려보는 10년 공동 프로젝트인 ‘전북의 풍경 스케치 기행전’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2007년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습니다. 올 연말은 대선도 마무리되었고, 2008년은 정말이지 새로운 한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충만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2008년을 살아가게 될까요.
감사와 신년의 복을 바라는 마음,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에 무엇보다 2008년에는 진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임대준씨가 붓으로 쓱싹 쓱싹 그려가고픈 꿈꾸는 세상의 실체입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1.작가의 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인간은 태양을 숭배하고 신으로 받들며 생명의 원천으로 생각했다.
태양의 얼굴에 새긴 암각화, 솟대, 돌탑 등은 우리 민족의 정서에 밴 피와 살이 보이지 않는 미의 시초로 다가온다. 이들 주술적 형상은 극도로 단순화되고 추상된 형상을 띠고 있다.
적과 유물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의 삶의 원초적인 조건을 찾아보고 선사시대의 암각화에서처럼 여러 기호적인 흔적과 장식 문양을 표현, 오늘날 우리의 삶이나 옛 우리의 삶을 상생시키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2.미술평론가 김선태씨의 평
절제되면서 이상적인 미감을 간직한 추상적 바탕위에 기원과 바람을 담은 그의 작업은 경건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여러 가지를 제시하지 않고 단순하게 요약해 낼 수 있는 것은 어느 하나의 존재를 곰곰이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겸허함이 있기에 가능해진다.
노자 도덕경에 ‘만물이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 거기서 고요함을 얻는다’는 대목이 있다. 대상이 최소한의 형태로 단순화되고 간결한 묵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근원으로 돌아가 고요함을 얻는 이치와 일치한다.
3.작가가 걸어온 길
완주 출생
개인전 6회
전주우석대학교 동양화과, 전북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2회
전국순천미술대전 대상
전북미술대전 특선 5회, 개천미술대전 특선 2회, 한국화대전 특선
전북청년작가 위상전 작가상
(현) 한국미술협회, 우묵회 동이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