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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사람들

문인화가 정의주

 

  ‘회사후소(繪事後素)’. 이는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는 뜻으로,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생각건대, 바탕에 대한 관심, 마음에 대한 강조는 비단 공자뿐만 아니고 예술가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기본이 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리라.
 문인화가 정의주(44)씨는 ‘회사후소(繪事後素)’에 오감(五感)을 낙낙히 드리운 채 세상을 묵향으로 알록달록 물들이고 있다. 화선지의 ‘여백’은 분명 ‘공간’의 문제이지만 작가는 이를 ‘선’의 연장으로 보는 것 같다. “선은 길이며 길은 곧 공간이 된다”고 말하는 만큼 아마도 가장 자연스러운 삼라만상의 접근법을 추구한다.
 자연은 이미 눈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정갈하게 씻어내고 남은 정화된 존재로 다가오는 존재. 무념(無念)의 경지에서 자연을 인식하고 이를 서화로 표현하는 일이란. 참다운 구도자의 삶은 사시사철 순백무결한 대나무로, 진정한 의리와 절개는 겨울을 맞이한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에서 알싸하게 읽을 수 있다.
 흰 구름 깔린 위로 올망졸망 솟아 오른 산봉우리들과 터질듯 붉게 물든 모란, 이슬 머금은 풀잎 위의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그리고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매화 꽃잎들. 이 모두가 태초부터 늘 있었던 풍경일 터이지만 그 심상(尋常)함 속에서 작가는 비범(非凡)함을 창조한다. 간결한 운필과 먹의 농담이 조화를 이룬 사군자, 연꽃, 조류, 기암괴석은 포근하고 아늑하며 정제된 작품의 살붙이인 셈이다.
 “매화는 겨울 삭풍과 눈보라 속에서 맑은 향기를 내뿜으며 봄을 선두에서 알립니다. 난초는 깊고 한적한 산골짜기에서 홀로 은은한 향기를 퍼뜨리면서 여름의 무더위를 식힙니다. 국화는 늦가을 찬 서리를 맞으면서 깨끗한 꽃을 피우구요,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소나무와 더불어 푸른 잎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이름하여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모두 다 높고도 고결한 선비의 인품을 닮아 우리는 사군자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작품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듯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군자의 마음으로 그 본질과 뜻을 표출해야 한다는 설명. 사군자의 형상 너머에 있는 세계에 도달하기 위에 오늘도 살얼음 위를 한발한발 밟는 마음으로 화선지를 응시하고 있단다.
 “삼천리강산 곳곳마다 살아 꿈틀거리는 식물들의 생태와 동물들의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사생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본 이들의 생생한 느낌, 그리고 자연스러운 기운을 하나로 쭈욱 짜내 작품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특히 섬진강변을 찾아 현장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그린 매화 그림은 한국인 혹은 동양인의 기개가 잘도 호흡하고 있다. 한국화와 서예의 두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으니 ‘양수겸장(兩手兼將)’인가, 글씨와 그림은 근원이 같다는 ‘서화동원(書畵同源)’을 현실로 실천함인가.
 풍경을 섬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문인화에는 정갈하면서도 날렵한 운필의 기운이 승천하는 용처럼 꿈틀거리며 기운생동한다. 오랜 세월 벼려온 독특한 붓질과 정제된 먹빛깔은 은은한 미적 아취로 다가오고. 바로 그 속에, 섬세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비움에서 얻은 자연’이 둥지를 틀고 있다.
 “서화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에 재학할 당시, 할아버지(정복연, 鄭復然, 1910-1983, 호는 운정 雲汀)가 낭곡(浪谷) 최석환(崔奭煥, 1808-?)의 포도도를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왼쪽 아래 부분에서 시작한 포도 넝쿨이 오른쪽으로 향하여 휘감아 펴져나가되, 잎새와 포도알들이 서로 어울려 너울거리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교향곡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복연선생은 떡갈나무를 둔탁한 채색 방법으로 그려낸 작가. 독수리의 세세한 묘사 등은 조선시대 영모화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독특함을 자랑하며 ‘호남한국화3백년’ 도록과 ‘전북미술근대사’의 한 면에 역사를 그리고.
 어제, 연꽃잎 바람에 편히 누웠다. 오늘, 잉어 향기에 한껏 취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고운 미소와 자태는 꽃망울을 자랑하는 푸른 물결 위의 진정한 군자로소이다. 부디 바라옵건대, 내일, 하얀 자태로 다가와 사바의 세계를 분홍빛으로, 보랏빛으로 꽃물들게 하소서.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1.정의주 문인화가의 말

 

사생을 바탕으로 필(筆)과 묵(墨)의 세계를 남나들고 있다. 정돈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따뜻한 느낌으로, 침착한 색조의 묵으로 구사하고 있다. 본시 ‘묵(墨)’이란 높고 낮음에 따라 흐리기도 하고 맑기도 하며 물체에 따라 얕기도 하고 깊기도 한다. 그래서 대상과 하나가 되어 너와 나의 분별없이 스며드는 묵은 조용히 소리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인고의 세월이 담긴 공간을 빚어내는 옹달샘이다. 

 

2.미술평론가 손청문씨의 평

 

 정교하면서도 날카로운 세부 묘사가 돋보이는 선묘와 춤을 추듯 흐드러지게 유동하는 분방한 필묵의 구사는 기법의 다양함을 추구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특히 소박함에서 발아된 분방하면서도 격조있는 세련미에 예술혼이 담뿍 깃들어 있다.
 이처럼 시, 서, 화 3절이 하나로 모여 완성도 높은 작품성을 연출하고 있으니 ‘상리(常理)와 상형(常形)이 호흡하는 문인화의 세계’를 펼치는 작가로서 손색이 없다.  

 

3.작가가 걸어온 길

 

군산출생
제1회 개인전(2004,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회 서화아트페어전)
원광대학교 한국화과, 동 대학원 서예학과 졸업
제22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묵죽),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서도대전 초대작가
(현)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분과 위원
(현) 전북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 이사, 문인화분과 위원장
(현) 한국미술협회, 한국문인화연구회 회원, 묵연회, 일원회, 묵창회 회원, 석향문인화 연구       실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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