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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전북도민 왜 고향을 등지나

 


 예로부터 전북엔 ‘큰 어른들’이 반드시 있었다. 꼭 무엇을 많이 알거나 똑 부러진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어르신’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두가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했던 측면도 강하게 있지만 지역의 현안이 있으면 솔선수범해 앞장선 까닭에 후손들의 귀감으로 자리하기도 했다.
 그렇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어느 마을이랄 것 없이 좋은 일, 궂은 일에 중심이 되는 ‘큰 어른’들이 버티고 계셨다. 그분들의 지혜 때문에 모든 지역의 일이 아무 문제없이, 막힘없이 잘도 성사됐다. 어떠한 갈등이 생기더라도 그분들의 중재로 조정이 가능했다. 큰 어른들의 직관력과 통찰력, 혜안은 하늘이 내리는 은혜였던 셈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노인 인구가 급증함에도 불구, 정작 ‘어른’은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회가 어려울 때 무게 있는 말 한 마디를 해주고 중심을 잡아주는 ‘참 어른’이 많지 않다고 말들이 많다.
 일찍이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대면했다. ‘선생님(?)이 천리가 멀다 않고 오셨으니 역시 우리 나라에 이익이 될 것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기를, ‘왕은 하필 이익을 말합니까. 역시 인의가 있을 따름입니다’
 여기의 ‘선생님’은 ‘늙은이, 원로’를 의미한다. 즉, ‘노마지지(老馬之智)’로 늙은 말의 지혜를 빌린다는 뜻이다. 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가 있음을 의미하니, 정작 어른들에게는 ‘노당익장(老當益壯)’의 세계에 이를 수 있도록 한마디만 해달라는 혜왕의 극진함이 배어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구심체가 되어야 할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관자적 자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자탄의 목소리가 높다.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의 이 눈치 저 눈치를 살피면서 현안에 앞장서기를 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촌(조병희)이 살아 있을 때만 해도 전북은 오늘과 같지 않았다니께. 지금은 3대까지 중상모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는 일이 흔하며, 특히 정치인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비대해지면서 어른들을 무시하는 풍조가 극에 달하고 있음은 물론 이들이 어른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구먼(원로 언론인 A모씨)”
 진짜 어른다운 어른이 없어, 어른들을 존경하는 풍토가 전북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인가. 어른을 극진히 모셔야 할 후배들이 ‘싸가지(?)’가 없어 이들을 홀대하는 미풍양속이 퇴색하고 있는 것인가.
 오늘날의 어른부재론은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닌 듯 하다. 다만,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했을 때, 전북의 구심점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어른은 어른답게 회초리를 잡고 ‘노마지지’를 다했을 때 건강한 전북이 된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전라북도도 이미 고령화 사회로 깊숙이 접어들었다. ‘장수(長壽)’를 브랜드화 하자는 캠페인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제 어른들의 지혜를 높이 사는 복지정책이 필요함은 당연하질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어른들의 지혜를 애써 구해야 한다. 김제공항 건설 등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과 쓰레기장 건설로 빚어지는 갈등 해결에 그들의 동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각 마을, 기관 단체별 원로회의를 부활시키면 어떨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도 우리 주변엔 청년보다 더 진취적이고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는 일부 어른들이 건재함에 있다. 우리는 그 표상을 전주KBS와 현대자동차(주)가 해마다 선정해 모시는 ‘전북의 어른’에서 찾았으면 한다.
 이 상은 어른 공경의 사회 기풍을 조성하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전북에 20년 이상 거주한 70세 이상의 원로 가운데 한 분을 선정해 어른 상 봉정패와 소정의 상금을 주고 있다.
 지난 2001년 조병희(1910-2002, 향토사학자, 시조시인)선생이 1회 주인공이 된 것을 포함 제2회 김삼룡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 제3회 김제 학성강당 김수연선생, 제4회 진기풍 강암서예학술재단 이사장, 제5회 향토사학자 최현식선생에 이어 선비문화 보급에 앞장서온 김환재선생이 여섯 번째 수상자가 된 바 있다.
 조병희선생의 살아 생전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종근씨, 대옹(큰늙은이)이라면 응당 눈과 귀가 어두워야 하는데 아직도 전혀 그렇지 못해 미안혀. 함부로 술을 마시고 떠들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 오히려 두렵구먼. 전북의 오늘이 왜 이려, 전남은 잘 뭉쳐지는디, 이렇게 살다가 죽을 껴”
 진기풍선생은 35년간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호남 푸대접론’을 주장, 전북 애향운동본부 창립과 전북 애향장학재단 설립에 앞장서온 대표적 어른이다. 특히 고창 ‘무초 회양미술관’에 평생동안 소장해온 유물과 예술 작품을 기증, 전시함으로써 향토 문화의 우수성을 탐방객들에게 널리 홍보하는 등 지역 발전과 후배 양성, 전북인의 긍지를 높이는데 헌신, 봉사한 인물이다.
 지난 97년 전북생명 상임고문을 끝으로 사회 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난 진선생은 ‘정직이 살아있는 사회가 희망이다’는 가치관을 지켜왔으며, 늘 ‘깨끗한 진퇴’를 보여주는 지역 사회의 원로로 존경받아왔다. 전북의 어른 상 상금 2천만원 가운데 1천만원은 애향장학기금, 나머지 1천만원은 강암학술재단에 기탁하면서 “전북의 발전과 문화창달에 미력한 힘이나마 보탰으면 한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때문에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진선생은 오늘의 대표적인 전북의 어른으로 통하면서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