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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사람들

목정문화상 수상 서양화가 이승백씨

하루 종일 날이 흐리다. 함빡눈이라도 펑펑 쏟아질 듯한 날. 온종일 하늘만 쳐다보며 눈이 오기를 학수고대했지만 그 기대는 산산이 사라진 물거품. 그리운 님은 묵묵부답.
 머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눈이 오면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들 또한 팔짝팔짝 뛰면서 어쩔줄 몰라 마구 날뛰며 사방을 헤집고 다닐 터. 흰눈이 만들어낸 생경한 풍경에 마음이 움직인 것만은 사람과 매한가지인가 보다.
 기나긴 기다림으로 잉태한 낯익은 그림 한 점 ‘마이산 설경’. 22일 오후 5시 30분 전주코아리베라호텔서 제14회 목정문화상(미술부문)을 수상하는 원로 서양화가 이승백씨(72. 전미회 회장)의 그림을 통해, 그렇게 내 맘속에 희디흰 고운 눈가루가 뿌려졌다. <편집자 주>


 지금, 근경으로 드러난 빈 논에 생명을 다한 나목(裸木)의 물결로 논두렁이 출렁이고 있다. 한겨울 황량한 논밭 대신, 무성했던 나무들의 흔적으로 충만한 논은 사실 처음 느껴보는 풍경이요, 충격일 때란.
 “저 멀리 보이는 진안의 마이산(馬耳山)은 쫑긋한 말의 두 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겨울이면 두 봉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능선에만 눈이 쌓여 마치 붓에 먹물을 찍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 마이산을 문필봉(文筆峰)이라고 부르는 까닭인 것이죠.”
 특히 마이산은 동서남북에서 각각 바라보는 감성이 다르고, 계절에 따라 온갖 옷으로 갈아입는 까닭에 느끼는 감정 또한 천태만상이다고. 머-어-언 훗날 마이산전을 갖고 싶은 희망을 잉태시킨 진정한 이유에 다름 아닌 듯.
 작가가 그림을 하게 된 것은 광주중앙초등학교 5학년 무렵. 전남 함평이 고향인 작가는 초등학교 4학년때 해방의 기쁨을 맞본 후 광주로 이사, 이듬해에 광주중앙초등학교로 전학가면서부터.
 “당시 누님으로 부른 사람이 한 분 있었습니다. 바로 나카무라로, 저에게 곧잘 크레파스를 선물하면서 그림을 해보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그림과 놀며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분이 저희 담임선생이라니,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교실 뒷편 게시판에 저의 그림이 종종 붙여지면서 비로소 희망이란 단어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 더 정확히 말하면 구상작업의 연류이 자그만치 50여 년에 이른다면서 틈만 생기면 무주구천동, 지리산, 부안 내변산, 장수 덕산 용소, 강천산, 내장산, 모악산, 대둔산 등을 스승삼아 철따라 변해가는 그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지난 1968년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전북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한 후배가 전남으로 자리를 이동하고 싶다고 해서 흔쾌히 허락을 했습니다. 전북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 올해로 38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하얀 눈을 맞으며 그 속에 포근하게 덮여 시리도록 하얀 달빛을 맘껏 맞으며 겨울을 즐거이 보내는 즐거움은 아마도 전북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삼백예순닷새 온통 전북을 보듬고 산다는 작가는 여러 가지 색상 가운데 보라색을 유독 좋아한다는 자랑.
 예로부터 보라색은 고귀한 사람들이 즐겨 썼던 색깔이었다며 그러나 잘못 쓰면 천박하기 이를데 없는 만큼 더욱 더 세심하게 다룬단다. 바위마다 얼룩진 보랏빛 색깔이 태고를 변주하고, 인간과 자연의 길항 관계를 잘도 소화해내면서 꿰어진 구슬로 새 생명을 잉태한다.
 대작의 열정 또한 작가에게 빼놓을 수 없는 창작의 소산물.
 민족기록화 ‘황산대첩(2백호 크기, 전라북도교원연수원 소장)’, ‘마라도 해경(1백호 크기, 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 소장)’, ‘울릉도 해경(2백호 크기)’, ‘금강산 만물상(병풍 10폭)’ 등이 바로 그의 살붙이에 다름 아닌 셈.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이름하여 ‘4다(四多)’란 용어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일단 그림을 많이 그리는 한편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또 스케치를 떠날 때는 생각을 많이 하고, 완성단계에 이르면 보는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것이 필수가 아닐까요.”
 목정문화상 수상을 나흘 앞둔 작가는 기라성같은 대선배들이 많은 현실에서 자신이 상을 받게 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창작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것을 다짐한단다.   백지장만큼씩 야위어 가는 햇살과 기나 긴 동면의 잠자리에 들어갈 나무들이 순백(純白)의 하늘 아래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종근기자
 
 작가가 걸어온 길

광주사범대학 미술학과 졸업
전) 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 교사
전라북도미술대전 초대작가(1991), 운영위원(1993), 심사위원장(1999) 역임
전라북도중등미술교사회 회장(1991-1996)
목우회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1998, 2005)
갑오동학미술대전 심사위원장(2005)
개인전 8회(1975-2005)
국내외 그룹전 및 초대전 2백50여 회
전미회 회장
호미회 회장
체육부장관 표창(1983)
대통령 표창(1987)
현) 한국미술협회, 전북미술협회 사단법인 목우회, 전미회, 호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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