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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왕궁리석탑 금제품, 통일신라가 아닌 백제의 걸작

 

 

익산 왕궁리 석탑의 금제품이 통일신라의 것이 아닌, 백제인의 걸작으로 밝혀졌다.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가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이 산재한 익산시 역사 지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때, 이같은 사실이 확인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왕궁리유적 금속제품의 제작 기술은 일본으로 전파되어 7-8세기시대의 고대 종합 유적인 아스카 이께(飛鳥池)유적에서 활짝 꽃을 피우게 됐다는 점도 밝혀졌다.
 그동안 익산 왕궁리유적(사적 제408호) 5층 석탑(국보 제289호) 지붕돌에서 발견된 금사리함, 금강경판, 유리사리병 등(국보 제123호 익산왕궁리오층석탑 내 유물)이 통일신라때의 유물이라는 견해가 우세했었다.
 그러나 최근 금사리함 연꽃 무늬가 사비시대 다른 유물의 무늬와 비슷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백제에서 만들었다는 추정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유물은 국내 최고(最古)이자 백제 유일의 사리장엄구가 되는 셈이다.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왕궁의 공방’이란 책자를 통해 왕궁리유적의 공방 유적에서 출토된 도가니와 금제품의 성분과 제작 기법 등을 분석, 최고 기술을 가진 백제 장인 집단이 이 사리장엄구를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금사리함 연꽃 무늬는 백제 사비시대에 유물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문양과 동일하기 때문에 사리장엄구의 제작 연대를 백제 무왕대에 해당하는 7세기 전반기의 작품으로 보았다는 보고다.
 특히 왕궁리 공방 유적에서 나온 금아말감과 금은아말감 덩어리를 중요한 증거로 꼽았다. 금-수은이 2대 8의 비율로 나온 것이 바로 그것.
 아말감은 수은과의 합금으로 도금에 사용되는데, 석탑에서 나온 유물들이 모두 도금 기법을 사용했다. 지난해 국립전주박물관은 순금제로 알려졌던 사리함이 동판에 도금한 것이며, 금강경판은 은판에 도금한 유물이란 것을 밝혀낸 바 있다.
 장인들은 금과 수은을 2대 8의 비율로 섞은 아말감을 금속에 바르고 불가마니로 쬐였다. 그럼에도 불구, 아말감 덩어리에 있는 금과 수은의 비율은 늘 한결 같았다. 이 탁월한 도금법 덕분에 사리장엄구는 1400여 년간 눈부신 금빛을 지킬 수 있었다.
 때문에 당시 백제의 장인들은 제련, 정련뿐 아니라 금으로 가는 실을 만들 만큼 고도의 세공 기술을 보유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적에서 나온 도가니와 제품에 따라 금에 섞인 은의 함량이 달랐다. 무늬를 새긴 연꽃 구슬에는 은의 함량이 적었으나 금못엔 은의 함량이 10-15%였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도가니를 숯불에 올려놓고 풀무질로 양질의 순금을 정련하는 등 장인들은 구리 주석 납의 함량을 조절해 순동 청동 황동까지 따로 만들어내는 고급 기술을 갖고 있었음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사리장엄구에 쓰였을 제작 기법의 흔적이 백제 공방 유적에서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최근 익산 왕궁리유적 공방지와 관련된 폐기장에서는 도가니편과 정교하게 가공된 금못, 금사(金絲)를 포함, 유리 파편 등 삼국시대 귀금속 관련 각종 공예품의 제작 과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왕궁성의 서북편지역은 궁성 내부의 공간구획상 공방지 등의 작업장이 넓게 분포하였던 곳으로 추정되며 궁성에서 필요한 각종 소모품을 생산,조달하던 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