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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부안 곰소만 ‘물이 하루에 두 번 들고 썬다’....국가무형유간 종목 오늘(28일) '물때지식' 지정 예고와 부안 곰소만

부안 곰소만 ‘물이 하루에 두 번 들고 썬다’

-국가무형유간 종목 오늘(28일) '물때지식' 지정 예고와 부안 곰소만

전통과 천문 지식이 결합한 '물때지식'이 국가무형유산 종목으로 지정된다.
국가유산청은 한 달간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대국민 설문조사를 거쳐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고 28일 밝혔다. 

보편적으로 공유·향유된 점을 고려해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는 두지 않는다.

△ 순창출신 신경준 '조석일삭진퇴성쇠지도'만들어 물때지식 연구
 
'물때'는 '물(tide)'과 '때(time)'로 구성된 합성어다. 물은 문자 그대로 '물'을 의미하지만, 이 맥락에서는 '조석'을 뜻한다. 

민속 명칭인 물때(tide time)는 모든 바닷물의 변화를 포함하는 개념 범주이지만, 한국 어민들은 또한 이 명칭을 다양한 시간 단위와 일치하는 각각의 조석을 지시하는 데도 사용한다.

물때지식은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바닷물의 주기적 변화를 이해하는 전통 지식체계다. 

태양과 달의 인력으로 발생하는 조수간만의 차와 조류의 변화를 일정한 주기로 정리한 역법적 체계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지식체계는 자연환경을 관찰하고 경험을 축적한 전통 지식에, 지구와 달의 관계를 역법으로 표현한 천문 지식이 결합한 형태다. 

어민들의 어업활동은 물론 염전·간척·노두 이용·뱃고사 등 해안 지역의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으로 활용됐다.

문헌 기록도 방대하다. 

하루 단위의 밀물·썰물 정보는 '고려사'에 등장하고, 보름 주기의 물때 명칭은 '태종실록'에 기록돼 있다. 조선 시대 이전부터 15일 주기의 물때 순환 체계를 인식하고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에는 강경포구의 조석 현상을 바위에 새겨 남기거나, 실학자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조석일삭진퇴성쇠지도(潮汐一朔進退盛衰之圖)를 만들어 조강·제주·중국 절강·오월 지역의 조석 시간을 비교하는 등 지역별 독자적 물때 체계도 연구됐다.

'조석(潮汐, 밀물과 썰물) 현상의 주기와 변화를 설명하는 그림이다.

신경준은 1712년(숙종 38) 4월 15일  순창의 남산에서 태어났다.
신경준의 가문은 순창의 명문가인 고령 신씨로, 신숙주(申叔舟)의 동생인 신말주(申末舟)가 그의 직계 10대조이다.

 △ 곰소만 ‘물이 하루에 두 번 들고 썬다’
 
부안군 곰소만 어민들은 조수의 변화를 ‘물이 하루에 두 번 들고 썬다’고 표현한다. 바닷물의 움직임이 하루의 관점에서 밀물과 썰물로 일차적으로 지각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 6시간 주기의 물에 기초하여 조수의 변화를 다양한 물때로 구분한다. “지금 물때가 어떻게 되는가?”라고 묻고 “지금 들물(밀물)이다.” 또는 “지금 참(만조)이다”라고 답하는 것은 하루 중 물때와 관련된다. “오늘 물때가 어떻게 되는가?”라고 묻고 “오늘 일곱물(7물)이다.” 또는 “오늘 조금이다”라고 답하는 것은 보름을 주기로 하는 물때와 관련된다.

 어민들은 바다에서 조업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한 물때 쓴다’ 또는 ‘두 물때 쓴다’고도 말하는데, 여기서 ‘한 물때’는 하나의 썰물 또는 하나의 밀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6시간을 뜻하고, ‘두 물때’는 12시간을 뜻한다. 

반면 보름 주기 물때에서 ‘한 물때’는 하루를 가리키고, ‘두 물때’는 이틀을 가리킨다. 민간 명칭 ‘물때’는 물의 상태를 알려 주면서 동시에 그 물과 관련된 시간이나 날짜를 가리킨다.

바지락은 서해안·남해안·동해안의 전 연안에 걸쳐 서식하고 있지만 양식장이 밀집된 지역은 전북 곰소만, 충남 천수만·근소만·가로림만, 경남 사천만, 경기도 선재도 지역 등이다. 

바지락 전체 생산량의 80%가 곰소만과 충남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곰소만의 간석지는 썰물 때 넓은 갯벌에 어업인들이 줄지어 경운기를 몰고 양식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 곰소만 북안의 어촌 왕포(旺浦)

왕포는 곰소만 내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고기가 많이 잡히는 바닷가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300여 년 전 김해 김씨 집안의 7대조가 터를 닦고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해진다

 여전히 마을의 중요 성씨는 김해 김씨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친인척 관계다. 2009년 기준 왕포는 38가구에 91명(남자 44명, 여자 4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980~90년대 김양식 호황기 때는 100세대 가까이도 살았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 왕포 어민들은 1톤급 풍선과 주낙을 이용해 조기, 갈치, 주꾸미 등을 잡았다. 현재는 1~2톤 내외의 선외기 어선 및 나일론 자망과 소라껍데기 통발을 이용해 주꾸미와 꽃게를 주로 잡고 있다. 또한 젓새우와 피뿔고둥도 잡는다. 겨울에는 소수의 어민들이 실뱀장어나 숭어, 굴을 잡기도 하지만 겨울철은 휴어기로 여겨진다.

왕포 어민들은 보통 새벽 5시 전후 썰물에 바다로 나간다. 잡는 어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민들은 바다에 미리 주꾸미통발이나 꽃게그물을 여러 줄로 나누어 설치해 놓고, 매일 교대로 일부를 걷어 올려 고기를 잡는다. 

밀물이 되면 대개 오전 11시 전후 또는 늦어도 오후 1시 전에는 포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선착장이나 집에서 중간도매상에게 당일 어획물을 활어 상태로 팔고, 오후에는 어구를 손질하거나 집안일을 한다.

왕포 어민들의 조업 공간은 곰소만 내에서 외해 쪽으로 조금씩 확장되는 변화가 있었다. 1970년대 중반에 이 지역의 연안 어족자원은 감소했고, 기계배가 마을에 도입되었다. 

이후 왕포 어민들은 곰소만과 위도 사이 바다로 주 어업 공간을 이동했다. 이 어로 구역은 어민들이 소형 어선을 타고 당일치기 조업을 할 수 있는 마을에서 가까운 바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