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이종근, 박금숙 닥종이 인형 전시회 인사말
전통미를 살린 닥종이 인형이 한국인 향수를 자아낸다. 따스한 웃음과 어릴 적 추억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박금숙 작가가 한 겹 한 겹 한 땀 한 땀 배접하며 말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섬세한 손끝 정성으로 완성된 닥종이 인형 작품을 정겨운 추억과 행복하고 친근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할 시간을 마련했다.
박금숙 박사학위청구전 '한지-조형적 은유: 전통의 물성과 현대의 감각을 잇다'가 9일부터 14일까지 전주 청목미술관 전시 1관에서 열린다.
26번째 개인전의 장이기도 한 이 전시는 5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작가는 한지를 단순한 전통적 재료로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그것이 지닌 조형적 잠재력과 은유적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
한지는 오랜 시간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지탱해온 물질이자 정신의 그릇이었다.
종이로서의 기능을 넘어, 자연에서 비롯된 섬유가 엮이고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한지의 결과 질감은 시간이 쌓여 남긴 흔적과 닮아 있다.
찢어지고 덧붙여지며, 빛을 통과시키고 다시 흡수하는 과정 속에서 한지는 고유한 생명성을 획득한다.
바로 이같은 한지의 물성을 단순한 ‘전통적 이미지’로 생각하지 않고, 현대적 감각 속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한지를 찢고 겹치고 배치하는 행위는 단순한 제작을 넘어,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대를 잇는 은유적 언어로 가능하다.
작업 과정에서 드러나는 파편화된 형태와 반복되는 결합은, 삶의 흔적과 기억이 쌓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경험과 닮아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한지의 물성이 주는 투명함과 깊이, 그리고 불완전하면서도 유기적인 형태를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시도한다.
이는 전통을 답습하거나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그 본질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오늘의 시각적 감성과 만나도록 하는 실험이다.
얼음판에서 나무 썰매를 지치다 꽈당 미끄러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얼른 뛰어가서 아이가 다치지 않게 붙잡아 일으켜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동통하고 발그레한 그 뺨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절로 푸근해진다.
어려웠던 그 시절을 겪고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꼭 기쁘고 좋은 추억만은 아닐텐데 어쩐지 초승달마냥 웃고 있는 인형의 눈을 보면 그 시절로 돌아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밀려온다.
작가는 전통생활을 주제로 많이 표현하고 있다. 3.1운동이나 짚신 짜기, 달동네 판자촌처럼 과거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닥종이 인형이 펼치는 항일운동은 어떨까.
얼마 전엔 전주 갤러리 한옥에서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재현한 닥종이 인형 전시를 가졌다.
일제 식민주의 폐해를 선국선열들의 항일운동 정신을 계승, 우리 민족의 뼈아픈 삶을 구체적으로 재조명하는 기회로 삼아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밟지 않고, 민족 차별과 전쟁 없는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고자 한 작품이다.
언젠가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넓은 홀 안에 펼쳐진 갖가지 옛사람들의 풍물 풍속 전경이 장관이었다.
닥종이 인형들이 남녀노소 둘러앉거나 모여서 강강술래를 하고 연 날리고 윷놀이를 한다.
잔치 준비에 혼례식을 올리는 장면, 훈장에게 회초리를 맞으며 공부하는 서당 풍경 등, 비록 인형이지만 실감나게 조상들의 생활풍속을 재현해 놓았다.
작품마다 해학적인 표현도 있어 시선을 흥겹게 이끌곤 한다.
전시회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형마다 똑같은 얼굴이 없다.
관람객에게는 재미있고 예쁘게 만든 작품으로 보이지만, 작가에게는 피땀에 젖은 인내와 고통의 산물이다.
그는 오로지 한지를 재료로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조형화 하는 작가다.
전시작이 모두 어린 시절 농촌에서 겪고 보고 즐겼던 장면들이다. 몸짓과 동작, 표정들이 섬세해 놀랐다.
선물 보따리 머리에 이고 시집간 딸네 집에 가는 엄마의 모습, 달걀 장수며 피리 부는 선비 등 이야깃거리가 있는 작품들이 많다. 기발한 창작 감각이 필요한 것 같다.
닥종이 인형 작품은 아직도 공예품으로 볼 수 있는 부문이 크지만, 이제는 미술 작품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
인형 작가들은 한국화의 고전적인 풍물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창작 소재를 많이 활용한다.
인형뿐아니라 굴비·보리밥·상추·고추·젓갈·김치·모둠전 등 온갖 반찬도 한지로 만든 것을 보고 놀라웁다.
밤낮없이 집중해서 반복 손작업하다 보면 손가락만 아픈 게 아니고 목도 몸살을 앓곤 한다.
머리를 숙인 채로 오랫동안 작업을 하게 되니 목뼈가 제대로 작동을 못 해 회복될 때까지 쉴 때도 있다.
수 많은 날을 그렇게 반복하다가 보면 손가락에 염증이나 통증이 생겨 불가피하게 쉬어야 할 때도 많다.
장신구나 의상 머리카락이며 가구, 가축 등 동물에서 수목, 각종 농기구, 가옥 같은 건축물 등 한지로 만들지 못하는 물체는 없다.
단지 색깔을 내야하는 부문에서는 염색이 필요할 뿐 모든 재료는 한지로 해결한다.
닥종이 인형은 닥나무를 베어 삶고 껍질을 벗기고 말리고 섞고 뜨고, 그렇게 아흔 아홉 번의 손질을 거쳐 그 종이에 한 겹 한 겹 풀칠을 해서 표정이 만들어진다.
담뱃재가 떨어질 듯 말듯 위태롭게 걸려 있는 모습이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뭔가 가슴속 에서 솟구치는 듯한 느낌을 받던 관람객들은 '인생 별것 있겠나 / 자옥한 연기에 올려보낸 세월 / 오래토록 색만 바꾸는 계절같이 / 살아가는 것이지'라는 느낌에 그만 눈물을 떨구고 만다.
떡을 팔기 위해 마당에서 달떡을 만드시던 어머니, 수줍어만 하다 만든 떡을 채 풀어 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던 그의 삶과 표정이 잘 녹아있는 인형이다.
얼굴 표정을 만드는 게 제일 어렵다.
나이별로 그에 맞는 연륜이 묻어나야 하고, 기쁜 표정이지만 고생한 흔적이 담긴 얼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품을 만드는 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초가·배추·나뭇잎 등을 모두 한지로 만든다. 배경이 갖춰져야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면서 전체가 어우러진다. 인형만 우두커니 서 있으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시나브로, 초가집 앞에 달린 붉은 고추와 숯이 있는 새끼줄, 미역을 들고 오는 할머니, 고등어를 들고 오는 할아버지, 금방 딴 과일을 이고 오는 아낙네 등 인형 하나 하나의 표정과 손짓에서 놀라울 정도로 작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분위기의 닥종이 인형 면면에서 발견되는 섬세한 표현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한 관람객이 작품을 보며 소리 없이 흘리던 눈물은 아직도 작가에겐 아스라한 추억과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인고의 시간 속에서 빚어 낸 닥종이 인형 속에 아련한 표정의 '우리'가 풋풋한 그 시절의 모습으로 웃고 있다.
한지 인형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비 인형처럼 한국은 물론 외국의 아이들에게까지 사랑 받는 날이 멀지 않았다.
2025년 9월 9일 이종근 청목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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