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이종근, 유성기 갤러리 한옥 도마전 인사말
전주 도심에서 수제(手製) 도마를 선보이는 아주 특별한 이색 전시회가 열립니다.
김제 만경제재소 '유목수의 도마'전이 11일부터 18일까지
한옥마을 전주향교 앞 갤러리 한옥에서 열립니다.
유성기 목수가 도마의 원목인 느티·자작 등 나무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 나이테와 옹이 등의 흔적이 나무 명장의 손길로 오롯이 남은 수제 도마 수십 여 점을 전시합니다.
원목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난 국산 참죽·느티나무 도마 위에 돼지고기 수육을 썰어 올리고 옆옆이 마늘, 양파채, 고사리나물, 꽃잎 하나 같이 곁들이면 최고의 밥상이 됩니다.
후식으로 자그만한 원목 찻상에 다기를 놓고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우려내 마신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요.
나무로 만든 플레이팅 도마 등 용품은 부엌과 식탁 인테리어를 장식함과 동시에 요리 풍미를 더해주는 멋진 소품들입니다.
영화 ‘리틀포레스트’를 비롯, TV 예능 ‘미운우리새끼’ ‘효리네민박’ ‘숲속의 작은집’ 등 인기 프로그램에서 요리 장면이 나올 때 빠지지 않는 소품이 있습니다. 바로 나무 도마입니다.
SBS ‘미운우리새끼’에서 이상민은 값싼 재료로 요리하지만 멋스러운 상차림을 보여주고 싶을 때 아끼는 나무 도마를 이용해 플레이팅 했습니다.
‘효리네민박’에서 이상순은 살치살 스테이크를 나무 도마에 담아 더욱 먹음직스럽게 연출했습니다.
유작가는 조석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유산 소목장으로부터 전통제작 기법을 전수받았습니다.
도마 만들기 과정은 까다로운 원목을 다루고, 여러 복잡한 공정을 거치며 굵은 땀을 흘리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담긴 힘든 작업입니다.
나무 도마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나뭇결을 위해 여러 공정을 거치는데, 이는 단순히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작업 이상의 고도의 기술과 인내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도마는 나무를 깎아 없애야 완성됩니다. 도마는 군더더기 없는 삶이 올바르다고 말합니다.
오늘따라 김영춘시인의 '어머니의 도마'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부엌칼이 스쳐간 자리가 곱다.
마늘도 푸른 고추도
아침과 저녁나절의 어슴프레한 어둠 속에서
사각사각 잘려나가곤 했다.
생선과 고기가 다루어지며
제 비린내를 버릴 때에도
그리 쓸쓸하지 않았다.
도마 위에서는
어린 것들이 입맛을 다시며
모락모락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어머니는 떠나고 없다
나무의 향이 사라진 도마 위로
그녀가 가질 수 없었던 단 한 자루의 칼날이
수천 날을 비스듬히 엇갈리며/남아 있을 따름이다
정갈히 곱다'
그런 도마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시선이 가는 순간 그것의 처연한 삶이 애절하게 느껴졌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 몸으로 칼을 맞고 살아야 하는 운명적인 태생을 알기나 할까요.
수만 번 아니 수억 만 번 이어지는 시간의 부대낌 속에서 때로는 칼보다 더 질기게 버텨냅니다.
전시되는 나무 도마는 아직 ‘상처덩이’는 아닙니다. 이 도마는 앞으로도 몇 년, 아니 몇 십년 더 칼날을 받을 것 같습니다.
먼훗날, 칼날을 받아 ‘상처덩이’가 되어가면서 가물한 기억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지는 최초의 자신을 언뜻 언뜻 떠올릴 것입니다.
2023년 12월 17일 오전 4시 6분쯤 김제시 만경읍의 한 제재소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불길은 1시간 40분 만에 잡혔습니다.
이날 화재로 건물 605㎡와 지게차, 승용차, 목재 등이 탔으나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만경제재소는 몇년의 세월이 흘러 탄화목처럼 더욱 더 유연하고 견고해졌습니다.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평생 아픈 나무들을 돌봐 온 나무 의사 유성기는 오늘도 이렇게 관찰합니다.
부디오셔서 그 나무 속에 숨어있는 그의깊은 마음을 헤아리고 격려 해기 바랍니다.
오늘은 도마가 칠흙 같은 어둠을 뚫고 희망 찾아 구만리 창공으로 힘차게 비상하는 날입니다.
2025년 9월 11일 전주 갤러리 한옥 이종근
'작업실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9> 이종근, 박금숙 닥종이 인형 전시회 인사말 (0) | 2025.09.10 |
|---|---|
| <8> 백담 백종희 서예가 개인전 인사말 (0) | 2025.09.09 |
| 최금숙, 부안 격포항 꽃내음센터 전시실서 초대 개인전 (3) | 2025.07.29 |
| 유휴열화백, 일본 오사카 아마노갤러리 개인전 (2) | 2025.07.21 |
| 예인 윤문순, 20일까지 전주공예품전시관 1관서 세 번째 개인전 (8) | 2025.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