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감사 조용석에게 보내는 편지(상), 전라감사 조창석에게 보내는 편지(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전라감사 조창석(趙昌錫)과 전라감사 조용석(趙龍錫)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돼 눈길을 끈다.
‘근래에 그리움이 깊었는데 홀연 존장의 편지를 받고 여러 말씀을 들으니, 특히 위로되었습니다. 다만 영감의 몸이 마침 가볍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실로 심신의 수고로움으로 말미암아 그런 것이니 부디 철에 따라 몸을 잘 조리하여 시대적인 바램에 따르십시오. 여러 편지의 가르침은 비루한 제가 더없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옛날 기록된 유별나게 도드라진 편지가 있었습니다. 북쪽에서 보내온 저상(苧相)께서 일러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여기 이 아무개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도리어 영광일 것입니다. 이 늙은이가 실로 이자의 마음을 먼저 알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십수일 전부터 더위를 먹억서 설사병이 매우 위중하여 지금은 거의 버티지 못합니다. 갑자기 먼저 나타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밖으로 화액을 당하는 근심일 뿐이니 어찌하겠습니까. 미음을 입에 넣기 전에 아픈 골수를 먼저 펴주시니 참으로 작은 은혜가 아닙니다. 두 개의 포육(腊)도 참으로 감사합니다. 환자(還子)를 요청한 편지를 보살펴주심이 이에 이르니 어찌 이루 다 다음에 새겨 간직하겠습니다. 실로 헤아리시는데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하략)’
‘전라감사 조창석(與 全羅監司 趙昌錫)’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우암 송시열이 설사병이 아주 심해 두 개의 포육(腊)을 받았음이 나타난다. 아마도 전라감사에게 식사 대접이 아닌 먹을 것을 준 것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자료인 것 같다.
또, ‘전라감사 조용석(與 全羅監司 趙龍錫)’에게 보낸 편지는 서원이 완성된 것에 송시열이 감사를 청하는 내용이다.
‘한 번에 두 통의 편지를 받았으니 어찌 위안이 이만하겠습니까? 다만 그대의 아우께서 짝을 잃은 것을 생각하니 덕 있는 가문에서 만날 일이 의당 아니라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의 비용을 염려하는 것이 본디 유사의 일상적인 일이지만 굶주린 백성의 입에 들어가는 것까지 야박하게 따지는 것을 조정에서 차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감은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하시는데 두 대감은 마치 듣지 못한 듯하니 소위, “주장(主將)에게 말을 하여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가소로운 일입니다. 서원(書院)이 완성되었으니 와서 묵으라는 말씀은 감히 청하지는 못했으나 참으로 원하던 바입니다. 흔쾌히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가어(家語)’에 ‘장수가 듣고 좋아했다’라고 한 것이 이와 같았을 것이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모든 일에는 참으로 때가 있습니다. 많은 생각은 모두 멈추어 두고 뵙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처가인 한산이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우암의 서찰집 등을 최초로 해석한 책이 출간됐다. ‘우암 송시열- 우재간축(역주 김운기, 펴낸 곳 도서출판 다운샘)’은 송시열의 방대한 친필을 바탕으로 우암의 개인적 행적, 당시 사회상 등을 해석해 한문학과 역사학의 중요한 사료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방대한 서찰집을 수신인 기준으로 4첩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2첩 ‘양송간독’은 우암과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각지에 있는 지인 및 문인들과 교유한 서찰을 묶었다.
진안 황윤(黃玧)에게 보낸 편지, 여산현감 태재(台齊)에게 보낸 답장, 전라감사 조창석(趙昌錫)에게 보낸 편지, 전라감사 조영석(趙龍錫)에게 보낸 편지, 임피현령 송국룡(宋國龍)에게 보낸 편지, 전주서원(全州書院) 유생(儒生)에게 보낸 편지
도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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