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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발로 하나 되는 통일이용원 ‘77년의 애환’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9월 18일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통일이용원'에서 최경민 이발사와 손님들이 이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18일 오전 10시 전주시 중화산동 ‘통일이용원’. TV 중계방송을 힐끗대던 어르신 서너 명은 예고도 없이 나타난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이내 머리에 염색약을 바른 한 70대 노인이 “정상회담을 한다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냐”고 따졌다. 이발사 최경민 씨(는 “우리 가게 이름처럼 진정한 통일로 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가위를 고쳐 잡았다.

지난 1946년부터 77년 동안 명맥이 유지된,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인 통일이용원은 최근 전주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광복 직후부터 분단의 아픔과 시민혁명을 거쳐온 통일이용원은 전주에선 그 자체로 ‘역사 교과서’다.


왜 ‘통일’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용원인지 물었다.


“애초에 주변에 이용원이 3개나 있었는데, 내가 근무하기 시작한 1971년부터 하나로 통합하면서 ‘통일이용원’이란 간판을 걸었어요.”


하루 100여명에 달하는 손님들이 몰려 전성기를 구가했던 통일이용원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쓴맛을 봤다. 여기에 젊은층이 이용원보다는 미용실로 발길을 돌리면서 타격이 더 컸다.


빠르게 지나간 세월이지만 통일이용원은 모든 게 느릿느릿 흘러간다. 최신식 기계는 없다. 수동식 의자와 가위, 면도기 모두 늙었다. 어른 6000원, 학생 4000원. 가격도 8년 전 그대로다.


하지만 옛 정취를 찾기 위한 손님들이 멀리서도 찾는다. 가격이 저렴해 고등학생들도 솔찬하다.


최 씨는 “요즘은 서신동이나 송천동에서 차를 타고 오는 손님도 많다”면서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도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 씨는 마음의 고민까지 ‘싹둑’ 잘라낸다. 인터뷰 내내 최 씨는 손님들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얼마 전 쓰러진 아내가 예수병원에 입원하고, 홀로 식사한다는 노인의 고민과 애환이 묻어나온다.


최 씨는 “통일이용원은 단순히 머리를 다듬는 데 그치지 않는다”면서 “세상살이, 동네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고민도 나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이어 “통일이용원을 운영하면서 통일단체나 종교단체로 오해를 많이 받아 왔다”면서도 “동네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 닿는데 까지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손님들의 머리를 다듬으며 잠깐씩 TV속 남북 정상을 바로보던 최 씨의 눈에는 동네를 넘어 나라가 하나로 통일되는 모습이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이렇듯 가위로 통일을 외쳐서 일까. 점심시간인가 싶더니 동네 사람들이 작은 문을 밀고 또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세월이 변했어도 그들에게는 ‘통일이용원’이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