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선정 감사의 뜻 한땀 한땀 124명이 수놓은 진안 천인산
ㅡ139년전 진안현감 신영균 공덕기려 지름 140cm 길이 230cm 작품 제작
ㅡ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유물보존총서Ⅹ '수령의 선정을 기리는 선물: 만인산' 발간
'마이산(馬耳山) 1,000장(丈)의 붓으로 송덕의 글을 쓸 수 있으니, 봉두굴(鳳頭窟) 오색의 실로 장차 비단에 수 놓아 명성을 이루려고 하네'
지금으로부터 1백39년전, 진안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희귀 자료가 공개돼 흥미를 더한다.
지방관의 선정을 기원하며 전 지역민의 이름을 수놓아 바친 '천인산'이 바로 그것이다.
유생 이택열 등 1백24명이 진안현감(1885.5-1888.3) 신영균(申永均, 1833-1922)의 선정을 기리는 ‘천인산(일산, 日傘)으로, 감사, 유수, 수령 들이 부임할 때 받치던 양산)’을 정성스럽게 손수 만들어 바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천인산(千人傘, 지름 1백40cm, 길이 2백30cm)’은 국립민속박물관이 1976년 구입했다.
고종 22년(1885년) 11월에 유생 이덕연 등 1백24명의 사람들이 참여 그 공덕을 흥모하면서 만든 소중한 유물이다.
그 내용은 ‘천인산(千人傘)’이란 타이틀과 함께 ‘수복강령(壽福康寧)’이란 글로 시작, 이어 주민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귀감이 되는 정치를 생활화, 그 감화를 잊지 못한다는 내용이 수(繡)놓아 쓰여져 있다.
바로 그 뒤에 1백24명의 명단이 모두 나열됐다.
1885년 5월부터 1888년 3월까지 진안현감으로 재직할 당시, 선정을 베푼 까닭에 지역민들이 그를 ‘신보(神父)’라 부르고, 생사당(生祠堂,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는 표시로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백성들이 제사 지내는 사당)을 건립하기도 했다는 기록이다. 후에 진안구 상전면 갈현마을에 살았다는 일부의 기록도 보인다.
신영균은 조선 말기의 문관으로 고종 13년(1876년) 장사랑에 제수되어 순강원수봉관(順康院守奉官)을 지냈다. 의금부도사, 공릉령(恭陵令), 진안현감, 청안현감에 임명됐으며 부친상을 당해 사직했다.
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동시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특진됐다. 1884년 갑신정변 때 동지 1백여 인을 규합, 세자와 신정왕후(神貞王后), 명성황후(明成皇后)를 호위한 공로로 고종으로부터 내탕금 5,000냥을 하사받았다. 그는 이 자금으로 갑신정변에 반대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창의계(倡義契)를 조직, 왕에 대한 충절을 맹세하기도 했다. 저서로 ‘인당집(忍堂集)’을 펴낸 바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유물보존총서Ⅹ '수령의 선정을 기리는 선물: 만인산'을 펴냈다.
'만인산'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만인산 4점과 천인산(千人傘) 1점에 대한 보존과학 및 민속학 분야 연구 성과물이다.
1873년에서 1887년 사이에 제작된 '만인산'들을 분석했다.
'만인산'은 2006년에 보존 처리를 시작, 2024년에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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