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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견훤이 신라말 임실에서 대를 쌓고 활을 쏘았다’[‘운수지(雲水志) 을묘본’을 다시보니] 견훤대의 자세한 이야기와 이두연의 작품 소개

 




임실 ‘운수지(雲水志) 을묘본’(1675)의 ‘고적(古跡)’에 견훤대(甄萱臺)가 나와 눈길을 끈다. 최근들어 임실군이 이 책을 한글로 번역·간행했다. 편집자

이 책 속의 견훤대는 임실군 강진면 강진리 다래끼봉을 말하는 것 같다. 진사 이두연(李斗淵)이 지은 부(賦)를 보면 십여 칸의 누각이 있었다고 나온다.
임실군 강진면 소재지에서 순창방면으로 몇백미터를 가면 섬진중학교가 나온다. 섬진중학교 대각선 방향으로 ‘회진교’라는 작은 다리가 있다. 회진교 입구에 ‘견훤대(甄萱臺)·일명 다래끼봉·희마대(戱馬臺)’라는 작은 팻말이 보인다. 작은 동산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이름이다. 임실에 웬 ‘견훤대’? 또 견훤대의 다른 이름이 ‘다래끼봉’과 ‘희마대’일까?
견훤대는 후백제와, 다래끼봉은 잉어명당과 상관관계가 있다. 견훤대란 이름은 이 작은 동산에서 견훤이 말을 타고 군사훈련을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1730년에 쓰인 ‘운수지(雲水志)’ 기록이다. 운수(雲水)는 임실의 다른 이름이다.
임실군 강진면 회진리 인근에 견훤이 군사훈련을 했다고 전해지는 견훤대가 있다. 1730년 필사본 ‘운수지’ 누정조에 있는 견훤대에 대한 기록에는, “갈담 위 잠두(蠶豆)에 있다. 사람들이 전하길, 견훤(甄萱)이 대 위에서 말타고 놀았다고 하여 달리 희마대(戲馬臺)라고 했”고 기록되어 있다.
갈담(葛潭)은 임실군 강진면 갈천(葛川)이 있는 곳이다. 요즘은 필봉(筆鋒) 또한 필봉문화촌으로 더 유명하다. ‘운수지’ 하천조에 의하면, 갈담(葛潭)은 진안 중대산(中臺山)에서부터 흘러 나와 동쪽으로 흘러 운암강(雲巖江)이 되고 태인 운주수(雲住水)와 더불어 합류한다. 20리를 흘러내려 갈원(葛院) 앞에서 시내가 합류하여 갈담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갈원은 갈담에 있었던 갈담역(葛覃驛)과 갈담원(葛覃院)을 뜻한다. 위의 두 기록에 따르면, 견훤대는 갈담 즉, 운암강과 운주수가 합수한 물이 옥정호 섬진강 다목적댐을 통해 흘러 청웅면과 강진면 일대에서 흘러내린 지류가 합수하는 곳인 갈담의 잠두에 있다.
잠두는 산자락의 주봉에서 길게 뻗어 그 형상이 마치 누에처럼 튀어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이같은 지형이 오늘날 강진면 회진리에 있는 다래끼봉으로 추측된다. 얼마 전에 구이에서부터 순창에 이르는 지방도가 다래끼봉의 목부분을 지나가면서 경관을 해치고 있으나 그 형상은 지금도 완연하다.
그러나 ‘운수지’가 씌여진 1730년대 유학자들의 ‘견훤대’ 기록이 이 지역 전설과 결합, 말놀이 장소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운수지(雲水志) 을묘본’(1675)을 보면 ‘현의 45리 갈담교 위에 있다. 신라말 견훤이 반란을 일으키고 완산(完山)에 웅거하면서 여기에 대(臺)를 쌓고, 강무(講武)하는 곳으로 삼았다. 때문에 활을 쏘는 곳이 있었다. 이두연은 견훤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운수(雲水)의 서쪽 옥천(玉川)의 북쪽 우뚝 솟은 대(臺) 번화한 유적이로구나. 어느 시대를 발호(跋扈)했던가. 간웅(奸雄)의 대 위에 있었구나.(중략) 용부(龍符)가 도참에 부응하여 태봉(泰封)이 앞장서고 잇달아 완성(完城)이 참칭(僭稱)했다. 산동이 넘어가고 관북이 전란에 놀라더니 한 번에 남쪽을 점거하니 50여 성이었네. 남북을 넘나들며 모이는 긴요한 곳이고 수륙(
水陸)을 끼고 있는 형세가 빼어난 곳이로다.(중략) 금수(錦水)같은 완산에서 한 구역을 복거(
卜居)하더니 명승에 세웠도다. 이 산에 있는 대, 하늘이 우뚝 솟게 빚어 놓은 곳이어서 백성들은 축대를 세우는 데 힘들이지 않았고, 자연스러운 지세 때문에 십실(十室)을 짓는데 물자도 쓰지 않았다.(중략) 옛날의 풍광을 누가 있어 알겠는가. 흐르는 강물은 휘돌지 않고 묻고 싶어도 물을 길이 없네. 어스름 저녁 무렵 물가 모래톱 노래하노니, 문산(文山)은 높디 높고 갈담은 유유히 흐른다. 영웅은 한 순간에 가버리고 옛 대는 사람이 없구나. 나그네 와서 옛 자취을 찾곤하지만 눈에 가득한 가시덤불. 후인들에게 경계하노라. 나루 가는 길 잃을까’
'운수지’에 기록된 갈담의 견훤대 설화는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성수산 상이암 설화와 함께 새 나라를 세우고 새 시대를 열고자 했던 영웅호걸의 건국담(建國談)이 남아있는 임실의 새로운 명소가 되지 않을까. 이를 되살릴 방법은 없나./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