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과 부호가 많았던 전주는 예부터 다른 지방보다 가구공예가 특별히 발달했다. 견고함은 물론이고 실용적이면서도 화려하고 기품있는 맞춤형의 그 작은 가구에 사람들은 ‘전주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최고의 대접을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전주장(全州欌)'은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전주장의 찬연한 맥을 잇고 싶다."
목산 소목장인 박기춘씨가 전주시 대성동(내원당길 72)에 작업실과 공장, 전시관 등을 마련했다. 이달 중순 무렵에 정식으로 오픈식을 가질 예정이다.
목산 박기춘 목공예 작업실, 목산 박기춘 작품 전시관, 조선시대 생활가구, 거북종합 인테리어 등 4개의 문패를 달았다. 작품 전시관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옛날 책장, 2층장, 3층장, 약장, 문갑, 사탁, 가마 등 20여 점의 작품이 전시중이다. 그는 이미 버선장, 이층장, 머릿장 등 다양한 전주장을 복원했다.
"나무에 불을 갖다대면 불붙어 재만 남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동나무는 겉을 불로 그을려야 단단해지고 제 무늬를 예쁘게 드러낸다. 나무로 시간 다듬었다. 나무가 내 삶을 보듬어줬다"
그는 전주출신으로 57년 여 동안 나무를 갖고 전통 짜맞춤 방식으로 직접 지은 자신의 작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무엇인가를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작품을 만들고 일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인테리어 목수일을 병행했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벌려 손 가는 대로 일했고, 웬만한 가구들은 거뜬히 제작해냈다.
“저는 진짜가 좋다. 진짜.” 목공 일을 할 수는 있었지만 ‘진짜’ 짜맞춤 가구를 배워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1968년 무렵,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이인수(대일가구 사장)으로 가구점이 남문에 있었다.
그는 대패에 쓰이는 날을 가는 것부터 톱질과 끌질, 대패질까지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책가도에서 흔히 보이는 사방탁자와 선비의 책상인 서안, 어깨 넓은 전주장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고, 점차 알고 있던 가구와는 차원이 다른 내구성과 조형미를 실감했다.
“나무는 환경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피할 수 없다. 여기에 철로 만든 못이 들어가면, 나무가 수축했다 팽창을 하는 순간 빠져서 망가지게 된다. 짜맞춘 나무는 호흡하듯 수축과 팽창을 함께하기 때문에 이음새가 빠지지 않고 견고하다. 한마디로 과학적이다.”
기술에 목말라 찾아간 소목장이지만 만들수록 우리 가구의 정제된 아름다움에도 눈을 떴다.“전주장은 질리지가 않는다. 가면 갈수록 아름답다고 느낀다. 불필요한 것은 다 빼서 되레 모더니즘에 가까워요. 장식들이 많은 것도 있는데, 단순장식이 아니라 각자 나무를 잡아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서로 다른 나무가 한 몸이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가구가 완성된다. 제가 만들고 있는 가구들은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적인 미감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
그는 전주 풍남제 행사때 1,2,3회 연속 가마행렬에 사용된 가마를 만든 주인공이다. 풍남제는 전주시에서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옷날에 베풀어지는 민속제전이다. 목공일을 수십 년 해 온 경험 많은 목수도 어지간해서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가마를 만들어낸 것.
그는 나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장식품을 전체적인 형태를 눈으로 한번 보기만 해도 어떻게 제작해야 되는지 방법이 떠오른다 할 정도로 눈썰미가 좋다. 그가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내는 가구와 공예품들의 제작기법은 한국의 전통방법인 장부짜임(목구조의 한 부재에 장부를 내고 다른 부재에는 장부구멍을 파서 끼우는 결구법), 연귀촉짜임(세모꼴 파임을 이용한 짜임. 보통 사방탁자의 세로 기둥과 가로 쇠목을 연결할 때 쓰이며 각재를 90도로 연결해주는 기법) 같은 전통 짜임기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는 전통가구를 재현함에 과거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마감에 어울리도록 조형성과 실용성을 고려하는 독창성을 구사한다.
그는 제24회 통일문화제 통일미술대전엔 '통일의 선비장'으로 통일문화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제17회 세종문화대상 목공예문 명품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4회 대한민국 전통 공예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해엔 진주 유등축제 등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7년엔 문화재 수리기능자(소목수)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2019년엔 대한민국전통미술대전에서 특별상을, 2020년엔 전국한옥기능대회에서 노동부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제28회 전주전통공예대전에서 '선비탁자'로 장려상을 받았고, 제39회 무등미술대전서 '전주장'으로 특선을 했다.
지난 2월엔 전주향교 앞 갤러리 한옥이 15일부터 21일까지 첫 개인전을가진 바 있다.
/이종근기자
'작업실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운섭, 전주KBS 갤러리서 개인전 '봄 같은 추억' (4) | 2024.11.06 |
---|---|
남강 우상기화백, 우진문화공간서 개인전...'다각시법' 선뵈 (1) | 2024.11.03 |
조영대, 전남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기획전 ‘抽象, Abstract, 추상’에 참여 (0) | 2024.11.03 |
한국화가 정재석 신작 (0) | 2024.10.22 |
조인숙, 전주향교 앞 갤러리 한옥서 개인전 (3) | 2024.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