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릉 채만식(1902~1950)의 소설 '탁류(1939, 박문서관) ' 초판본이자 국내 유일본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바래버린 원고에도 불구하고 글씨가 더 더욱 선명하다.
이와 함께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의 '화사집(花蛇集, 1941, 남만서고)' 초판본이 전시되고 시인와 치과의사(박사) 겸 시인 김경수의 '국화옆에서' 시화도자기 몇 점도 모습을 드러낸다.
국립한국문학관이 9월 28일부터 11월 24일까지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국문학의 맥박전’을 갖는다.
문학관이 법인설립 5주년을 맞아 소장하고 있던 70여 점의 국내 유일본, 문인 친필원고 등의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문학주간 2024’를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관심을 갖고, 문학을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2016년부터 매년 열리는 국민참여형 문학 축제를 말한다.
전시는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초판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 판본인 이인직의 '혈의 누' 재판본, 최초로 공개되는 이상의 친필원고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국내 유일본 자료들을 모두 볼 수 있다.
1부는 '위대한 시도'라는 이름으로, 한국 문학사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전시장이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중요한 문학사적 전환을 가져온 작품들이기에, 작품과 설명을 살펴보면서 우리 문학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최초의 한글 창작물은 무엇일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새’ 읽어보지는 않았더라도 구절을 들으면 바로 무릎을 치게 되는, 그 '용비어천가'다. 1612년 '용비어천가' 판본이 전시, 관람객들은 직접 해당 구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2부 '근대의 파동을 전하다'는 역동적인 근대 문학장의 풍경을 담은 초판본을 소개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노천명의 작품집이 전시되어 있다. 백석의 따스하고 정겨운 평안도 사투리가 담긴 원고지부터, '자화상'이라는 동일한 테마를 통해 상실의 시대를 그려 나간 노천명, 윤동주, 서정주의 언어를 읽어볼 수 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판본이 전시되어 있다.
5부 '문학의 울림'은 국립한국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가들의 육필원고 및 기증품, 국내 유일본을 소개한다. 영상 코너를 뒤로하고, 둥근 방 형태로 만들어진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채만식의 '탁류'를 만날 수 있다.
채만식의 '탁류'는 1937년 10월부터 1938년 5월까지 조선일보에서 연재되었던 소설로, 1939년 10월에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작품이지만, 이번 전시에 등장한 '탁류'는 초판본이자 국내 유일본이라고 한다. 바래버린 원고에도 불구하고 글씨는 선명하다.
서정주 시인와 치과의사(박사) 겸 시인 김경수의 '국화옆에서' 시화도자기도 눈길을 끌고 있다.
시인 생전에 김박사는 남한산성, 광주를 오고가며 방학과 주말에 5년 여를 보내며 도자기 백자와 분청을 구웠다.
그는 시인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오랜 세월 남현동 봉산산방을 드나들며 교류를 했다.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시인의 큰아들 승혜와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하다.
이 도자기는 서정주가 ‘국화 옆에서’ 시를 쓰고 김수경이 도자를 빚고 국화를 그린 작품이다. ‘국화 옆에서’ 시는 30대 서정주가 소년 시절의 기억으로 만든 작품으로 서정주를 유독 아꼈던 여자선생님과의 짧았던 만남과 이별, 이별을 달래주던 바느질 솜씨와 마음씨 좋던 이웃집 아주머니와의 정감 어린 기억이 노란 국화의 모습으로 남았다.
시인은 도자기에 자신의 시와 글을 썼고 김박사는 그림과 각(刻)을 했다. 김박사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남한산성의 가을빛이 익어갈 때 볏가리에 벌떡 누우시며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보입니다. 그 겨울 눈이 펄펄 오는데 옛 도로를 달릴 때 ‘야! 오늘은 이 설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하셨고 때로는 주말 도요에서 일이 끝난 뒤 도공들이 난로에 장작불을 피워 김치찌개를 하고, 막걸리 한통을 가져왔습니다. 한잔씩하고 창문을 열어보니, 하얀 꽃 눈송이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 정겹던 그날이 어느덧 40년이 지났습니다. 서선생님이 안 계신 이 전시회를 또 하고 있습니다. 도자기를 하러 다니며 하였던 그 시간과 대화를 저는 영영 못 잊을 것입니다. 경기도 광주 우출도요에서 작품을 하시기 전 ‘수경이, 나 막걸리 한잔 주지!’하시며 작품 앞에서 긴장하시던 모습이 보입니다.
홍도와 삼길포를 이야기하고, 수덕사, 수덕여관에 관한 나혜석과 이응로 화백에 대한 추억도 말씀하셨습니다. 무학대사의 간월도와 간월암의 깊은 뜻도 들려 주셨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면 40년이라는 세월의 강은 그저 어제와 같습니다”
김박사는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런던대학과 에딘버러대학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서울대 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서정주 시인과 교류하면서 1982년 3월과 1983년 5월 함께 도자시화전을 가진 바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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