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 의겸(義謙, 1713~1757)이 1725년 그린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 불화가 국보로 승격됐다. 그는 개암사와 안국사 괘불을 그린 화승(畵僧)이다. 또,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는 화승인 원담(圓潭)과 내원(乃圓), 익찬(益贊), 도순(道詢) 등이 제작한 것으로 토벽에 그려져 있다.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화승이었던 의겸(義謙)을 계승한 내원과 익찬 등이 함께 조성한 작품으로, 19세기 호남 지역 불화 양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개암사 괘불
개암사 괘불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중앙에 안치하고 상단에는 다보여래와 아미타불,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담고 있다. 개암사 괘불은 당시 최고의 승려 화가였던 의겸(義謙)을 비롯, 영안(永眼), 민희(敏熙), 호밀(好密) 등 13명이 함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탱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괘불에서 많이 그려지는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길이 1,321cm, 폭 917cm의 이 괘불은 석가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보살이 서 있고 뒷쪽에는 다보여래,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세지보살이 있으며, 앉아 있는 2구의 작은 불상도 보인다. 석가는 머리끝에서 다섯 줄기의 빛이 나며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의 옷을 걸치고 서 있는 모습이다. 각 상들의 얼굴 형태와 어깨는 각지게 표현, 경직되어 보이며, 눈썹은 처지게 처리했고 선은 매우 정밀하고 세련되어 강한 인상을 준다. 채색은 주로 붉은색과 녹색에 금색을 사용했고 군청색을 넣어 색채 대비도 보여주고 있다.
1749년(영조 25년) 승려화가 의겸이 참여한 그림으로 화면을 꽉 채운 구도와 경직된 형태, 강렬한 색채 등으로 18세기 중엽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며, 제작 연대도 확실, 우리나라 불교 회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화승인 의겸의 이름 앞에는 학문과 덕행이 높은 스님 앞에 붙이는 '존숙(尊宿)'이라는 존칭이 있어 그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개암사 괘불탱의 밑그림도 남아 있는데, 현재 밝혀진 유일한 것으로 당시 괘불화의 제작 과정과 필치 등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 그림이다. 의겸 등 여러 승려 화가들이 그린 이 그림은 본존불을 강조하여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1792년(정조 16년), 1809년(순조 9년)에 뒷벽을 새단장한 기록이 있어 승려화가인 의겸이 활약한 1730년(영조 6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길이 11.08m, 폭 7.31m 크기의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다보여래, 문수, 보현보살이 있고, 왼쪽에는 아미타불, 관음, 대세지보살이 서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석가모니는 화면 중앙에 서 있는데 이목구비는 큼직큼직하며 건장하고 각진 어깨, 노출된 가슴, 유난히 길게 늘어진 팔, 짧아 보이는 하체를 지녔으며 이렇게 크고 건장한 신체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하다. 녹색과 주황색을 주로 사용했고 회색, 분홍 등 중간색을 넣어 은은한 분위기를 나타내며 구름, 연꽃, 단청문양 등으로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禪雲寺大雄寶殿三身三世佛壁畵)는 1840년(헌종 6) 화승인 원담(圓潭)과 내원(乃圓), 익찬(益贊), 도순(道詢) 등이 제작한 것으로 토벽에 그려져 있다.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화승이었던 의겸(義謙)을 계승한 내원과 익찬 등이 함께 조성한 작품으로, 19세기 호남 지역 불화 양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두 예밖에 남아 있지 않은 대표적인 후불 벽화다. 세 폭의 삼신삼세불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유일한 벽화이다. 보물 제290호로 지정된 선운사의 중심전각인 대웅보전은 조선중기의 건축물답게 섬세하고 다포의 짜임새가 장식적이다. 이곳에 봉안돼 있는 소조 비로자나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뒤에 대규모로 그려져 있어 장중함과 숭고한 분위기로 전각을 압도하고 있는 후불벽화 ‘삼불회도’가 눈에 띈다. 보통 규모가 큰 조선시대 사찰의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삼세불(三世佛)로 모셔져 있는 것이 관례이지만, 선운사 대웅전에는 중앙의 불상과 불화가 모두 비로자나불로 봉안돼 있기 때문이다.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는 삼신불과 삼세불이 결합된 삼신삼세불 형식을 취하고 있다. 원래 삼신불은 비로자나불·석가불·노사나불, 삼세불은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약사불이지만, 여기에서는 삼신불의 바로자나불과 삼세불의 아미타불, 약사불을 함께 결합하여 새로운 도상을 만들었다. 삼신불과 삼세불이 결합된 도상은 조선 전기부터 나타나며, 대부분 삼신불과 삼세불을 합하여 비로자나불·석가모니불·노사나불·아미타불·약사불의 5불을 모두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에서는 삼신불의 주불인 바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세불의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결합한 구성을 보여 준다. 이러한 결합은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을 일체로 보는 사상적 배경에서 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불상에서는 기림사의 삼신삼세불상이 이와 동일한 구성을 갖고 있다.
‘비로자나불 벽화’와 ‘아미타불 벽화’, ‘약사불 벽화’ 등 세 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신불(三身佛)인 비로차나불(毘盧遮那佛)과 삼세불(三世佛)인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불(藥師佛)을 결합한 삼신삼세불화(三身三世佛畵)의 형식을 보여 준다. 1476년(성종 7)에 제작된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와 함께 조선 시대 후불 벽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선운사 대웅보전 삼불벽화, 또는 선운사 대웅보전 비로자나삼신불벽화로도 불린다.
선운사 대웅보전 삼신삼세불 벽화는 1633년(인조 11)에 제작, 선운사의 대웅보전에 봉안된 목조 비로자나 불상·아미타 불상·약사 불상의 뒤 3칸 벽면에 각각 후불 벽화로 그려져 있다. 벽화 하단부에 적혀 있는 화기에 의하면, 1840년 8월 전라북도 고창군 마명에 거주하는 오경장(吳景章) 등이 수명장수와 극락왕생 등을 기원하며 세 폭의 존상화를 그려서 봉안했다고 한다.
세 폭의 벽화는 중앙에 본존불을 크게 그리고 좌우에 보살과 제자 또는 사천왕상 등을 묘사한 간단한 배치를 보여 준다. 세 벽화 모두 구도는 본존불이 화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려졌으며, 좌우 각각 4구씩 8구의 권속들만 배치된 간단한 9존도 형식을 취하였다. 권속들은 3단으로 보살과 나한, 제자 등이 본존을 에워싸는 구도를 보여 준다. 얼굴은 대체로 둥근 편이며, 상체는 사각형에 가깝지만 무릎이 높고 큼직하여 전체적으로 장대한 신체라 할 수 있다. 채색은 적갈색과 연한 녹색, 흰색을 주로 사용했으며, 채운(彩雲)은 흰색과 연녹색을 칠해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느낌의 색조를 보여주고 있다./이종근기자
'한국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47> 다리군수 유범수 (0) | 2024.08.07 |
---|---|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45> 정읍 풍류방 진산동 영모재 토끼와 꽃담 (0) | 2024.08.06 |
바느질을 잘하는 경기도 여자, 음식 잘하는 전라도 여자 (2) | 2024.05.28 |
별건곤 12호의 나주 소반 (0) | 2024.05.27 |
김우가 둥근 부채를 선물로 주어 시를 짓다(題金友惠饋團扇) 정해일 대신 짓다(代鄭海日作 己酉) (0) | 2024.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