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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사람

“선조들의 흔적이 문화재가 됐어요. 백석서원 앞에 강당 지어 강의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백석 류집선생 13대 종손 류태현 인터뷰



“선조들의 흔적이 이제 문화재가 됐어요. ‘백석서원’ 앞에 강당을 지어 강의실을 만들어 연구의 도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백석(白石) 류집(柳楫, 1585~1651)선생 13대 종손 류태현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집안의 각종 문서와 자료를 챙기는 것을 보고 자랐다고 했다.
그는 김제가 낳은 충절의 상징이며, 호남의 학문적 기반과 김제서예의 근원적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인 백석 류집선생과 관련된 류집 묘비와 백석서원이 2022년 7월 1일자로 김제향토문화유산 7호로 지정, 더없이 뿌듯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석 류집, 반곡(盤谷) 류도(柳棹) 선생의 발자취’, ‘백석 류집 선생의 생애’, ‘상소문으로 바라본 김제군 현황과 대책’ 등 크고 작은 인쇄물을 만들어 6년 여 동안 경향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노력한 보람이 결실을 얻은 것.
“우리 문화류씨(文化柳氏)는 고려조 휘 류차달(柳車達) 삼한공신(三韓功臣)의 후손들입니다. 고려조 류차달의 7세손 휘 류공권(柳公權)에 이르러 가문이 크게 번성했으며 그 번성은 조선조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어 “13세손 김한성공(한성판윤) 류원현, 정숙공(영의정) 류정현, 판서공(류정무) 형제분과 그리고 인척 좌상공(류만수)이 조선조 초기, 개국과 국가안정에 큰 역할을 담당하여 업적을 납깁니다. 그 후 14세손 휘 류형(회인현감), 15세손 휘 류효중(창평현감), 16세손 휘 류인사(강동현령), 17세손 휘 류간(후릉참봉)으로 가문의 영광을 이어갑니다. 20세손 휘 류태형, 21세손 휘 류집, 그 동생 휘 류도의 발자취를 중점적으로 발굴, 취합, 편집, 집필, 우리 종원 여러분께 선조님의 자랑스러운 유산을 기록으로 전달할까 한다”고 했다.
그는 여러 번 고민 끝에 이 책은 정사(正史) 85%, 야사(野史) 10%, 구전(口傳) 5%를 반영하여 집필했다.
“사실을 바탕으로 발행함을 알려 드립니다. 정사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대종손 본인이 간직하고 있는 교지 원본, 문화류씨 경신보(1740년 경신년 발행) 원본, 백석, 반곡 유고집, 호남 창의록, 백천 유고집, 김제문화원발행지, 기타 120여 점의 문서 원본 등 각종 고문서를 기초로 했고 야사는 묘갈명, 행장, 문화류씨 대종보를 기초로 했으며, 구전은 수곡마을에 대한 선친,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기초로 했음을 알려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조금 일찍 ‘백석 류집, 반곡(盤谷) 류도(柳棹) 선생의 발자취’를 발간하지 못한 점, 종손(후릉참봉 17대) 본인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 본 발간사를 통해 죄송함을 전해드립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선조님 들의 자료를 발굴하여 종원 여러분께 제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저희들은 집필과 출판의 비전문가들입니다. 문맥이 어색하거나 오, 탈자가 있더라도 너그럽게 양해 바랍니다. 끝으로 이 책 발간의 공동 저자이신 류인명. 류득열, 류재용씨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는 1636년 12월 25일 옥과현감 이흥발, 대동찰방 이기발, 순창현감 최 온, 전 한림 양만용, 전 찰방 류집 등이 창의 격문을 만드는 등 ‘호남창의록(湖南倡義錄)’ 5현(五賢)의 이름을 몰르는 사람들이 많아 아쉽다“면서 “‘짧은 쟁기로 구름을 갈고(短耒耕雲) 긴 대나무 막대기로 달을 낚는다(長竿釣月)’는 류집 선조가 오늘따라 더욱 더 그립다”고 했다.
김제출신인 그는 백석 류집선생 13대 종손, 수곡(樹谷) 류태형(柳泰亨)선생 14대 종손, 후릉참봉(厚陵參奉) 류간(柳侃)선생 17대 종손으로, 현대기공주식회사 고문을 맡고 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