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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기화 전 고창문화원장, 고창의 역사를 남기고 하늘로 가다

전 고창문화원장(고창지역학연구소장)이 이기화씨가 28일 선종했다. 향년 89세.
그는 생전에 무수히 많은 향토 사료를 발굴했다. 제8회 녹두대상을 수상한 고인은 ‘전봉준 장군 고창 태생설에 관한 구명’과 ‘전봉준의 가계와 태생설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두 편의 논문을 발표, 동학연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고창지역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뚜렷한 역사적 고증이 없던 시기에 고창 촌로들의 생생한 증언과 천안 전씨 족보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20여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고창지역의 동학농민혁명사를 정리하기도 했다.
2006년 10월 정읍에서 열린 제47회 전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고창오거리당산제를 보존하기 위한 시연단이 구성됐다. 오거리당산보존회, 고향회, 문화원회, 생활체육회 체종회, 이장단과 지역주민들은 당산제 시연단을 만들어, 지역 문화 보존과 계승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시연단 공동대표는 이기화 문화원장과 오태원 오거리당산보존회장이 맡고, 고창읍장 군문화관광과장 고창농악보존회장 고창읍리장단협의회장 등이 자문위원에 위촉됐다. 당시 시연단에 참여하는 인사는 농악단을 중심으로 모두 307명에 이른다. 오거리당산제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명맥이 끊길 위기도 있었지만 앞서 1981년 이기화 전 원장을 비롯한 고창사람들이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를 구성, 전통을 계승 보존 해오고 있다. 2007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며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홀로 사적을 다니면서 천주교 순교터를 새로 발견했다. 2015년엔 81세때, 그(레오·전주교구 고창본당)는 전주교구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최여겸(마티아) 순교복자의 개갑장터 순교사건에 대한 연구 단초를 제공하고, 증거자료를 발굴했으며, 그 사실을 널리 알려 시복과 개갑순교성지 조성에 큰 역할을 한 공로다. 1963년 9월 1일 설립한 사단법인 고창문화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 45년간 열성을 다해 향토사를 전공한 그. 그에게 고창 지역 역사에 대해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개갑장터에서 치명한 순교자가 있다는 단서만 들은 이씨는 장터 근처 노인정을 돌며 수소문 했다. 그 결과 순교자가 전주 최씨라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더 이상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교구에 물어봤지만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그는 직접 서울 명동성당 자료실을 찾아갔다. 김수환 추기경의 배려로 한 사람의 전문위원과 함께 일주일 간 관련 자료를 찾고 또 찾았다. 마침내 순교자의 이름과 순교 일자를 비롯한 자료들을 찾아냈고, 그 자료가 바탕이 돼 개갑장터는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됐다.
2016년 82세때, 반세기 동안 고창 향토사를 조사·발굴해온 결과인 향토대서사시집 '고창(高敞)'(도서출판 기역)을 펴냈다. 우리가 거둔 모든 문화는 향토적인 것에서부터 승화됐다는 그는 오거리당산제 재연과 고창읍성 축성 연대 규명, 동리 신재효 연구 등 고창 향토사 연구에 앞장서왔다. 역사의 주인공은 사람이라는 역사의식 아래 지난 1980년대부터 30년 동안 고창의 성씨를 조사, '고창성씨책' 을 발간했던 그가 이번에는 땅에 집중했다. 그는 땅은 우리들의 생활터전이자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 우리들의 선영(先塋)이 있고 역사, 지리, 언어, 민족 등을 통해 이룩한 문화가 숨 쉬고 있다고 했다. 본래 고창은 백제 때 모량부리(毛良夫里)로 불렸다. 모양은 산남수복(山南水北)의 양지바른 보리밭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고창으로 바뀌면서 보릿고을을 상징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상도솔(上兜率) 하도솔(下兜率) 월운방(月雲坊) 오뱅이골(五方源) 등 임진왜란 이전의 전통 지명 100곳을 선정해 지명과 땅에 얽힌 역사와 고유성을 찾았다. 그리고 이를 기록이 아닌 서사시로 읊었다. 서사시는 주관적 감성에 주안을 둔 서정시와 달리 객관적 사실과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섣불리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지명은 100곳이지만 풀어낸 시는 227편에 달한다. ‘개갑장터의 유래’편은 그가 발견해 지금은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받은 천주교 신자 최여겸(1762-1801)의 순교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의향(義鄕)의 고창’편에서는 백제부터 고려, 조선 시대 인물들의 충절의식과 임진·정유왜란 당시의 의병창의, 동학농민혁명, 구한말 의병항쟁, 민족사학 고창고보 설립 등 그가 고창을 의향으로 정립하는 역사적 배경에 대해 풀어냈다.
이 전 원장은 1963년 고창문화원장에 취임 이후 40여 년 동안 원장으로 일했다. 한국상록회 부회장, 전국문화원연합회 부회장, 전북 문화재전문위원, 전북문화원연합회 부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북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북문인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했다. 1998년 '문학 21'로 수필과 시로 등단,‘고창의 맥’의 저자로 고창문학상을 받았다. 대통령표창, 국민훈장 목련장, 고창 군민의 장, 전국향토문화공모전 개인대상 공로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고창지역학연구소장으로 지역 향토사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며 숨겨진 향토사를 정리하는데 매진하고 있다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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