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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꽃담

삼계면 녹천재, 신평면 영모재, 오수면 '옥봉(玉峰)고택' 등 '꽃담 1번지' 임실, 원형보존 대책을 세워라

 

 

 

'꽃담 1번지' 임실, 원형보존 대책을 세워라. 꽃담은 말부터 예쁘다. 기와 또는 전돌로 여러 가지 색채로 글자나 무늬를 넣고 쌓는 담이다.‘여기는 내 땅이야’, '타인 출입금지식의 엄포가 없다. 질박하면 질박한 대로, 화려하면 화려한 대로 여유와 만족을 안다.우리네 조상들의 마음씨를 빼닮았다.

임실 지역엔 전통 꽃담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지정 문화재가 아닌 까닭에 삼계면 녹천재 꽃담은 시간이 흐를수록 원형 훼손이 심각하다. 지난 7월 전국적으로 내린 폭우로 인해 한쪽 담장이 완전히 부서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삼계면 녹천재는 꽃담이 몇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등록문화재 또는 임실 향토문화유산 지정이 절실하다. 신평면 영모재 역시 비문과 꽃담만 남아 훼손의 우려가 크다. 오수면 용정리 용정(龍井)마을 회관 바로 건너편 '옥봉(玉峰)고택'의 아름다운 합각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은 꽃담 가운데 건축 연대가 건물 밖에 보이는 건축물로 유일하다. '()'자와 '()'자 사이엔 반가운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지만 최근들어 원형을 상실, 상당히 아쉽기만 하다. 이에 따라 꽃담의 비지정문화재 긴급예산 지원 등 보존 대책을 강구하고 등록문화재 지정, 또는 시군향토문화유산 지정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최성미 삭녕최씨 통례공파 종중 대표는 "사라져가는 꽃담 유물의 훼손 상태가 심각해 많은 예산이 필요, 종중이 감당하기엔 불가한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이를 애석하게 생각해 비지정문화재의 긴급 지원이 시급하며 등록문화재 또는 시군향토문화재 지정이 절실하다"고 했다.

 

삼계면 녹천재 꽃담

 

삼계면 녹천재(鹿泉齋)는 삭녕최씨의 선조묘와 제실이 있다. 이곳은 성수지맥 노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가 깃대봉에서 갈오봉 아래로 맥을 형성하였는데 산세가 사슴이 물을 먹는 형국의 명당이라고 해서 그곳에 녹천재를 짓고 샘을 팠으나 지금은 샘이 메워져 흔적만 있다. 이곳 녹천재의 대문채 안밖 담장이 꽃담으로 되어 있다. 녹천재의 샘물은 유천(버드내)의 발원지로써 삼계방죽물을 담아내고 있다.

소슬대문 양 옆의 담장에 한자 문양(壽福, 靑龍, )과 태극 문양 등이 새겨져 있다. 왼편 담장에는 버금 아()’10여 개,담장 오른편에는 꽃문양을 필두로, '()’, ‘()’, ‘()’4, 태극 문양, ‘()’, 또 다른 태극 문양, 그리고 다시 ()’4개가 자리하고 있다.

녹천재 꽃담에는 유독 '버금 아()'자가 많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녹천재에서 예수의 가치관을 만난다. 보통 '으뜸'은 많은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을, '버금'은 다음을 말한다. 경쟁사회에서 2등은 루저(loser)일지 모르지만 고명(高明)한 철학의 세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맹자를 공자에 버금가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성(亞聖)이라고 부르지만 아무도 그를 패배자로 보지 않는다. 그는 스승과 함께 빛난다. 오늘도 녹천재의 꽃담에서 함께 이기는 법을 배운다.

'녹천재 중건기'1921년 중수했다고 쓰여 있다.

 

신평면 영모재 꽃담

 

신평면 영모재(永慕齋, 대리마을)’ 는 시간이 유수처럼 흘러감 때문인가, 영모재의 정부인여산송씨여각은 온데 간데 없다. 달랑 '열녀 정부인 여산송씨 묘갈(윤희구 찬,윤용구 두전, 민병석 글씨)이 남아있다. 이는 1925년 을축(乙丑)년에 썼다. 이 비 1기와 함께 키가 훤칠한 은행나무 2그루, 그리고 속절없이 우니는 매미들의 합창이 전부다. 그래도 흙담의 4(담장 입구 좌측 2, 오른쪽 1, 옆 담장 1)에 꽃담이 존재해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암키와 20여 장을 이용해서 만든 둥그런 꽃들을 모두 헤어려보니 모두 18송이. 둥근 꽃들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너무 반듯반듯한 그 아래의 암키와들로 인해 투박한 맛은 그다지 없다는 느낌이다. 우리네 전통 담은 주 건축물의 몸체와 같은 계통의 재료로 통일감을 갖고 있으며, 외부 환경의 여러 구성 요소를 둘러 쌓음으로써 하나의 통일된 공간 속에 융합시켜 준다.

이곳의 꽃담은 첫째, 지형적인 영향을 깊이 받고 그러한 환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했으며, 신의 섭리에 대처하고 순응하는 사상이나 태도를 갖게 만들었으리라. 둘째,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기원을 담아 형이상학적 형상을 담장에 표출한 듯 하다. 기와를 담장에 수놓으면서 후손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였으며, 이들이 조상들을 향한, 효심을 기원하는 마음을 그대로 담아 아름다운 의장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높은 조형미를 갖고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전통 담장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으로 시련을 겪는 역사 속에서도 주변 국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특한 조형성을 오늘날까지 이어온 우리의 전통 담을 오늘날 서구화된 생활 양식과 조화되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데,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다. 이곳의 꽃담은 살아있는, 생생한 효자도. 민화 가운데 설화화는 교훈적인 내용, 교육적인 내용, 충효를 나타내는 내용, 애정을 다룬 것들이며 설화뿐 아니라 인물에 관한 내용의 그림이다.

 

오수면 용정마을 '옥봉(玉峰) 고택' 꽃담

 

오수면 용정리 용정(龍井)마을 회관 바로 건너편 '옥봉(玉峰) 고택'에서 아름다운 합각 꽃담을 만났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은 꽃담 가운데 건축연대가 적힌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가옥에 선명하게 새겨진 '갑자(甲子)'란 글씨는 건물 밖의 상량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자와 '()'자 사이엔 반가운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5백년 전에 전주이씨, 청주한씨 등 타성이 20여 호씩 살아왔으며, 마을의 유래는 우물()’에서 ()’이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용정마을은 노령산맥의 줄기를 이어받아 청룡백호(청룡은 명당이나 혈지를 위해 왼쪽에서 보호하고 있는 산으로,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마치 용이 나는 것처럼 힘차게 꿈틀거리는 형상이다. 백호는 명당이나 혈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기운이 영향을 미쳐 재물이 불어나고 부가 번창한다고 함)가 자리한 가운데 1498년 무오사화의 국난을 극복하고 4-5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밭 속의 기와집 한 채, 이 기와집도 정녕 아름다운 날은 계속되는가. 꽃담이 아름다우니 저절로 꽃에 취하고, 꽃에 취하니 응당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은 뒷전이다.

갑자(甲子)’란 글씨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자와 ()’자 사이엔 반가운 너, 꽃 한송이는 살가운 임실 사람들의 마음을 쏙 빼닮아 복제했구나. 그러나 꽃잎 좌우로 자와 자가 서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어 익산 동고도리 석불입상(보물 제46)같은 느낌 유별나다. 높이 4.27m의 두 석불이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약 200m 거리에 떨어져 마주보고 있듯이 말이다.

집주인 이강수씨의 말에 의하면 '옥봉(玉峰)고택'은 선조인 고 이기원(1924-2005)씨가 출생하던 해가 갑자년(1924)’으로, 이때 지은 집이기 때문에 글귀로 상징성을 담보했다는 설명이다.이 꽃담은 전주이씨 효령대군파의 집안 내력을 나타내주는 상징물에 다름 아닌 듯, 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에 지고 싶지 않는 모습일 터. 그러나 꽃담이 있는 사랑채를 제외한 120여년 된 안채, 그리고 곳간 등은 개,보수를 한 흔적이 있는 가운데 굴뚝이 있었다는 얘기가 전할 뿐이다. ‘갑자를 합각에 새겨놓은 만큼, 아주 보기 힘든 돌출된 상량문(?)을 갖고 있는 '옥봉 고택'. 새로이 집을 지은 게 얼마나 가슴이 벅찼으면, 이처럼 누구라도 볼 수 있는 대자보(?)를 만들어놓고 자랑을 하는 것일까. ‘자신감에 찬 드러냄의 철학, 능동적 행동, 그리고 신사고의 탄생을 의미하는 꽃담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최근에 새로운 합각으로 바뀌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