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26> 만경팔경(만경8경)
완주 소양면과 동상면 경계인 밤티 아래 밤샘에서 발원한 만경강은 기암 절벽이 병품처럼 둘러싼 대아호수, 고산창포마을을 지난 이후, 호남평야를 적시고 서해와 만나기 위해 300리길을 떠난다.
만경강은 삼례에서 서쪽으로 흘러 익산시 남쪽을 통과한 뒤, 군산시 대야면에서 탑천과 합류하고, 군산시와 김제시 사이의 넓은 간석지의 하구로 흘러든다.
신창진(新倉津)다리는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에 있는 (구)만경교는 예전부터 새챙이다리라 불리었다.
군산과 김제를 이어주던 과거의 다리이며 신창진(新倉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곡물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루터로 군산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본래 이름은 신창진으로 조선시대까지 사용해 오다가 일제강점기때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만경강의 하류는 신창진 상류에는 안천(현재의 고산천)과 남천(현재의 삼천천과 전주천)이 있다 했다
1933년에 완공된 새창이 다리는 6.25전쟁때 폭격을 당했지만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그 역사성이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콘크리트다리는 전주 남부시장에 위치하고 있는 싸전다리(1922년준공)였으나 지금은 원형은 상실되고 없다
한때는 새챙이다리 위에서 망둥어나 숭어낚시를 하고 다리 아래에서는 실뱀장어 잡이를 통해 주민들의 큰 소득을 올렸지만 새만금으로 인하여 해수유통이 막혀서 지금은 어렴풋한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풍요로운 강 만경강의 어류를 살펴보면 뱀장어 망둥어 돌고기 참마자 붕어 버들매치 감돌고기 참종개 동자개 버들붕어 금개구리 치리 등 다양한 민물어종이 살고 있다. 만경8경 가운데 제2경이 신창지정(萬頃八景 第二景 新倉之情)이다.
‘신창진의 도중에서 짓다[新倉津途中作]’
김종진
신창진은 세 읍이 모이는 곳으로(新倉三邑會)
웅령에서 처음 수원이 발하였는데(熊嶺初發源)
조수가 들어오고 또 나가곤 하여(潮生復潮落)
밤낮으로 끊임없이 흐르도다(日夕流渾渾)
원근의 숲들은 마치 부추와 같아(遠近樹如薺)
갈대 부들만 번성할 뿐이 아니요(不獨萑蒲蕃)
기러기 오리는 개 닭과 섞이었는데(雁鶩雜鷄狗)
고기잡이 집들이 마을을 이루었네(漁戶自成村)
기름진 토지는 몇 만 이랑이나 되는지(腴田幾萬頃)
아득히 바다 어귀에 닿았으니(蒼茫接海門)
호남은 본디 벼곡식이 풍부하지만(湖南富秔稻)
취야를 의당 으뜸으로 논해야겠네(鷲野宜首論)
내가 와서 성한 더위를 만났는데(我來觸隆赩)
높은 누각이 무너진 담장 눌러 있어(高樓壓頹垣)
높은 데 올라 찬 오얏을 먹으니(憑危嚼氷李)
순식간에 답답증이 제거되누나(倐爾蠲煩寃)
길이 자안의 글귀를 읊노니(長吟子安句)
이 천원이 내 눈을 놀라게 하는데(駭矚玆川原)
편편이 날아 서쪽으로 가는 학은(翩翩西歸鶴)
내려다보며 길이 말을 하는 듯하네(下顧似長言)
구름 연기가 해도에 덮이었는데(雲煙冪海島)
바람이 불어 구름 연기 환히 걷히니(砉然風披掀)
봉래산은 전체가 맑고 깨끗한데(蓬萊盡澄澈)
십주는 멀리 한 점일 뿐이로다(十洲夐一痕)
손을 들어 나는 신선이 되려 하는데(擧手我欲仙)
마부가 가는 수레를 묶어 놓았네(僕夫縻征軒)
*이 천원이……놀라게 하는데: 자안(子安)은 초당(初唐)의 문장가인 왕발(王勃)의 자인데, 그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산원은 광활하여 시야에 가득차고, 천택은 눈이 떡벌어져라 보는 눈을 놀라게 하도다.[山原曠其盈視 川澤盱其駭矚]” 한 데서 온 말입니다.
전라감사를 역인한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이 ‘김제 신창진에 들려 시(新倉津途中作)’를 남겨 이 이전에 지은 것 같다.
김종직은 시에서 신창진은 '세 읍이 모이는 곳(新倉三邑會)'이라고 했고 조선 팔도의 노래에서도 신창원(新倉院)을 챙기고 있듯이 해.육상의 교통요충지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신창진(新倉津) : 서쪽 70리에 있으며, 김제와는 남쪽으로 20리 거리다. 이 시의 세 고을은 전주, 만경, 임피를 가리킴다. 바로 이곳엔 누각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전라도 임피현(臨陂縣) 신창진원루(新倉津院樓), 지금의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임피면 만경강 일대의 있었던 원의 누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4권 전라도(全羅道) 임피현(臨陂縣)편에 신창진(新倉津)은 남쪽으로 20리이며, 사수(泗水)의 하류이고, 김제ㆍ만경과 통한다. 신창원(新倉院) 신창진의 언덕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곳 신창진원에는 누각이 있었다.
열조시집(列朝詩集)에 "조선에서는 당송(唐宋)의 고사를 따라서 역정(驛亭)마다 모두 관기(官妓)를 두었는데...."라고 했듯이 역에는 누각이 있었다. 다만 그 누각명을 거의 모른다는 사실이다.
임진난 의병 고경명이 이곳에 들려 원은 만경 북쪽(在萬頃北)에 있었다고 이르고, 생애 말년에 '신창진 원루에서(題新倉津院樓) '시를 남겼다.
쓰고 단 세상 맛 두루 맛보니 / 머리만 희게 되는 걱정 뿐이로세
강관(江關)에서 짓는 시 씁쓸하기만 하고/경락(京輦)의 옛 친구들 점점 멀어지네
世味辛甘略遍嘗 半生憂患鬢蒼浪
江關詞賦空蕭瑟 京輦交游轉渺茫
세번이나 꺾인 팔 더 꺽인 것도 없지만 /아홉구비 간장이 꼬부라지는 듯하오
가을철 나그네길 서해까지 이르러 / 높은 누에 혼자 올라 석양만 바라보노라
三折已無堪折臂 九回猶有剩回腸
秋風客路遵西海 天畔高樓倚夕陽
고경명이 이곳에 다녀간 것은 그의 아들 고종후(高從厚 1554~1593)가 당시의 임피 현령(臨陂縣令)을 지내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만경팔경(만경8경)
제1경 만경낙조(萬頃落潮)
만경강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낙조를 조망할 수 있는 곳
제2경 신창지정(新倉之情)
새창이 나루를 오가던 사람과 이곳에 남겨진 역사문화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
제3경 사수곡류(泗水曲流)
만경강의 옛 이름인 사수(泗水)의 중심에서 옛 물길과 사람들의 어우러짐을 의미하는 곳
제4경 백구풍월(白鷗風月)
백구정에서 만경강을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경치를 벗삼아 자연을 노래하는 곳
제5경 비비낙안(飛飛落雁)
비비정에서 바라보는, 만경강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와 낙조가 아름다운 곳
제6경 신천옥결(新川玉潔)
옥같이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로, 만경강의 허파 역할을 하는 신천습지가 있는 곳
제7경 봉동인락(鳳東人樂)
편안하고 즐거운 봉동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곳
제8경 세심청류(洗心淸流)
세심정에 앉아 마음을 씻고, 흐르는 만경강에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
'전북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남제일관(湖南第一關)' 완주 만마관을 복원하라 (1) | 2023.08.28 |
---|---|
<새전북신문 단독> 유학교육 중심지 '순창 훈몽재', 중국 대학생 80명 왔다21일부터 27일까지 순창 훈몽재에 중국 남창대와 북경인민대 등 학생 80여 명이 와서 (0) | 2023.08.25 |
만경팔경(만경8경) (0) | 2023.08.24 |
<이종근의 역사 문화 이야기 25> '지금 나는 어디에서 '평생도'를 그리고 있나' 채용신의 '평생도'에 결혼과 주관 화사의 모습 보인다. (1) | 2023.08.23 |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24> 효산 이광렬 축필(祝筆) 합작도(合作圖) (1) | 2023.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