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끝나고 여행길이 열렸다. 공항에는 바깥세상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중단되었던 국제적인 학문 교류도 속속 재개되고 있다. 전통 유학의 맥을 잇는 순창 훈몽재(訓蒙齋)의 한중문화교류 및 경전 강습회가 다시 열린다는 소식이다.
훈몽재는 그간 국내 학생 교육은 물론 중국과의 학술 교류에 노력해왔다. 특히 여름방학이면 중국 대학의 교수, 대학원생이 방문하여 한국 전통 유학의 정수를 배웠다. 이들이 훈몽재를 찾는 이유는 마오쩌뚱 시기 문화대혁명 이후 명맥이 끊긴 유학의 뿌리를 다시 찾기 위해서다. 이 행사는 겨울 무렵 중국 측의 고당 김충호 산장 등 한국 유학자 초청을 통해 중국의 유서 깊은 서원인 백록동서원 등에서 이어진다. 국제 학문 교류의 촉매제 역할을 착실히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로 끊겼던 이 행사가 올해 8월 21일부터 27일까지 8일간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중국 북경대, 북경사범대, 인민대, 남창대, 산동대, 산동사범대학, 호남대, 천진대의 교수와 대학원생 등 40여 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대학, 중용, 주자대전 등 전통적인 유학 경전과 하서 김인후·퇴계 이황·율곡 이이 등 우리나라 성리학자의 글을 학습한다. 방과 후에는 국악창 관람, 차 문화 체험 등 우리 전통문화를 보고 익히는 시간을 가진다.
훈몽재는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의 강학당이 있던 곳이다. 하서 선생은 명종 3년(1548)에 순창군 점암촌 백방산 아래에 훈몽(訓蒙)이라는 편액을 걸고 강학을 하였다. 훈몽재는 200년 뒤의 호학(好學) 군주 정조대왕까지도 그 소재를 물을 정도로 유서 깊은 강학당이었다.
훈몽재는 하서 선생이 돌아가시고 세월이 흐르면서 자취조차 남지 않았다. 이에 중건하려는 움직임이 몇 차례 있었다. 1680년 하서 선생의 5대손 자연당 김시서가 인근에 자연당을 짓고 생활하며 훈몽재를 중건하였다. 아울러 어암서원을 건립하였으나 이 서원은 대원군 시기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훈몽재는 한국전쟁 시기에 소실되었으며 옛 훈몽재를 품었던 백방산 앞 추령천에 하서 선생이 송강 정철에게 대학을 가르쳤다는 대학암이라는 바위만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2003년 순창군이 복원사업을 추진하였고, 후손인 김상열 회장의 유지 추정지 기증, 순창군의 건립 노력에 의해 오늘의 훈몽재가 있게 되었다. 이후 순창군이 운영 관리하고 고당 김충호 선생이 상주하여 강학을 개시하면서 지금까지 유학 교육 활동을 이어왔다.
국내외 연구자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훈몽재 교육은 벌써 15년이 되어 간다. 이곳에서 예절과 학문을 배우던 초등학생이 벌써 어엿한 젊은이가 되었다. 밤새우며 글을 읽던 대학원생은 대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북 순창에서 배운 유학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 한중문화교류 프로그램도 이제 제 궤도에 오르고 있다. 방문하는 학교들은 중국 각 지역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다. 참여자 중에는 학계에서 활동 중인 중견 교수도 있고, 미래의 학자를 꿈꾸는 학생들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동아시아 지역 내 상호 이해 증진은 물론 민간 외교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근래 들어 ‘문화강국’이라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우리가 문화강국으로서 역사적 맥락을 가진다고 할 때, 그 중심에는 우리 전통 유학이 있다. 전북 지역은 전통 유학과 관련한 최적의 교육 장소, 명망 있는 유학자, 유관 학과, 지역 전통과 지역민의 관심 등 여러 요소를 갖추고 있다. 지자체의 자기 개성 확보와 차별성 있는 특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다. 타 지역에 앞서 전북이 전통 유학을 생생한 실체로 만들고 자산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전라북도와 순창군의 적극적인 관심 아래 이번 한중문화교류 프로그램이 지역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전북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주는 살기좋은 곳이다 (1) | 2023.07.26 |
---|---|
'아 옛날이여’ 일상이었던, 그러나 이제 일상이지 않은 전북 80-90년대 사진 대거 공개이창호 기증 아카이브 자료집 '일상, 아카이브가 되다' 발간 (0) | 2023.07.25 |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 별세. 전북 도청 이전, 전주역 이전 등 도시계획에 관여 (0) | 2023.07.24 |
이번 장마로 전북 6건의 피해 집계 (0) | 2023.07.23 |
송석년의 만마동 (0) | 2023.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