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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 별세. 전북 도청 이전, 전주역 이전 등 도시계획에 관여


장명수 전 전북대총장 23일 밤 10시 20분 별세, 전북대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26일 오전 7시 전주 승화원, 장지 경기도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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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 별세, 전북 도청 이전, 전주역 이전 등 도시계획에 관여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이 24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그는 전주에서 5대째 사는 토박이였다. 자연스럽게 전주에 관한 관심 또 전공한 건축공학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주에 접근하게 됐다. 
도시는 인류 역사상 집이 출연하고 도시가 만들어지고 이 두 전문 영역 속에는 인류 문화사가 다 들어 있다. 그래서 도시 인문학의 관점에서 전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통사적 강의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소에 있다가 고향에 온 것이다.
1963년 전북대학교에 건축과가 생기면서 왔는데 상당히 도시화가 진행중이었다. 초창기 강의 때는 건축학 원론에 가까운 것만 가지고 강의를 했으며, 1990년대 와서 최초로 쓴 책이 ‘성곽도시 발달사’였다. 이는 전주 관한 전주학 최초의 전문적 학구적인 논문이고 책이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도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도청 이전, 전주역 이전 등 도시계획에 관여했다.  그는 도시변천사에서 특히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고 회고했다.
"변천사 중에서는 도시발전을 위한 건축물도 있었지만 사적인 이익에 관한 것도 꽤 있었습니다. 완산동에서 전주시장으로 가는 매곡교가 있습니다. 이 매곡교는 그 때만 해도 자동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잡상인들이 양쪽에 들어 차가지고 일종의 시장 거리가 됐어요. 그걸 본 장사꾼들이 이런 다리를 넓게 옆에 또 하나 만들면 시민도 편리하고 자기들도 돈 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일종의 광로 넓은 교량 복개를 시작하자는 겁니다. 명분은 그럴 듯 하거든요. 다리 두어 개를 편하게 놔서 거기다 상가를 만들면 이색적이고 좋지 않을까? 명분을 내 세우면서 슬금슬금 여론에 힘입어서 복개를 하려고 시작 한 거예요.
그러나 도시계획위원과 나의 생각은 절대 불가하거든요. 한번 교량이 섰다고 하면 몇 십년 갈지를 모릅니다.이해관계가 있고 강력한 반대를 하고 설득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아는 만큼 기쁘게 재능기부를 했으며, 책도 여러 권 펴냈다. 2020년, 전주의 맛과 음식 계보를 정리한 ‘전라도 관찰사 밥상’을 펴냈다.

전주비빔밥, 콩나물국밥, 한정식, 청요릿집, 다방까지 우리가 지켜야 할 전주의 맛을 소개하고 관찰사 밥상에서부터 영집, 수령, 아전, 지주 밥상을 거쳐 전주 한정식으로 이어지는 전주음식 계보도 발굴해냈다. 

하지만 그는 음식 전공자도 아니고 요리를 만들어본 일도 없다. 지난 2011년 이런 내용을 처음으로 제안했고, 연구를 통해 2019년에 그 결실을 맺게 됐다. 전라도 맛과 경상도 맛을 비교하고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전주의 맛까지 나열했다.
그는 "취미 생활은 내아 동쪽에 있는 연신당에서 했고, 연신당 출입문 앞에는 관찰사의 내아 공사 생활을 지원하는 비서실장인 예방비장이 근무하는 응청당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아전집 부엌에서 모방과 재창조 과정을 거친 요리법이 부유층으로 갔고, 바로 이것이 전주 한식의 뿌리가 됐다"면서 "관찰사의 밥상이 전주 한정식의 원류"라고 했다.

그는 전주가 품고 있던 100년의 시간. 그 시간속을 걸어 온 사람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전주의 지난 100년을 되살려 냈다. 전주 근대생활조명 100년의 이야기를 담아낸 제1권 ‘일제의 전주 침탈과 식민시대 구술실록’과 제2권 ‘전주의 8.15 해방과 6.25 전쟁’에는 전주 토박이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전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구술사는 1907년부터 2006년까지 전주의 100년을 담았다. 1907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식민시대를 다룬 제1권에서는 전통도시가 파괴되고 식민도시로 전락하는 과정과 당시 전주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한 구술조사, 골목 골목을 누빈 현지 전주조사, 문헌기록 등 77인의 육성이 240여 장의 사진들과 함께 풍성하게 담겨있다.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를 담은 제2권에서는 전주의 8.15 해방 후 혼란과 질서회복,  6.25 전쟁의 참혹한 삶과 복구에 대한 증언이 이어진다. 86인의 증언을 통해 잊혀져 가고 있던 격변의 세월을 풀어놨다.
그는 “여전히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입을 열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채록 작업 당시 구술을 해줄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고 이미 많은 분이 타계한 후라 안타까움이 컸다”면서 “아직 캐내어야 하고 들어야 하고 물어서 기록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지만 이번 작업만으로도 대표성 있는 시대 기록으로써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전주 격동기 반백년 남겨야 할 구술실록’과 ‘전주음식 먹거리 식담록’(채록 송영애)을 발간했다.
‘전주 격동기 반백년 남겨야 할 구술실록’은 식민시대 구술실록, 8·15 해방과 6·25 전쟁 구술실록에 이어 출간한 제3권이다. 그는 제3권에는 시대 변천사와 사회사적 기록을 동반하고 본인의 사회 활동을 모두 기록해 격변기 반백년에 남겨야 할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전주음식 먹거리 식담록’에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뛰어넘어 전주에서 생활한 본인의 생활사와 전주음식 문화를 담았다. 그는 이 책을 '쥐어짠 기억'이라고 했다.
그는 "따져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도 상당한 역사가 축적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대담 형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퍼즐을 맞추듯 기록했다. 책이 나올 때까지 험난한 길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묻고 또 물어 기록을 재촉한 송영애 박사가 아니었으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북대에서 32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건축 및 도시계획을 가르쳤다. 전북에서 유일하게 국립대와 사립대 총장을 지냈다.전북대와 우석대 총장을 역임했다. 전북대 역대 총장 가운데 외부지원금을 가장 많이 끌어들였다.  삼성그룹 등으로 부터 지원을 받아 1,800석 규모의 삼성문화회관을 건립했다. 전북대 총장 재직 시절에는 대학 캠퍼스 내에 많은 조경수를 식재해 '나무 심는 총장'으로 유명했다. 
그는 2000년부터 개최된 전주국제영화제를 제안해 전주를 영화의 도시로 만드는데 기여했으며, 1979년에는 전주문화원에서 발간한 잡지 '노령'을 창간했다.
전북예총 회장, 전주문화재단 이사장, 전북연구원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전주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시 풍패지향(豊沛之鄕·제왕의 고향)의  전라감사 행차와 망궐례(望闕禮)를 재현했다.
망궐례는 조선시대 객사(客舍)에서 군신(君臣) 간에 행해졌던 의례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지방관리가 서울에 있는 왕을 향해 '궐(闕)'자를 새긴 패를 만들어 절을 했는데 1900년대 초까지 행해졌다.

 중앙도시계획위 위원, 기술고등고시 시험위원, 대학국토·도시계획학회 부회장, 국토개발연구원 자문위원, 기술사 및 건축사 시험위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 국립대학교 총장협의회 부회장, 전북대 명예 총장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도시와 지역개발(창학사, 1977)', '태양, 공간, 녹음(교학사, 1982)', '도시계획학, (보정사, 1987)', '전북 지역 개발 구상(신아출판사, 1991), '성곽 발달과 도시계획 연구, 학연문화사, 1994), '도시 연출, 지역 창조(신아출판사, 1998)', '분권, 부향(신아출판사, 2001', '전라도 관찰사 밥상(북코리아, 2020)',  '전주 격동기 반백년(1945~2022) 남겨야 할 구술실록(신아출판사, 2022)', '전주 음식 식담록(신아출판사, 2022)' 등을 펴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