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형용사를 죄다 동원해도 부족하다. 이 불가사의한 설백의 미를 대체 무엇이라 할까? 달항아리는 삶의 이치를 아는 자만이 그 깊이를 다룰 수 있다. 백토라는 양질의 흙(土)이 있어야 하고, 가마에 땔 나무(木)가 풍부해야 한다. 바람(風)이 잘 통해 불(火)이 잘 들어야 하고 당연히 물(水)도 좋아야 한다. 그러니 오행을 모르고 백자를 빚을 수 없다. 이런 장소를 구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타고 난 팔자가 있어야 한다.
고려청자를 넘어 백자가 탄생한 것이 조선이다. 왕실 그릇을 담당한 사옹원의 분원인 지금의 경기도 광주 일원에 관요를 짓고 420년간 도자기를 생산했다. 특히 17세기 말 18세기 초 사기장들이 일을 냈다. 세상에 없는 멋진 백자 달항아리를 만들었다. 넉넉한 모양새와 투명한 흰 빛깔이 보는 이의 마음마저 담아내는 신비한 항아리다.
쓰임에 어울리는 소박한 그릇으로 본질에 집중한 것이 백자의 멋이다. 사대부보다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가 더 어울린다. 최고급 백자에서 서민의 그릇까지 조선의 백자 사랑은 대단했다. 최순우는 ‘아주 이지러지지도 않았으며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이라 했다. 지독한 백자 애호가였던 김환기 선생이 달항아리라 이름 붙였고, 2011년 문화재청 공식 명칭이 됐다. 색감과 형태가 보름달을 품는 듯하고 높이와 너비가 40cm 이상 되어야 달항아리라 한다. 굽 지름이 입 지름보다 작다. 국보 3점, 보물 4점을 포함 전 세계 20여 점에 불과하다. 최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일본인 소장 조선 달항아리가 경합 끝에 60억 원에 낙찰됐다. 값을 매길 수 없고, 내보낼 수 없는 문화유산이자 우리의 혼이다.
지면의 국보 309호 달항아리는 지름이 44.5cm이며 금사리 가마에서 제작된 왕실 백자다. 바닥과 몸에 묻은 얼룩은 오동나무 기름으로 추정된다. 완벽한 이음새와 마무리, 균형감이나 우윳빛 색감이 단연 으뜸이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한국미의 완성이다. 큰 항아리는 한 번에 물레 성형이 어려워 윗부분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인다. 접합의 흔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공이 만들고 가마 신이 불과 바람으로 완성한다는 하이 테크놀로지 아트다. 시공의 경계를 넘는 사차원 이상의 감각을 지닌 도공의 예술작품이다.
우리 예술계도 달항아리 열풍이다. 도예가도 화가도 나만의 달항아리를 만드는 꿈에 도전한다. 달항아리를 깊게 사유하지 못한 기술적 모사에 달항아리는 없다. 예술작품은 시대를 담는다. 청렴하고 올곧게 살고자 한 염원이 담긴 그릇이다. 지금의 달항아리에도 조선의 선비정신이 묻어있기를 기대한다.
필자도 달항아리와 인연이 깊다. 힘들었던 시절, 찾아간 달항아리 빚는 곳. 호수를 돌아 소나무 언덕을 넘어 산이 깊었다. 샹그릴라로 가는 입구에 진홍색 진달래가 반겼다. 황토와 진흙으로 만든 7개의 망댕이 가마가 이글이글 익고 있었다. 전생 몇 바퀴를 도공으로 살았다는 작가의 굳은살 박인 손이 구워낸 달항아리는 일품이었다. 그릇을 만들 때보다 사흘 밤낮으로 불을 땔 때 훨씬 공력이 든다. 불꽃은 나부끼고 화염은 쉴 새 없이 항아리와 밀월이다. 달항아리, 그 맑고 환한 빛에 미쳐 몇 년을 보내고 다시 숨 쉴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달항아리는 힐링이며, 불 땐 아랫목처럼 따숩고 오래된 정(靜)이다. /화가 김스미
<백자 달항아리>, 국보 309호, 18세기 초, 높이 44.5cm,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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