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개암사 괘불을 그린 '화승(畵僧)' 의겸
국립중앙박물관이 2022년 3월 6일까지 갖는 '조선의 승려 장인’ 전은 조선시대 불교미술을 조성한 승려 장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살펴보는 특별한 자리다. 이번 특별전엔 국보 2건, 보물 13건, 시도유형문화재 5건 등 145건(15개 사찰 출품작 54건 포함)이 나온다.
18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화승 화련이 1770년(영조 46)에 그린 ‘송광사 화엄경변상도’(국보) 서울 전시는 처음이다. '붓의 신선’이라고 불린 화승 의겸이 1729년에 제작한 보물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관람객과 만난다.
의겸은 호남지역에서 많은 활동을 보여준 화승(畵僧)이다.
여수 흥국사의 십육나한도는 1723년에 화승 의겸 스님이 그린 것으로 자유로운 존상 자세와 짜임새 있는 배치, 새로운 도상의 수용, 수묵화기법의 활용 등 조선 후기 십육나한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높이 13.17m의 부안 개암사 괘불(보물)은 1749년 제작됐다.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석가삼존(釋迦三尊)을 중심으로 삼고, 상단에 다보여래와 아미타불,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그려 칠존상(七尊像)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괘불을 그린 화폭은 너비 30cm의 삼베 스물여덟폭을 이어서 만들었으며 그 위에 화려하고 현란한 ‘컬러풀’ 채색이 부처와 보살상을 덮고 있어 압도감이 대단하다.
만드는 과정도 예사롭지 않았다.
하단에 적힌 화기(畵記)를 보면, 일반 신도와 승려 250명이 발원했으며, 18세기 당대 최고의 불화 작가였던 승려 의겸(義謙)을 수장으로 삼고 영안(永眼), 민희(敏熙), 호밀(好密) 등 화승 12명이 함께 팀을 꾸려 완성시킨 작품이라고 나와 있다.
1749년 영산회(靈山會) 의식에 쓰는 ‘영산 괘불(靈山掛佛)’로 만들어졌으나, 개암사에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사찰 의식 외에도 후대 기우제를 지낼 때도 사용됐다고 한다. 19세기 부안 지역에 가뭄이 계속되자 괘불을 걸고 부처에게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제를 청해 곧장 비가 온 사실이 여러 차례 기록에 나온다. 괘불과 같은 크기의 밑그림인 초본(草本)도 함께 전해지고 있어 미술사적 가치가 크다.
화련스님도 불화로 호남에서 획을 그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화엄경변상도(송광사 성보박물관 소장, 국보)는 1770년에 그려졌다. 이 작품은 미타회(彌陀會)라는 불교결사단체가 발원하여 무등산 안심사에서 화련(華蓮)스님을 비롯, 12명 화승들의 참여로 제작이 되었고 그림이 완성된 이후 송광사로 옮겨와 소장하고 있다.
전북에 남아있는 불상들 대부분이 조선 후기에 조성됐다. 남아있는 불상 1, 900여 점 가운데 17세기에 조성된 불상이 유난히 많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전국적으로 사찰 창건과 중건 등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이 지역의 사찰들도 대부분 이 시기에 중건돼 불상 조성이 많이 이뤄졌다. 불상 조성 불사에 가장 주목할 인물은 무염 스님이다. 이 스님은 80여 명에 달하는 조각승들을 주도하며 조선 후기 불교 조각계를 이끌었다. 이 스님과 관련 학술대회를 한 번 이라도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2019년 조계종 24교구본사 선운사가 대웅전 삼존불 점안식 겸 개금불사 회향식을 봉행했다. 개금한 불상은 보물 1752호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으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이 함께 봉안돼 있다. 조선후기 대표 조각승 무염스님이 1633년 조성, 17세기 불상양식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무염스님은 1630년대에서 1650년대까지 전라도 일원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조각승이다. 무염은 이후 주로 전라도와 강원도에서 활동하게 된다. 주로 벽암각성 스님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그는 선운사 비로자나 삼불상을 시작으로 1635년 영광 불갑사 대웅전 삼세불상, 1650년 대전 비래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상, 1651년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 1652년 완주 정수사 극락전 아미타삼존상, 1654년 영광 불갑사 명부전 지장시왕상, 1656년 완주 송광사 나한전 삼세불상 등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918호)은 1654년(효종5년)에 무염과 그 제자들이 조성한 작품이다. 그동안 제작연대 '문수사 창건기'(1758년) 및 1844년(헌종10년)의 중수기록 '문수사 중건기'(1843년)이 확실해 동시대 불상비교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돼 왔다.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중앙에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배치된 삼불형식이다. 석가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과 1756년의 ‘문수사창건기’ 편액, 1843년의 ‘고창현축령산문수사한산전중찬기’ 편액을 통하여 1654년에 조각승 해심(海心), 성수(性守), 승추(勝秋), 민기(敏機), 도균(道均), 묘관(妙寬), 승희(勝照), 승열(勝悅), 지문(智文), 신일(信日), 명조(明照), 경성(景性), 일안(一安), 처인(處仁), 원변(元辨 )등 15인의 조각승에 의해 조성된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의 중요한 기준자료이다. 석가여래와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로 구성된 이와 같은 삼불형식은 임진왜란·정유재란 이후 황폐해진 불교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신앙적으로 크게 각광을 받았던 형식이다. 이 삼불상은 17세기 전반기 불상에 비해 양감이 강조되어 중량감이 있으며, 선묘는 비교적 깊이가 얕고 힘 있는 간결한 선묘를 구사했다.
이는 17세기 전․중엽경 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크게 활동한 조각승 무염파(無染派) 조각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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