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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 한국화가의 '남간정사' 작품을 보고ㅡ달이 뜨면 올곧은 선비정신이 남간정사를 휘감는다




김도영 한국화가의 '남간정사' 작품을 보고ㅡ
달이 뜨면 올곧은 선비정신이 남간정사를 휘감는다

달빛을 머금은 대전 남간정사의 자태는 압권입니다.
'남간정사'는 송시열이 숙종 때 학문을 이어갔던 유서 깊은 곳으로 대전 유형문화재 제 4호로 지난 1989년 지정됐습니다. 이곳의 돌멩이 하나, 나무 한그루에도 의미가 담겼습니다. 자연을 향한 송시열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습니다.

대전 동구 가양동에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는 우암 송시열이 1683년, 나이 77세에 지은 별서(別墅)정원입니다.

송시열의 영원한 학문적 지표, 주자가 쓴 ‘운곡남간(雲谷南澗)’ 이라는 시에서 따온 이름이 바로 '남간'이었습니다
'남간'이란 양지 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을 의미하는바
주자의 시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따온 이름으로 주자를 사모한다는 뜻을 갖습니다.

위태로운 돌이 가파르고 험한 모습으로 아래를 향하고
높은 숲 푸르게 우거지며 위를 향한다.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물로
모든 것이 무너지듯 뒤섞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危石下崢嶸 위석하쟁영
高林上蒼翠 고림상창취
中有橫飛泉 중유횡비천
崩奔雜綺麗 붕분잡기려

‘남간’은 남쪽 볕바른 곳에 흐르는 물줄기를 의미하고 ‘정사’란 정자 가운데에서도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주변인들과 학문적 논쟁을 펼치는 공간을 특별히 부릅니다.
그 중에서도 ‘남쪽 볕바른 곳에 흐르는 물줄기’가 대체 무슨 의미이길래 송시열과 같은 대학자가 본인 말년의 공간의 이름으로 선택한 것일까요?

송시열은 지금 쓰는 말로 흔히 말하는 빠돌이었습니다. 그가 찬양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성리학을 집대성한 중국의 학자 ‘주희’, 곧 ‘주자’였습다. 송시열의 모든 말은 주자로 시작하여 주자로 끝나 주변 사람들을 지긋지긋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백미는 정사 앞에 있는 넓은 연못과 정원입니다. 대청 밑을 통하여 연못으로 흘러드는 매우 독특한 조경수법입니다. 두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을 바라봅니다.

남간정사도 난개발의 어수선한 바깥을 뚫고 높이 20m가 넘는 벽오동이 심어진 연못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확 달라집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담으려면 연못은 네모져야 하지만,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연못은 부정형의 곡지(曲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의 둥근 섬에는 왕버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격적인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류가 흐르는 바위 위에서 물이 흐르는 자리로 담장을 열고, 집을 들어 올린 파격. 옥류각의 파격이 활달하고 거침없다면 남간정사의 파격은 진중하고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굽이치는 계곡을 타고 앉은 옥류각보다 계곡의 바위들이 여기저기서 솟아 있고, 깔리고, 흩어진 연못을 바라보며 반석 위에 있는 남간정사가 더 강한 인상을 줍니다.

거기에 소나무, 은행나무, 왕벚나무, 말채나무, 모과나무, 배롱나무 등 유학자의 심성을 수양하는 식물군이 주욱 둘러 있고, 가파르게 올라간 뒷산은 집의 배경으로 우거져 있습니다.

연못으로 들어오는 물은 두 군데입니다. 남간정사 뒤쪽의 샘에서 건물의 대청마루 밑을 지나 연못으로 떨어지는 하나가 있고, 동편의 개울에서 들어와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맑고 청아하며 은근한 소리고, 둘은 힘차고 거침없습니다. 남간정사의 대청마루에서는 밑으로 흐르는 하나의 소리는 마룻바닥에서 공명했을 것이고, 둘은 직접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남간정사의 협주곡은 그 대목에서 높이 20m의 벽오동이 흔들리며 배경음으로 깔렸을 것이고, 소나무를 스치고 가는 바람의 밀도 높은 소리가 동조하면서 연못으로 꽃을 떨구는 꽃나무들의 춤이 어우러지며 한 계절이 가고, 또 한 계절이 갔을 것입니다.

살아있는 나무들도 그러하지만, 죽어서 집이 된 나무 또한 수백 년을 훌쩍 넘긴 고택으로 남아 고색의 멋스러움과 굳건함을 온몸으로 전하고 있어 예스러움이 더합니다.

남간정사는 자연에 거슬리지 않고 관조하며 유연하게 살아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있는 자연을 훼손하거나 파괴하지 않고, 주위 환경에 어울리는 집을 단정하게 올려놓습니다.

그래서 집은 그대로 자연의 일부입니다. 사치스럽지도 궁색하지도 않은 단아한 고택은, 그대로 지조와 품격을 지닌 선비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선비는 학문을 연마하고 세상에 나가 각기 맡은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을 소임이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부모와 여러 지인들의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았으니 어찌 그 소임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소임은 열과 성을 다 바쳐 후회 없이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임을 마치면 모든 영예를 미련 없이 내려놓고, 향리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거나 자연을 벗 삼아 살았습니다

만물의 영장들이 제 허물과 부끄러움을 깨닫는 날은 언제쯤일까요. 허공은 내 물음에 애써 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두 팔을 활짝 벌려서 제게로 날리는 꽃잎들을 말없이 받아줄 뿐입니다.

문득 송시열의 거문고 소리가 연못의 수면을 흔들고 튀어 오를 것 같습니다.

김도영 한국화가가 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전주 서학동사진미술관서 열세 번째 개인전을 갖습니다.

민화적으로 표현한 한옥을 더욱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로 봄의 한옥을 완연하게 표현,기존 작품보다 더욱 유연해진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동양원근법 중 부감법으로 대전 남간정사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평면적인 화면에 한옥의 기와지붕을 높은 시선으로 조망한 뒤, 단단하고 입체감 있는 한옥의 틀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 한글모음의 기본 모양인 천, 지, 인의 글자모양을 도식화해 한옥에서 느껴지는 온화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폭 속에 숯과 황토, 백토 등의 재료를 겹겹이 올린 붓질로 표현된 마당을 바라보자니, 유년시절 땅에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쓰기도 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면 송시열이 쓴 서안(책상)도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마치 작가의 성격을 닮은 듯합니다. “너무 화려한 것은 불편하다”는 그는 소박하고 정갈한 표현을 통해 관람자에게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우암 송시열 등 옛 선비는 소나기에도 뛰지 않았고 얼어죽을지언정 곁불은 쬐지도 않았습니다. 비바람에 찢겨져 흩어지느니 차라리 목을 꺾는 비장함이 양반들의 선비정신인가요.

하지만 그게 반드시 옳은 일이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지킬 것은 지키고 고칠 것은 고쳐가며 살아가야 현대의 삶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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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전주 서학동사진미술관 전시회장에서 '남간정사'앞에 작가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촬영은 이일순 관장님이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