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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문 사진전 '조감도' 추상화와 수묵화의 묵시(默示)




신상문 사진전 '조감도' 추상화와 수묵화의 묵시(默示)

사진가 신상문이 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순천 예술공간 카메라타에서 '조감도(鳥感圖)'를 주제로 사진전을 갖는다.
작가는 삼백예순다섯날, 순천 순천만정원에서 흑백 사진으로 흐린 하늘을 뒤덮으며 활공하는 새떼의 모습을 추상화 또는 수묵화의 필획처럼 담아냈다. 사진 속으로 날아온 새들은 점과 획이 되는 까닭이다.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순천만의 드넓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갈대 군락과 칠면초 군락이 정원처럼 꾸며져 있다. 동천이 빚어내는 S자 물길에 석양이 비치면 구불거리는 황금빛 수로가 장관이다.
바로 이곳에서 작가가 찍은 사진들로 선보인다. 특유의 흑백 사진 속에 산넘고 물건너 찾은 새들의 군무가 시선을 한곳으로 모은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 움푹 들어간 순천만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드넓은 뻘밭을 뒤덮고 있는 갈대 바다다.
아치형 목조 다리인 무진교는 갈대숲 탐방로의 시작점이자 끝점이다. 무진교를 건너니 양옆으로 갈대밭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바람에 갈대들이 마주치며 사각거리고 갈대밭 사이의 수로에 있는 오리들이 조약돌처럼 보였다.
순천만에 바람이 불면 파도가 치듯 갈대가 일렁인다. 저물어가는 햇살을 받으며 춤추는 갈대 군무를 보노라면 누구라도 넋을 잃는다. 그사이 드러난 갯벌에 백로와 가창오리 등의 모습이 한가롭다.
이들이 날갯짓하는 하늘과 헤엄치는 호수를 화폭 삼아 그 위에 찍고 그은 붓질의 흔적처럼 순천만의 새가 나타난다. 뚫어지게 살펴봐야 사진 속 점과 획이 허공을 가로지르고 물길을 박차고 비상하는 생명체의 약동임을 알게 된다. 어떻게 날짐승을, 자연스러운 동세를 머금은 점과 좌표로 화면에 뽑아낼 수 있을까.
작가는 ‘새들의 군무’ 연작을 통해 한껏 농익은 촬영과 인화의 내공을 과시하고 있다.
‘스트레이트 사진은 딱 부러진 재현’이란 세간의 상식을 뒤집는다.
그의 작품은 여러 겹의 농도로 다듬어진 회색빛과 검은빛의 화면을 바탕으로 날거나 헤엄치며 잔상을 남기는 이 땅의 새를 담는다. 눈 쌓인 모래톱이 보이는 겨울 강에 점점이 떠 있거나 훌렁거리는 능수버들 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새들, 상공을 휙 지나가는 갈매기, 햇살 비치는 물결을 뒤로하고 물보라 일으키며 날아오르는 오리떼의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작품의 볼거리는 차고 넘친다.
날짐승의 몸이 자연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약동감에 보는 이나 찍은 이가 투영한 감정이 포개져 서서히 고양감을 느끼게 된다.
가창오리는 순천만에서 2011년 1월 3만여 마리가 관찰된 이래 대규모로 관찰된 것은 2019년이 두 번째다. 최근들어 개체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어느 날, 해질 무렵 순천만 갯벌에 가창오리가 4그룹으로 나뉘어 멋진 군무를 펼치다가 농경지로 날아 들었다.
순천만을 배경으로 붉은 노을을 가로 질러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허물고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탐방객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작가는 이 순간을 놓지지 않고 셔텨를 눌렀다.
가창오리는 아침 해뜨기 전에 잠을 자기 위해 호수에 날아드는데, 대대·중대·소대별로 호수에 내려앉는 모습이 마치 비행장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듯 질서 정연하다. 가창오리는 어마어마하게 큰 무리로 이동하는 철새다. 이 정도의 가창오리가 이동하려면, 아마도 무리의 조직체 내부에 통솔하는 집단이 존재할 터이다.
작가는 순천만 이착륙과정 때는 겨울을 기준으로 아침 7시 이전, 오후 5시 이후 (해 질 무렵 군무를 촬영하면 실루엣의 멋진 가창오리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팁을 준다.
때로 가창오리는 낮에도 환경의 변화가 오면 가끔씩 군무를 하기도 한다.
순천만을 배경으로 한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는 보잘것없는 무진의 명산물을 안개라 했으나 새벽의 순천만을 보지 못한 나에게는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이 단연 무진의 명산물이다. 그리고 무진, 순천만은 보고 살필 것이 넘쳐났다.
작가는 순천만(順天灣)과 낙안읍성으로 유명한 전남 순천은 ‘천학(千鶴)의 도시’라고 했다.
생태계의 보고(寶庫)인 순천만을 중심으로 매년 1,000마리가 넘는 두루미가 찾아와 군무를 펼친다.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은 22.4㎢의 갯벌과 5.6㎢의 갈대 군락지에 220여 종의 조류와 120종의 식물이 함께 살아간다.
순천만이 ‘천학의 고장’이 된 것은 온화한 날씨와 천혜의 서식 환경이 맞물린 결과다. 작가는 흑두루미들이 잠을 청하는 순천만 동쪽 해룡면 갯벌은 웬만한 추위에도 얼지 않는다고 했다. 들녘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곡식이나 갯지렁이 등 먹이도 풍부하다. 순천만의 두루미는 매년 10월 하순 찾아와 이듬해 3월 중순 시베리아 등지로 떠난다.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는 행운과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길조다.
순천만의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데는 비결이 있다. 순천만의 ‘호위무사’ 격인 순천만정원이 있어서다.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를 비롯, 황새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등 희귀조류 25종이 날아들었다. 눈처럼 휘날리는 갈대 씨앗과 S자로 휘감아 치는 갯골, 이를 뒤덮는 안개로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연출한다.
뒤이어 흑두루미 2,500여마리가 가창오리에게 먹이터를 내어 주고 잠자리인 순천만 갯벌로 이동했다.
가창오리 날갯짓 소리와 흑두루미의 노래 소리가 갈대숲을 가득채우며 작가의 발길을 붙잡았다.
기울어 가는 태양은 산 위의 구름과 산 아래 습지를 부드러운 붉은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환상적인 경관에 자주 발길을 멈추고 카메라를 갖다 댔다.
물길 오른편에 컴퍼스로 둥근원을 그린 듯 기하학적인 갈대밭이 신비로워 보였다. 간척사업의 결과물이라 하는데, S자형 물길과 어울리며 또 하나의 명물이 탄생한 셈이다.
 작가의 특장인 화면의 질감과 톤이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어느 작업보다도 인화와 현상에 부심한 흔적이 여실하다.
“내가 생겨먹은 대로 찍었다”는 작가의 농처럼 작품 하나하나의 세부와 색감이 모두 다르다.
태양이 산 너머로 사라지니 용산전망대에 모였던 사람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태양은 사라졌으나 노을은 여전히 무대의 조명처럼 산과 갈대밭을 비추고 있었다. 붉은 노을은 산을 검푸르게 만들었고 그 아래에 나부끼는 갈대는 하얗게 빛났다. 
 작가는 오늘도 무진교를 만난다. 순천만과 작별할 시간이다. 무진교 아래 강물이 조용히 흐르고 푸르스름한 기운을 받은 빛이 푸른 강물 위로 갈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노을은 하늘도 채우고 갯벌도 채우고 물길도 채웠다. 그리고 물길 위에서 태양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이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