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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경기도박물관, 채용신의 기계유씨 초상화 첫 선


경기도박물관, 채용신의 기계유씨 초상화 첫선

'칠분’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초상화를 뜻하기도 한다. 옛 중국의 학자 장역이 송나라 유학자 정이의 제문에서 그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칠분(七分)의 용모가 있다’고 적은 구절에서 유래했다. 아무리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린 초상화여도 그림 한 점에 그 사람의 모든 면모를 다 담기는 불가능하니, ‘열에 일곱’이어도 충분히 탁월한 초상화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1인 1카메라’ 시대가 되어 매일같이 얼굴 사진을 남기지만 한 장의 얼굴이 사람의 전모를 말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열에 일곱’이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이 27일까지 갖는 초상화 특별전 ‘열에 일곱(七分之儀)’에는 이 같은 깊은 뜻이 숨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4점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8점 등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는 특히 같은 인물을 그린 여러 초상화를 한 자리에 보여줌으로써 조선 시대 초상화가 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을 조명했다.
‘홍경주 초상’은 모사를 위한 초본이 함께 남아 있는 드문 사례다. ‘임우 초상’에는 내관의 정체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송시열 초상’에서는 존경받는 성현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기계 유씨 초상’과 채용신의 초상들에서는 20세기에 접어들며 변화한 초상화의 경향을 감지하게 된다.
석지(石芝) 채용신(1850-1941)은 20세기 초에 활동한 화가로 초상화로 이름을 날렸다. 고종의 어진을 비롯, 이하응, 최익현 등 많은 인물의 초상화를 남겼다. 일제강점기에는 상업 공방을 운영하며 근대적인 초상화 주문 제작 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화가로 전북 일대에서 활동했다.
1923년부터는 아예 직업작가로 나서 정읍시 신태인읍 육리에 ‘채석강 도화소’라는 공방을 차렸다. 이 공방은 아들 채상묵과 손자 채규영 등과 같이 운영했다. 이 때부터는 주로 사진을 받아 초상화를 주문제작 했다.
그림 속 인물은 깃과 도련, 소매에 검은색 선을 두른 녹색 학창의를 입고 서양식 의자에 앉아 있다. 머리에는 금색의 잠을 꽂은 검은 관을 쓰고 있습다. 인물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화면 왼쪽에 적힌 글을 통해 1915년 채용신이 그린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