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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새통

최기우, '달릉개' 발간

 

달릉개(지은이 최기우 최명희문학관 관장, 출판 평민사)’는 극작가 최기우의 네 번째 희곡집이다. ‘소리의 참 의미를 묻는 달릉개(2016)와 동학농민혁명의 아쉬움을 풀어낸 녹두장군 한양 압송 차()(2013), 춘향전흥부전의 이야기 틈새를 채우고 비켜 보며 다시 엮은 아매도 내 사랑아(2016)월매를 사랑한 놀부(2017), 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2020) 다섯 편을 담았다.

대부분 전주와 남원에서 상설공연된 작품으로, ‘얘기보따리에서 제작한 녹두장군 한양 압송 차()는 전주한옥마을 주말상설공연으로, 고전에서 착안한 세 작품은 남원시립국악단이 제작해 야간상설공연으로 시민과 관광객에게 흥겨운 낮과 밤을 선사했다.

표제작인 달릉개는 전주부 통인청 대사습에 참가했다가 귀명창들에게 조롱당해 소리를 포기하고 부채장수가 된 청년 달릉개가 전주에서 떠돌이 명창과 서예가, 남문시장 상인들 등을 만난 뒤 남녀노소 함께 어울려 노는 판의 의미와 소리의 가치를 깨닫고 진정한 소리꾼이 되는 내용이다. 1398년 전주에 효자비(전주시 향토문화유산 제5)가 세워진 박진, 한벽루와 근처 바위에 설화와 글씨(암각서ㆍ巖刻書)를 남긴 창암 이삼만(17701847), 전주대사습에서 귀명창들에게 조롱당한 뒤 독공으로 명창이 된 정창업(18471919) 등을 주요 이야깃거리로 삼았으며, 귀명창ㆍ남문시장ㆍ막걸리ㆍ부채ㆍ열무김치ㆍ음식ㆍ전주천 등 전주의 다양한 콘텐츠를 걸판지게 담았다. 2016년 전주문화재단의 제1회 전주 이야기자원 공연화 지원사업에 선정됐고, 이듬해에는 전북문화관광재단의 무대공연작품 제작 지원사업에 선정된 후 최종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전북작가회의가 시상하는 작가의눈 작품상도 받았다.

녹두장군 한양 압송 차()는 전봉준(18551895) 장군이 한양으로 압송될 때,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에 들렀고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가정으로 쓴 작품이다. 정이 넘치는 전주 사람들은 분명 전봉준에게 정성스러운 밥 한 끼를 대접하려고 했을 것이며, 농민군들은 전주에서 그의 구출 작전을 벌였을 것이다. 전봉준은 자신에게 전주비빔밥 한 그릇을 먹여 보내려고 몰려든 사람들과 훗날 전동성당을 건립하는 보두네(18591915) 신부 등을 만나며 동학농민혁명의 의의와 가치를 새롭게 한다. 또한, 전봉준은 압송행렬을 보기 위해 찾아온 열혈청년 김구(18761949)가 일본군에게 잡히자 자기 대신 조선의 청년 김구를 구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린다. 이는 당시 백범이 황해도에서 애기접주로 불리며 큰 활약을 했고, 그즈음 3개월 동안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기록에서 시작된 상상이다. 이 작품은 2017년 전라북도 대표 희곡을 영화화하는 전주영상위원회의 전북 문화콘텐츠 융복합 사업에 선정돼 영화 앙상블(2019)의 원작이 되었다.

아매도 내 사랑아월매를 사랑한 놀부, 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는 남원이 배경인 춘향전흥부전의 주요 서사와 인물을 활용한 작품이다. 고전은 시ㆍ공간을 넘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문화의 원형이자 오늘날 새롭게 탄생하는 이야기들의 뿌리다.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을 앞세웠지만, 작품의 지향이 민심과 일치해 온 것도 큰 이점이다. 저작권이 없어 과감한 도전도 가능하다. 다들 아는 이야기 그대로인 것 같지만, 구성과 전개가 다르고, 전혀 딴판인 것 같다가도 제 줄기를 찾아가는 고전의 재구성. 각 인물이 자신의 고유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지금 시대의 사람들과 만나고, 아쉽고 서럽고 분한 세상을 풍자하며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것. 콧등이 시큰한 감동을 그대로 살려 아지랑이처럼 아련한 슬픔은 곧 승화되고, ‘봄날의 향기처럼 발랄하게 혹은 발칙하게. 작가 최기우는 무수한 겹과 결을 지닌 고전의 매력에 빠져 작품을 여러 편 썼다. 아매도 내 사랑아춘향전에서 줄이거나 빠졌을 것 같은 이야기를 탐구해 다시 썼다.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해후의 정점을 이루기 위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다.

월매를 사랑한 놀부춘향전흥부전의 등장인물을 섞어 5년 뒤 이야기로 다시 짰다. 춘향과 몽룡을 한양으로 보내고 홀로 남은 춘향전의 월매와 제비에게 아내마저 빼앗기고 동생 집에 얹혀사는 흥부전의 놀부가 나누는 중년의 사랑 이야기가 극의 중심이다. 재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사기꾼 변가 일당에게 속아 모든 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한 흥부 가족을 위해 월매와 놀부,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못된 이들을 혼내주는 이야기도 함께 펼쳐진다.

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흥부전의 박 타는 대목으로 엮은 흥겨운 놀이판이다. 흥부 부부의 박 타는 대목은 화사한 춤이 이어지는 잔치마당이며, 놀부 부부의 박 타는 대목은 놀부를 응징하는 초라니패ㆍ각설이패 등의 전통 연희가 한바탕 펼쳐진다. 양귀비와 흰 수염 노인, 장비 등이 나오면서 갈등도 보이지만, 놀부와 흥부의 화해는 훈훈한 마무리로 잇게 한다. 그리고 형제에게는 각 집에 하나씩 남은 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남는다.

작품을 쓰는 작가가 즐거워야 작품을 보여주는 배우와 스태프도 흐뭇하고 작품을 보는 관객도 행복하다는 것이 작가의 지론이다. 이 마음으로 쓴 작품들이 달릉개를 채우고 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