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발전이 있기까지 이촌(梨村) 김용진(金容鎭, 1922~1973)국회의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1967년 이 지역에서는 드물게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 후보로 유일하게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 발전의 밑거름을 제공한 인물로 1973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게 됐다.
‘국회의원김용진공적비’가 전주 마전교 앞에 서 있다. ‘신해(辛亥)’ 8월 준공된 것으로 기록된 바 1971년 주민 일동이 건립했다.
4언 구의 문장이 압권인 가운데 다리가 ‘비껴 누워 푸른 하늘을 보듬고 있다(橋橫碧空)’는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주 제1교(橋)’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비 뒤의 글귀를 살펴보면 이환의 전북지사, 엄병건 전주시장, 추진위원 대표 이존칠, 동성주식회사 대표 송갑섭로 돼 있다.
1967년 8월에 촬영된 전북일보의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고 있다. 찌는 듯한 삼복더위, 천변 포플러 나무에서는 자지러지는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30도를 넘는 염천에 어린 아이들은 훌러덩 옷을 벗어 물 속으로 뛰어든다. 마전교가 세워지기 전, 서신동에는 마전 섶다리가 있었다.
‘마전(馬田, 마랏)’은 척골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모양이 말이 달리는 말이 밭에 내리는 형국이라 하며, 황강서원(黃崗書院, 문화재자료 12호)이 유명하다. 애시당초엔 전주 곤지산(坤止山) 아래에 있었다가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렸던 것을, 훗날 현 위치로 옮겨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문정(李文挺)을 주벽(사당의 으뜸이 되는 위패)으로 이백유(李伯由)·이경동(李瓊仝)·이목(李穆)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다.
섶다리와 삼복 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는 동심에서 옛 정취가 느껴진다. 하지만 짧은 미니스커트에 양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걸어가는 새침한 아가씨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김용진 전 국회의원 공적 사업으로 널리 알려진 게 마전교(馬田橋)다. 1969년 10월 14일 길이 150m, 폭 10m의 마전교의 기공을 했다.
그후 1998년 4월 8일부터 2002년 3월 31일까지 시공, 길이 164m, 폭 25m의 빔형교로 다시 태어나 전주 시민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마전교 둔치의 자전거도로가 한국자전거문화포럼이 선정하는 ‘살림길’로 선정됐다. 전주시 자전거 ‘살림길’은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거쳐 최종 심사에서 마전교에서부터 삼천교까지 10km가 최종 선정됐다.
그는 전북대 의과대 신설과 전북은행 설립, 전주공업단지 조성, 호남고속도로 건설을 앞당기는 등 전주의 근대적인 도시개발과 산업화 기반을 닦는데 숨은 공로자다.
1974년 2월 22일 덕진공원 연지문을 지나 전북도립국악원으로 가기 전 삼각지점에 세워졌던 ‘국회의원 김용진공적비’의 내용 일부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웰빙 그린웨이 사업’을 추진한 바 이 비석이 덕진공원으로 들어왔다는 전주시의 설명이다.
그와 몇 차례 ‘이화집’ 등 선술집에서 진솔한 이야기도 나눠봤다는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시인)을 만나고 싶은 오늘이다. /이종근(삽화 새전북신문 정윤성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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