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의 동쪽으로는 진산(鎭山)인 방장산(方丈山), 반등산 (半登山), 북쪽에 성산(聖山), 동남쪽으로 모양성에 둘러싸여 지세가 높고, 서남으로 바다를 향해 트인 고창읍의 지형을 행주형(行舟形)이다. 때문에 중앙에 돛대(檣)를 세우고, 앞이 트이고 허한 남쪽과 서쪽에 각각 진남(鎭南)과 진서(鎭西)에 세운 염승풍수(厭勝風水)의 대표적인 예로, 지리비보(地理裨補)사상의 유물로도 대표적이다. 교촌마을 성산(聖山)은 한자를 풀이하면 ‘성인(聖人)의 산’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성산은 고창의 주산인 방장산에서 출발한다. 벽오봉 서쪽을 향해 구붓구붓 이어오는 산굽이를 내려오면 동서대로의 지하도가 나온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면 우뚝 솟은 속칭 필봉이 보이는데 거기서부터 높고 낮은 산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멈춰버린 산이 성산이다. 필봉에서 성산기슭까지 안겨있는 마을들이 법정리의 교촌리이고, 그 중심이 교촌마을이다.
염재 송태회(念齋 宋泰會·1872~1942)는 전남 화순군 출신의 서화가로 고창고보에서 한문과 서화를 가르쳤다. 그는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2점이 모두 입상한 이후 모두 8회(제1, 3, 4, 5, 6, 7, 8, 9회)를 입선했다. 1926년 병인(丙寅) 3월 중순, 고창고보 교사 준공을 기념해 고창의 역사와 주변 산천의 아름다움을 ‘성산기(聖山記)’ 라는 이름으로 남겼다. ‘고창에서 북쪽으로 백여 걸음이 못되는 곳에 산이 있으니 성산(聖山)이라 한다.(중략) 내 생각에 산이름이 반드시 문묘 때문에 얻어진 듯하다.(중략) 군지를 살펴보면 지금으로부터 337년전에 이 고을 오희길(吳希吉)과 안지(安祉) 등 여러분들이 이 산의 동쪽 학당 고을(산소골 벽산사 부근)로부터 문묘를 이곳으로 옮겼다 했으니 혹 그때부터 이르는 이름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 이전부터 내려오는 이름이냐? 사람이야 응당 성(聖)과 우(愚)가 있게 마련이거니와 산도 또한 같단 말이냐? 그러나 성인의 말씀에 어진 사람은 산을 즐겨한다 하였는 바, 이의 중후한 품이 인(仁)의 도(道)에 가까운 까닭이라. 윗사람이 그 말씀을 생략해 인산(仁山)이라 하니 이를 미루어 보건데 성산이란 호칭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는 새로 지은 교사를 “으리으리하여 화엄누각과 같이 우뚝 솟아있다(傑然如華嚴樓閣湧出地上)”고 표현했다. 성산은 오늘도 고창고등학교를 북쪽에서 둘러 막아 아늑한데다가 울창한 소나무들이 연륜을 더해 지금의 왕소나무가 됐다. 고창군이 최근에 ‘품격 있는 역사문화 관광 도시 실현’을 위해 문화관광분야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민간주도 ‘고창문화재단’ 설립, 인문학 도시 구축 및 고창학 정립 등 지역 문화관광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성산(聖山)에 해뜰날이 있을날을 기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종근(삽화 새전북신문 정윤서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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