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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여훈서




 근대전환기 유교 ‘여훈서(女訓書)’의 편찬의식은 급속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위기의식과 그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전통적 가치의 수호의지,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주의 모성에 대한 요청과 그에 따른 여성교육의 필요에 대한 공감이다. 여성의 권한이 보다 확대될 수 있는 근대적 가족 모델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유교적 종법사상에 기초한 전통가족제도를 수호하려는 입장을 강력하게 천명한다.
 ‘내가 근년에 온 세계의 정세를 보건대, 오랑캐의 화가 하늘을 뒤덮어 예교가 흔적도 없어져서 급속히 상서(相鼠)와 유호(有狐)의 풍속에 이르러 인도가 폐해졌다. 지금 이 책을 얻어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깨우치면 또한 음(陰) 가운데서 홀로 회복한 철원(哲媛)이 ‘한광(漢廣)’을 영탄한 아름다움에 나아감으로써 이남(二南)의 교화를 기초하는 일이 어찌 없다고 하겠는가. 이것이 세상에 바라는 것일 뿐이다’
 이는 1907년 박만환(朴晩煥)이 정읍 영주정사(瀛州精舍)에서 번역, 간행한 ‘여사서언해(女四書諺解에)’에 간재 전우(田愚,1841~1922)가 붙인 발문이다. 그는 그의 시대를 오랑캐의 화가 하늘을 뒤덮어 예교가 사라지고 인도가 폐해진 시대로 인식하고 있다. 시경 ‘한광’에, ‘남쪽에 교목이 있으니, 가서 쉴 수가 없다. 한수에 놀러 나온 여자가 있으니 구할 수 없도다. 한(漢)수가 넓어 헤엄쳐 갈 수 없으며, 강(江)수가 길어 뗏목으로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장차 무엇으로 남편을 보좌하고 그 가정을 화목하게 하여 국가와 천하게까지 미치겠는가. 이것이 세도가 날로 떨어져서 교화가 불명해지는 이유이다. 탄식을 이길 수 있겠는가’
 간재의 학통을 계승한 고창출신 유영선(柳永善)이 1925년 '규범요감(閨範要鑑)'을 짓고 붙인 글을 통해서도 치국을 위한 여성교육의 필요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전우는 간재집 6권 ‘최유인전(崔孺人傳)’을 통해 유인 최씨가 보인 교육열을 기술했다. ‘제왕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인재를 기르고 기르지 못하는 것에서 말미암는다. 사대부 집안이 융성하고 그렇게 못함은 반드시 자손을 가르키고 가르치지 않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함으로써 자식교육이 집안의 성패를 결정지을 뿐만 아니라 제왕, 즉 국가의 흥왕에도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강화되는 모성은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여성의 예속은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의무를 추가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근대전환기 여훈서의 모성 재구성은 제한적인 의의를 지닐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전통적이면서도 근대적 의의를 지닐 수 있는 가치를 통해 ‘여훈서’로 재구성한 대응의 실천적 의의는 평가할 만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여 신작로에서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굿굿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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