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사는 소나무를 심고, 만년 사는 학을 희망한다
‘천년 사는 소나무를 심고, 만년 사는 학을 불러들인다’는 '송수천년(松壽千年) 학수만년(鶴壽萬年)'을 기약하는 곳이 바로 학산이다. 전주는 전주천을 중심으로 동쪽으론 승암산과 기린산, 건지산 등 호남정맥 만덕산 줄기가 뻗어있다. 학산(鶴山)은 평화동과 서서학동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고덕산에서 보광재를 거쳐 서쪽의 금성산으로 이어진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학(鶴)이 전주천을 향해 깃들어 있는 형국으로, 이 일대엔 학소암 등 3곳의 사찰과 평화동석실군 등 4곳의 유적지, 남고진사적비, 만경대 정몽주 우국시, 남고사 대웅전 불좌상 등 다양한 유물이 존재하고 있다. 또 전주가 한지의 고장임을 증명하는 한지공장과 닥나무 생산지 등이 존재하고 있으며, 석탄을 채취했던 것을 알 수 있는 탄광 채굴터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저 멀리로 불어난 계곡물은 서학동과 평화동을 에두르고 물이끼는 돌의 이마에서 한층 짙푸르다. 시나브로, 청량한 바람은 맑고 청아해서 꿈길을 걷는 듯 행복한 새벽길을 펼쳐놓는다. 그대여! 행여 시린 마음 달래려거든 '하늘닮은' 사람들의 희망, '하늘담은' 학산에 눈길 한 번만 주시기를. 엄동의 공수내로 물줄기가 향할지라도 윤슬은 더 찬란하고 이내 삶은 뜨거워진다.
경사와 능선이 어우러져 제법 굴곡 있는 학산
학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평화동 코오롱, 송정써미트, 평화주공아파트, 완산중학교 등 입구가 여러 곳이 있다. 평화동 송정서미트 101동 앞를 지나 오른쪽 능선길, 학산, 옥녀봉, 학소암, 다시 출발지로 이어지면서 소나무 트레킹 코스로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큰아들 기영이와 함께 오늘, 학산을 오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는다. 들머리에 들어선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오솔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학산은 대부분이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어 솔내음이 많이 난다. 황금색으로 물든 솔잎이 떨어져 길을 덮고 있다. 소나무를 만나 너무 반갑다. 과거엔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치고 지상에서의 첫날을 맞고, 산모의 첫 국밥도 마른 솔잎이나 솔가지를 태워 끓이지 않았나. 사람이 죽어서는 무덤가에 둥그렇게 솔을 심어 이승에다 저승을 꾸미지 않았나.
투박한 등산화를 신었음에도 푹신함이 전해져 기분이 좋다.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며 휴식을 즐기는 곳을 지나자 가파른 산길이 나타난다. 숨을 돌리며 산 아래로 시선을 돌리니 전주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어느센가, 지붕 같은 하늘채에는 흰구름이 윤무하고 침실 같은 대지와 출렁이는 저 하늘 밑엔 푸른 산과 꼬막 등 같은 사람의 집, 아름다운 우리네 산하가 천년의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흐르고 있다.
학이여,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라
전주시가 몇해 전, 서학광장에 상징 조형물을 설치했다. 알과 둥지를 틀고 창공을 향해 날개를 펼쳐 힘차고 우아하게 비상하는 학의 모습으로 말이다. 한쪽에서는 청솔모가 날뛰고, 다른 한쪽에서는 날다람쥐가 술래잡기를 하자고 유혹한다. 송글송글 배어 난 이마 위의 땀방울이 때맞춰 불어오는 바람과 살포시 입맞춤하면서 실로 형언키 어려운, 묘한 쾌감을 맛보여 준다. 향긋한 숲내음을 심호흡으로 삼킬 양이면 폐부에 거미줄 친 시름과 고뇌 또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는다. 오늘, 여의치 않으면 내일을 기약해야 하고, 내일 여의치 않으면 모레를 기약하면 참 좋겠다. 고난에 시달린다 해도 희망은 있어야 하고, 역경에 시달린다 해도 기대는 있어야 한다. 근심에 시달린다 해도 내일은 있어야 하고, 걱정에 시달린다 해도 미래는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학산의 가르침이다.
천만그루 정원도시 만들기에 나선 전주시가 도시근교 산림을 활용해 장애물이 없어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인권숲을 만들었다. 사업 대상지 학산 맏내제는 울창한 산림과 수변 공간이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해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곳으로, 어르신과 장애인 등이 이곳에서 산림휴양을 즐길 수 있도록 수변 주위 172m 구간에 폭1.5m의 보행 데크를 설치했다.
학소암보다 더 빛나는 탑사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산불초소가 보인다. 평화동 사람들은 이를 ‘정상’이라고 부른다. 능선을 더 타면 학산, 고덕산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번 산행은 학소암과의 대면을 기대하면서 내려오기로 한다. 전북 문화재자료 제3호 학소암(鶴巢庵)은 고덕산 서쪽 산기슭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바, 마치 학(鶴)이 알을 품고 있듯 아늑하고 고요한 학의 둥지를 연상케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광재 계곡의 시원스럽고, 흡족한 물줄기를 절기 때문에 보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며 학소암 위에 자리한 소원탑에, 전주를 찾은 고려때의 이규보처럼 돌 하나를 올렸다. 별 하나 얹고, 바람 하나 얹고, 시 한 편 얹고, 그 위에 인고의 땀방울을 떨어 뜨려 소망의 돌탑을 바라보면서 천년학의 비상을 꿈꿔본다.
글 이종근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국장
이종근씨는 수필가, 다큐 및 창극작가,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옛집과 꽃담>, <한국의 다리 풍경>, <한국의 꽃살문>, <전주 한옥마을 다시보기 1-2>, <고창인문기행> 등 25권의 한국 문화 관련 저서를 펴냈다. 전주시 문화의집 초대 관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2030 전주 문화비전 수립 자문위원, 전주 문화특별시 시민연구모임 멤버, 한국서예교류협회 홍보 및 기획 이사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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