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댐 건설예산 저지를 위한 농성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 동안 흐르는 강물을 막는 대규모의 댐을 수 없이 건설해 왔습니다. 그러나 댐이 그 동안 큰 무리없이 세워질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부패의 고리를 끊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흉칙한 댐보다도 더 높이 쌓여진 정치권력에 집중된 부도덕 앞에서 이 나라 살림과 고질적으로 체질화되고 뻔뻔한 비상식적 예산집행의 또 다른 무지와 오만의 더 큰 댐 앞에 분노하며, 힘을 모아 벌이기로 했습니다. 용담댐 백지화를 원하는 많은 분들의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1995년 봄, 안천면 본댐 공사현장에서 각 마을별로 연좌 대모(농성)를 합니다. 인도에 간디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기 위해 17번이나 단식 투쟁을 했습니다. 그는 몸이 나중에는 30Kg 밖에 되지 않는 연약한 몸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단식할 때는 3주간에 걸쳐 장기 단식에 들어갔는데, 그럴 때가 되면 온 나라가 국민들이 참여하면서 온 나라가 밤에 소등을 하면서 불을 꺼주면서 간디의 단식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조에 많은 선비들이 집단으로 한양에 상경해 연좌 대모하고 대체로 머리를 삭발하는 일이 제일 많고 단식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단식을 절곡이라고 해서 음식을 먹지 않고 의사를 나타내었습니다. 그 다음에 맹인처럼 행세를 하면서 저항을 하는 그런 일들도 있었습니다. 청맹저항이라고 해서 대낮에 전부 장님같이 지팡이를 잡고 더듬거리면서 이 나라의 어려움, 어지러움, 혼돈에 빠져있는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서 선비들이 장님 행세도 하고 미치광이 행세도 했습니다. 자해저항이라고 해서 미친 짓을 하면서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용담댐은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와 용담면 월계리 사이에 자리한 다목적댐으로 금강본류의 수계를 막아 조성된 댐입니다. 높이는 70m, 길이는498m에 이르며, 저수량은 8억1,500만톤에 달해 국내에서 5번째로 큰 댐으로 오늘 저수량 291백만㎥ 저수율 35.7%에 달하고 있으며 인근 지역에서 드라이브 코스로 많이 찾는 명소입니다.
용담댐 건설 계획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에 등장한 후, 1990년대에 다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정부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정책 집행에 피해를 받아 온 주민들이 1990년대에 동일한 일을 다시 겪게 되자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용담댐 건설 반대 투쟁은 정부의 밀실 행정·관 주도의 일방 집행·주민 참여 배제 등에 대한 주민의 불신에서 비롯된 권리 회복 투쟁이었다는 시작이 있는 바,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용담댐이 아닌 용담땜 건설 반대라는 피켓의 글자가 오늘따라 달리보이는 것은 왜 일까요.<글=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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