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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완판본의 고향 전주와 완주


전주 재발견 현장답사] ⑬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고향을 찾아서
  



 
 조선 출판문화의 성지…구이, 전주 완판본-정읍 태인본 '소통의 길'


▲ 「조웅전」의 고향

전주시 평화동 동적골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완주군 구이면 평촌(平村)과 광곡(光谷)이라는 마을이 있다. 모악산에 빗대어 부악산(父岳山)이라 부르는 고덕산(高德山, 高達山, 高大山)의 한 자락인 이 마을 안쪽에는 백제 때 절인 경복사(景福寺)가 있던 곳이다. 고구려 스님이며 열반종을 창시한 보덕화상(普德和尙)이 650년에 절의 건물을 공중으로 날려서 옮겨왔다는 '비래방장(飛來方丈)'이란 설화를 남기면서 백제로 넘어와서 열반종을 퍼뜨린 곳이 바로 이 절이다.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의 태를 묻은 태실이 있고 태실마을로 불리는 곳이 평촌에 있다.

'구이'는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고장이기도 하다. 평촌에서 한일장신대로 넘어가는 옛 길에 작은 저수지가 보이는데 그 아랫마을이 난산이다. 바로 그 난산마을 위의 저수지가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인 「조웅전」의 간기에 나오는 봉성이다. 그 간기에는 한글로 '광셔십구연계사오월일봉셩신간이라'고 쓰여 있다. 광서(光緖) 19년 계사(癸巳)년(1893년) 오월에 봉성(鳳成)에서 「조웅전」을 처음 발간하였다는 기록이다. 이 봉성에서는 주민들이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어 팔았는데 이들이 나무판을 만들었고 여기로 각수들이 와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 책판을 만들었던 것이다.

「조웅전(趙雄傳)」은 전주에서 1892년 처음 간행되고, 1893년 구이면 봉성에서 간행된 뒤에 1898년, 1903년, 1906년, 1909년 등 계속적으로 간행한 아주 인기가 있는 영웅소설이었다.

▲ 흑석골 한지공장과 평촌 가는 길

싸전다리라 불리는 전주교를 지나 서서학동에 있는 흑석골이란 지역으로 들어가면 한지공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970년 이전까지 많은 한지 공장이 자리하면서 전주 한지 생산을 담당하던 고을이다. 어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서학동 흑석골 뒷산(학산)을 넘어서 구이면 평촌으로 다녔다고 하니 구이면 봉성에서 한글고전소설을 찍은 이유를 알 수 있다. 고전소설을 발간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한지와 목판을 만드는 나무가 만난 곳이 바로 봉성이다.

▲ 「별월봉기」와 원석구 마을

문정초등학교를 조금 지나 왼쪽 편에 '원석구'라는 마을이 있다.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원조는 1823년에 발간한 「별월봉기」인데 이는 전주시 평화동(원래는 완주군 구이면)에 있는 원석구라는 마을에서 간행되었다. 이 책에는 '도광삼년사월일석구곡개판(道光三年四月日石龜谷開板)'의 간기가 보인다. 서울에서 발간한 「월봉기」라는 소설을 전주에서 다시 발간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쨌든 판매를 목적으로 처음 발간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 완주 구이와 정읍 칠보

구이를 지나 운암 저수지를 가기 직전에 정자리로 가는 곳이 있다. 여기를 지나면 정읍군 칠보로 가는 사잇길이다. 칠보 태인에서 1664년부터 1803년까지 판매용 책들이 많이 찍혀 팔리다가 1803년부터 전주에서 판매용 책이 대량으로 생산되는데 바로 칠보와 전주가 연결되는 길이 구이인 것이다.

구이(九耳)는 '구이동(龜耳洞)', '구동(龜洞)'으로도 불렸다. 실제로 완판본 옛 문헌의 간기에 '구동(龜洞)'이 보인다. 한글고전소설 「소대성전」의 간기에 '무신중춘완구동신간(戊申(1908)仲春完龜洞新刊)'이 보이고, 「장경전」의 간기에 '무신맹하완구동신간(戊申(1908)孟夏完龜洞新刊)'이 보이며, 「화룡도」의 간기에 '정미맹추구동신간(丁未(1907)孟秋龜洞新刊)'이 보인다. 한자 '구(龜)'자가 들어가는 지명으로는 한글고전소설을 발간한 '구석리(龜石里, 九石里)'가 있는데 이는 현재 전주시 전동의 전주교 부근에 해당한다. 따라서 '구동(龜洞)'은 '구이'이거나 아니면 '구석리'일 것이다.

길은 소통의 생명줄이다. 생계를 위해 물건을 바꾸러 다니고, 삶의 애환을 나누며 드나드는 곳이 길이다. 완판본과 정읍 태인본 출판문화를 이어주는 길은 바로 구이의 길이었다.

태인에서 찍은 책이 1803년까지 찍히고 화려한 막을 내리는데, 이어서 1803년부터 한문본 구운몽이 전주에서 찍히면서 판매용 책이 다시 이어지게 되는 것도 이 길을 통해서이다.

▲ 전주천변의 서점들

이렇게 시작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전주천변에서 화려한 꽃을 피운다. 1898년 발간된 토별가, 심청가와 같은 판소리계 소설은 다가동 완산교 천변에 위치한 서계서포에서 발간되었는데 1911년에도 이 서점에서 많은 소설들이 대량으로 발간되었다. 이어서 1916년에는 다가서포에서 '열여춘향수절가, 홍길동전'과 같은 주옥같은 소설들이 발간된다. 싸전다리에서 남문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던 '완흥사서포'에서도 1912년 '열여춘향수절가, 유충열전' 등이 발간된다.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이 끝나가는 1932년까지 아중리 저수지 아래에서 '양책방'이 '언삼국지, 소대성전, 조웅전' 등 한글고전소설을 발간한다. 구이와 전주에서 발간한 '완판본'은 서울에서 발간된 '경판본'과 함께 한글고전소설을 대표하는 책으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을 정도로 꽃을 피웠다.

필자가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살았던 아름다운 구이와 전주가 이처럼 많은 역사를 안고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어른이 되어 일일이 책을 통하여, 구술을 통하여 알게 된 사실들이었다. 우리가 태어난 고향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되갚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선친의 고향인 구이와 필자의 고향인 전주를 생각해 보면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태영(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이번 답사는 '완판본 한글 고전소설의 고향'(안내 이태영 전북대 교수) 14일 오후 2시 전주역사박물관 출발

구이 평촌 → 평화동 원석구 → 서학동 흑석골 → 한지공장터 →아중리 양책방 → 남부시장 천변 → 희현당 → 전주향교 → 완판본문화관 건립장소


※ 다음 답사는 11월 28일 '신작로를 따라 일제 수탈을 본다'(안내 소순열 전북대 교수)


※ 답사신청은 전주문화사랑회(www.okjeonju.net) 전북일보  승인 2009.11.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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