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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새통

이종근 고창인문기행,보리피리 잘라 고창에서 하룻밤



이종근이   ' 고창인문여행' <보리 피리 잘라 고창에서 하룻밤(도서출판 기역, 편집 책마을 해리>이란 책자를 발간합니다. 아마도 이 책은 인문학의 지평을 많이 넓힌 책이란 평가를 기대합니다.

제3회 한국지역도서전이 9일부터 12일까지 고창군 해리면 해리책마을 해리 일원 등에서 열리는 바, 출판사가 이를 겨냥해 만든 책자입니다.

이종근은 11일 오후 3시 열리는 한국지역도서전 가운데 그 섹션의 하나로 고창작가 낭독회에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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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고창인문기행 보리잘라 고창에서 하룻밤

고창사람이 쓴 고창의 첫 인문학도서
안동에 사는 부인 여강이씨가 남편 김진화에게 보낸 편지 사연 등 새로 발굴한 자료 즐비


 고창의 보리밭에 초록 바람이 분다. 알알이 돋아난 보리 까끄라기마다 바람결이 묻어난다. 시나브로, 보리밭에 스미는 바람에선 옅은 파도 소리가 들린다. 이맘때 공음면 학원농장 일대에서는 청보리축제가 펼쳐진다. 들녘마다 도드라지는 바람은 한파를 떨치고 봄 향기를 품은 보리 싹이 농부에게 보내는 생존신고다.
 고창출신 이종근작가가 '고창인문기행 ㅡ보리피리 잘라 고창에서 하룻밤(도서출판 기역, 편집 책마을 해리)이란 책자를 펴냈다. 제3회 한국지역도서전이 9일부터 12일까지 고창군 해리면 책마을 해리 일원 등에서 열리는 바, 출판사가 이번 행사를 기획해 만든 책자로, 30 여 년 동안 연구하며 찾아낸 결과물이다.
 고창의 ‘高’자는 높을 고, 창 자는 높을 ‘敞’이다. 옛 이름 모양현(牟陽縣)엔 ‘보리 모(牟)’자가 들어 있고, 고창고등학교 교가에도 한겨울의 추위를 잘 이겨낸 보리를 통해 고창정신을 노래하고 있다고 했다. `갈재맥 받아온 성산 기슭에/ 우뚝이 서 있는 웅대한 집은/ 빼나고 씩씩한 쾌남아들이/ 나날이 자라나는 고창 밭일세/ [후렴] 이 밭에 자라난 보리/ 십삼도 근역에 두루 퍼지고/ 이 밭에서도 자라난 보리/ 온 세계 곳곳에 씨가 되겠네, 씨가 되겠네’
작가는 보리 피리를 잘라 고창에서 하룻밤만 묵어도 천년의 세월이 깃들어 깃들어 있다고 했다. 오늘은 비바람에 찢겨져 흩어지느니 차라리 목을 꺾는 고창 사람들의 비장함에 이내 맘도 푸르게 푸르게 언제나 떨리며 흘러간다.
작가가 새로 발굴한 자료로 넘쳐난다. 안동에 사는 부인 여강이씨가 남편 김진화에게 보낸 편지 사연을 소개했다. '고을(에 돈이) 바싹 말랐으니 어찌하겠삽? 절통하옵. 장(醬)을 보내라 하오니, 된장 말인지… 끓여나 잡수실까, 된장이 나을 듯하여 한 항아리, 고추장과 두부장도 한 항아리씩 가옵.'  1847년 6월 경상도 안동의 아내는 멀리  고창군 무장면의 현감으로 간 남편이 걱정돼 견딜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객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아내가 생각한 해결책은 '장'이었다.
학봉 김성일의 10대 종손 김진화(金鎭華, 1793~1850)의 부인 여강이씨(驪江李氏, 1792~1862)가  무장(茂長)에 현감으로 가 있던 남편에게 보낸 한글 편지 16통(한국학중앙연구원소장)에 이같은 내용이 나타난다.  55세의 아내가 한 살 연하 남편의 건강을 애틋하게 챙기는 이 편지에서 이씨는 아예 고추장·된장·두부장·즙장·초장 등 장류를 항아리째로 남편에게 보내 입맛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김진화는 1846년 4월 2일에 무장현으로 발령이 났다. 1847년 6월에 썼을 것으로 여겨지는 여강이씨의 편지엔 된장, 고추장, 초장을 보낸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강이씨가 살았던 시절 두부장은 음력 3월에 담그는 장류의 하나였다. 영조는 '가을보리밥에 고추장과 김칫국이 거의 입맛에 맞았다'고 할 정도였다. 서울의 순창조씨 조종부(趙宗溥. 1715-?) 집의 것이었다. 물론 순창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유명세 때문에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입맛과 풍속 차이로 고생하는 한편으로 현지의 첩에게서 얻은 딸 문제로 아내와 다투던 남편은 정작 4년 만인 1850년 1월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그 뒤 12년을 더 살았다.
완주출신 다리군수 유범수(柳凡秀) 이야기도 저자의 노력으로 빛을 보았다. 과거 선거때마다 다리군수로 통했던 유범수. 완주군에 이어 고창군에서도 유군수가 만든 다리 기념비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작가가 2017년 10월 13일 취재 결과, 고창군 아산면 번암리 영모교 옆에 세워진 '아산초등학교 통학의 다리 준공 기념비'는 1966년 전북일보사가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한타깝게도 비석엔 날짜가 보이지 않았다. 유범수씨는 완주군수로 재직하며 다리를 세운데 이어 고창군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이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65년 3월 26일부터 1966년 12월 3일까지 제19대 고창군수로 일했다.
공음면 선동리 해정마을 양채용(梁采龍) 효자각의 사연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려각에는 비석 1기와 정려가 걸려 있다. 정면에는 ‘孝子贈童蒙敎官濟州梁采龍之閭(효자증동교관제주양채룡지려)’라 되어 있으며, 건립 연대는 고종 13년(1894)이다.
그는 18세가 되던 해에 어머니가 병석에 눕게 되자 저수지의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는 등 전국을 떠돌면서 약을 구했다. 양채룡은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뜯어 피를 내 어머니의 수명을 연장했으며, 끝내 상을 당해서는 예도에 따라 법도있게 치렀는가 하면 홀로 계신 아버지가 7-8년 동안 병석에 눕자 대소변을 손수 받아내는 등 극진해 간병했다. 그후 70세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면서 무릎을 꿇은 자리가 구덩이가 패였고, 머리털은 빗지 않아 칼로 잘라야 할 정도였다. 그가 1847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니 동몽교관에 증직됐다.
 저자는 또 고창읍성 북문 ‘공북루(拱北樓)’편액이 전북출신 창암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이 썼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김익두 교수가 최근에 발간한 ‘조선 명필 창암 이삼만 : 민족서도의 길을 열다’를 통해 이같이 주장한데 따른 것이다.
편액엔 ‘신유하완영과객서(辛酉夏完營過客書)’라고 나온다. 신유년(辛酉年)은 창암의 나이 32세가 되던 1801년이므로 그의 현전 가장 초년의 작품인 만큼 무엇보다도 풋풋함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또 ‘완영과객서(完營過客書)’는 ‘완영(완산으로 창암의 성씨 관향이 있는 곳이란 의미)’의 과객(나그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고창은 삼홍화(三紅花), 삼백화(三白花)가 유명합니다. 3홍화는 세 가지 붉은 꽃으로 동백, 철쭉, 꽃무릇를 말하고, 3백화는 세 가지 하얀 꽃으로 벚꽃, 녹차꽃, 메밀꽃이 있습니다. 선운사 3홍은 동백, 꽃무릇, 단풍을 말합니다’
 저자는 고창의 자랑 3홍화·3백화를 처음으로 명명, 눈길을 끌고 있다. 이와 함께 사전에 실린 자랑스런 그 이름 고창을 소개했으며, 이순신 이름이 새겨진 무장 고인돌, 선운사 사천왕상의 탐관오리와 음녀, 무장읍성 정후권 영세불망비와 꽃병, 동학농민군이 부른 당뫼골 민요, ‘호남가’에 나오는 고창읍성과 무장, 흥덕, 전라감사 이서구와 구시포도 소개됐다.
 무장 객사를 송사지관으로 부른지 사연을 소개하며,  대목장 유익서, 이병학, 고창 성산과 송태회, 여창 소리꾼의 고장 고창, 기생이 만든 강선교, 공음 씨앗등의 새 아씨,  고창이 왜 한반도 첫 수도인가, 이순신장군이 고창에 왔을까,  무장 효자 지방관이 쓴 다라니경 593년 만에 보물된 사연,  위봉진 행차도가 고창에 있는 까닭, 불갑사 사천왕상은 고창 연기사의 것,
백제의 노래 `선운산곡'가사 발견,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선비 오희길, 풍암정 등을 휘호한 명필 윤용구, 방호정사에서 인재를 가르친 최익현, 연꽃 문양 희귀한 흥덕 당간지주, 황윤석이 석실서원을 찾은 이유, 모로모로 탐방열차는 언제 왜 놓였나, 김유신을 향사하는 남산사 등도 소개, 역사와 인문학의 만남을 도모했다.
 문학 속의 배경지 고창과 고창 꽃담은 오랜 연구의 산실로,  이 책의 압권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우리 동네 꽃담』, 『한국의 옛집과 꽃담』,『이 땅의 다리 산책』, 『한국의 다리 풍경』, 『한국의 미 꽃문』 등 22권의 책을 펴냈다.
 현재 전주독서대전 추진협의체 위원, 2030 전주 문화비전 수립 자문위원, 전주 문화특별시 시민연구모임 멤버, 한국서예교류협회 홍보 및 기획 이사로,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 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