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바위에 서린 애화
완산부성의 동남쪽 손방으로 동고진을 안고 돌면 미구하여 사대원지가 나서고 다시 조금 걷노라면 맑기가 거울같은
새파란 물이 괴었다 돌아나가면서 파랑지는 여울을 이루고 있다. 이 여울에 잠긴 바위등성이를 가리켜 「각시바우」라 부른다. 그리고 이 도량을
벗어나서 냇가에 있는 절 벽상의 바위는 서방바우라고 하는 한쌍의 부부암이 있다. 언제부터 전하여 내려 오는지는 모르지만 이 고장 태생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하게 잘 알려진 부부암인 것이다. 노구바우 실티에서 발주하여 만마관 골짝을 꼬리치며 내리닫는 청간수는 이부부암인 각시바우 언저리에
와서는 두리벙벙 여울재 돌다가 부성의 은하수로 치는 남천 물줄기로 되어 세양포를 바래논 듯 부시게 내린다. 그러기에 부성 변두리 치고는 나연이
주는 유일한 욕탕처로 이 고장 태싱들은 물론이요, 잠시라도 기식의 인연을 가진 인사라면 이곳 주변에 차린 저 유명한 사대설의 풍치를 내다보면서
일일영주로서 물에 잠기던 것을 잊을없으리만치 파다하게 알려진 소요처인 것이다. 그렇듯 알려진 이곳 부부암인 각시바우란 대체 어떤 연유에서 전래된
이름인지 그 내력이 궁금하다. 언저리 서방바우 역시 그렇다. 설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 이 고라당에 장가든 지 얼마 아니된 아들 내외가 살았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 고부 사이에 의가 맞질 않아 시어머니 되는 분이 새댁인 며느리에 대한 무실한 구박이 날로 자심해지자 그 며느리 되는 새댁은
견디다 못해 한스런 청춘을 이 바위 밑 푸른 여울에 날린 것이 실마리가 되어 각시바우라고 부르게 됐다는 연원이고 또한 새댁의 그 애절한 죽음을
그리다 못해 남편되는 신랑도 물에 몸을 던져 따랐다는데서 이처럼 서방바우로 지칭되면서부터 부부암으로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또 일설에는 그것
역시 아주 먼 옛날 어느 늦은 가을날이라고 한다. 신행길을 재촉하는 신부의 꽃가마가 이곳에 당도하여 비켜가다가 가마꾼의 잘못으로 그만 발을
헛디디자 마자 이끼긴 바위 등에서 뒹굴어 여울 속으로 휩쓸려 말려들자 뒤따르던 신랑 역시 엉겁결에 신부를 구한다는 게 그도 그만 미끄러져 빠져
버렸다는 것으로 전한다. 그래서 신랑 신부 모두 화촉동방 원앙침의 꿈을 못이룬채 수중고혼이 됐다는 애화가 담긴 바위로도 알려진다. 어쨌든
그런데서 설화인지 지금은 자세히 보이지 않으나 바위등성이 ‘찰랑이는 곳을 헤치고 보면 당시의 꽃가마가 떨어지는 찰라 부딪힌 가마체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돌고 있다고 이고장 고로들은 전한다. 이렇듯 애틋한 애화로 젖은 이 각시바위는 한여름이 되면 부성 안 시민들의 더없는 놀이터로 높이
알려진 곳이다.(전주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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