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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새통

완산승경을 아세요?




 
 

‘전주와 완주의 32가지 ‘완산승경(完山勝景)을 아세요'
전주문화원 김진돈 사무국장이 향토학자 고 이철수선생이 지난 1971년 10월 펴낸 ‘완산승경(전주청년회의소 발간)’이란 책자를 헌책방에서 찾아내 새전북신문에 공개했다.


예로부터 전주와 완주 일대에는 ‘완산승경(完山勝景)’, ‘전주팔경(全州八景)’, ‘전주십경(全州十景)’ 등이 전해 내려왔다. ‘전주팔경’은 ‘완산팔경(完山八景)’, ‘전주십경(全州十景)’은 ‘완산십경(完山十景)’이라고도 한다. 전주의 옛 이름이 완산이기 때문이다.
‘승경(勝景)’은 ‘뛰어나게 좋은 경치’를 말한다. ‘완산승경’ 가운데는 좋은 경치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지역도 포함되어 있다. ‘전주팔경(全州八景)’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완산승경’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설다.


이 책자를 보면 ‘완산승경’은 모두 32곳에 이른다. ‘완산승경’ 가운데는 ‘전주팔경’ 5곳이 포함됐다.
하지만 ‘완산승경’은 옛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없는 곳이 여러 곳이다. 구진융마, 만마도관, 사대병암, 운제백련, 은석동학, 죽림천엽 등은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김진돈 사무국장은 “전주와 완주 일대에 오래 전부터 완산승경(完山勝景) 32경이 있었던 것을 보아도 전주와 완주는 같은 고장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면서 “그러나 ‘완산승경(完山勝景)’은 전주와 완주 지역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알아보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이종근기자



예로부터 전주와 완주는 원래 같은 고장이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땅이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 땅이었으며 완산으로 불렀다. 전주와 완주가 완산주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래 1,380년 동안 같은 행정구역이었다. 신라시대에도 완산주라고 불렀으며, 오늘날 행정 구역상 나눠져 있을 뿐이다.<편집자 주>




▲ '완산승경' 책자를 새전북신문에 공개한 전주문화원 김진돈 사무국장

 

 

전주와 완주 일대에는 32경을 의미하는 완산승경(完山勝景), 완산팔경, 완산십경 등이 고루 걸쳐 있다. 승경과 8경이 양쪽 지역에 고루 섞여 있는 것은 두 지역이 같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승경(勝景)이란 ‘뛰어나게 좋은 경치’를 말하며, 역사성이 있는 유명한 지역도 상당수 있다.
이철수의 ‘완산승경(完山勝景)을 보면 ‘완산승경’은 모두 32곳에 이른다. ‘완산승경’ 가운데는 ‘전주팔경’ 5곳이 포함됐다.






‘완산승경’은 △기린토월(麒麟吐月, 전주시내 기린봉), △유연낙조(油然落照, 전주시 중화산동 유연대), △완산칠봉(完山七峰, 전주시내 완산칠봉), △한벽사경(寒碧四景, 전주시 교동 한벽당), △동성수납(東城睡衲, 전주시 교동 승암산 동고사), △남고모종(南固暮鐘, 전주시 동서학동의 남고사), △사대병암(四大屛岩, 완주군 상관면 대성리의 사대원), △은석동학(隱石洞壑, 전주시 색장동의 은석골), △다가비설(多佳飛雪, 전주시 다가공원), △오목요대(梧木瑤臺, 전주시 교동 오목대), △간납자규(諫納子規, 전주시 남노송동 간납대), △진북쇄월(鎭北灑月, 전주시 진북동 진북사), △가련청람(可連晴嵐, 전주시 덕진동 가련산), △덕진채련(德津採蓮, 전주시 덕진공원 연꽃), △건지송뢰(乾止松籟, 전주시 덕진동과 송천동의 건지산), △삼천세우(三川細雨, 전주시 삼천동의 가랑비), △단암공영(丹岩空影,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의 단암사), △모악요하(母岳繞霞, 완주군 구이면의 모악산), △죽림천엽(竹林千葉,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마을) , △만마도관(萬馬道關,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의 만마관), △법사장한(法史長恨, 전주시 금상동의 회안대군 묘소), △구진융마(九進戎馬,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구진벌 전쟁터), △동포귀범(東浦歸帆, 완주군 봉동읍 장기리의 동포), △대아수간(大雅垂竿, 완주군 동상면 대아저수지), △고달귀운(高達歸雲, 완주군 구이면과 상관면의 고달산), △보광유경(普光幽徑, 전주시 동서학동의 보광사), △경각심홍(鯨角深紅,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의 경각산), △대천파설(大川波雪, 완주군 삼례읍 한내천), △황방폐월(黃尨吠月, 전주시 황방산), △위봉폭포(威鳳瀑布,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의 위봉폭포), △운제백련(雲梯白蓮, 완주군 화산면 운제골의 백련), △대둔천잠(大屯千岑, 완주군 운주면의 대둔산)이다.





예로부터 전주엔 ‘부성삼화(府城三花)’가 전해오고 있다. 이는 전주의 아름다운 꽃 3가지로, 동고산(승암산)의 진달래, 다가(봉)산의 입하화(立夏花, 입하는 절기), 덕진지당(연못)의 연화(蓮花, 연꽃)를 말한다.
덕진 연못과 연관된 곳에는 주로 ‘연(蓮)’자가 많이 들어 있다. 연지문, 연지교(덕진공원 밖), 연지정, 연화정, 연화교(덕진공원 안) 등이 있다. 또, ‘취향정(醉香亭)’은 박기순이 자신의 회갑 기념으로 연꽃 향기에 취한다는 ‘취향정’을 세우고 지인들과 함께 시회(詩會)를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덕진채련(德津採連)’은 완산8경의 하나로, 풍월정에 앉아 저녁 노을과 달빛을 끼고 뜸부기 우는 호면(湖面)의 피리 소리 실은 어화에 젖은 채 맞은 편 승금정을 내다보는 던진연못의 풍경을 이름한다. 덕진공원 입구의 ‘연지문’은 강암 송성용선생의 글씨이며, 바로 아래에 세로로 쓰인 ‘전주 덕진공원’은 ‘여태명’, 그리고 좀더 가면 만날 수 있는 취향정은 ‘조기석’, 또 연지정과 연지교는 ‘권갑석’선생이 휘호한 작품이다.
기린토월(麒麟吐月)은 최공의 경치로 손꼽힌다. 이는 ‘기린봉에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말한다. 토월(吐月)은 토할토(吐), 달월(月)로 ‘달이 떠오른다’는 의미다. 기린봉 정상에서 비갠 후 여의주처럼 솟아오르는 달이 바로‘기린토월(麒麟吐月)’이다.

한벽사경은 ‘한벽루의 사계절 풍경’을 말한다. 사경(四景)은 넉 사(四), 경치 경(景)으로‘네 가지 경치 즉 사계절의 경치’를 의미한다. 한벽당은 완산팔경 가운데 ‘한벽청연(寒碧晴煙)’에도 등장한다.
승암산 기슭의 절벽을 깎아 세운, 전주 옥류동고개 옆 한벽당(寒碧堂, 전북 유형문화재 제15호)은 일찍이 유생들이 풍류를 즐기고, 각시바우, 서방바우에서는 아이들이 고기잡고 멱감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여름철 집중 호우때면 갑자기 불어나는 물로 아찔했던 기억도 있다. 아주 오래 전에는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이곳을 찾았으며, 그들이 제영(題詠)한 시가 많이 전해오고 있다. ‘호남읍지(湖南邑誌)’ 등에는 이경전, 이경여, 이기발 등 20 여명의 저명한 인사들이 한벽당에서 지었다는 시문이 지금도 게첨돼 있는 등 그 시절의 풍류를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애시당초엔 여기를 최담(1404년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집현전직제학 등을 지냄)의 호인 월당(月塘)을 따서 월당루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한벽당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벽옥한류(碧玉寒流)’라는 글귀에서 ‘한벽(寒碧)’이라는 어구를 따서 후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아닌가 추정될 뿐. 그러나 ‘한벽청연(寒碧晴烟)’으로 완산팔경의 하나였던 이곳이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고고한 선비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슬치에서 시작된 상관 계곡의 물은 좁은목을 지나 이곳 한벽당 바윗돌에 부딪쳐 흰 옥처럼 부서지면서 한옥마을 앞으로 우회하게 된다. ‘벽옥한류(碧玉寒流)’라는 이름을 붙은 연유다. 예전에는 동고산성 자락과 남고산성 자락이 이어져 한벽당에서 보면 마치 폭포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한벽당 앞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서서히 사라져 가는 모습을 가히 절경이라 했으며, 전주향교가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까닭에 전주의 선비들이 이곳에서 전주천을 바라보며 시조를 읊었을 터이다. 양귀자씨의 단편소설 ‘원미동 사람들’에도 그 일부의 모습이 소개된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을 받아온 한벽당도 시대가 변하면서 아픔을 겪어야 했다. 등 뒤로 전라선이 지나며 굴이 뚫렸는가 하면, 허리 옆으로는 17번 국도가 생기면서 예전의 풍취는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완산승경’은 옛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없는 곳이 여러 곳이다. 구진융마, 만마도관, 사대병암, 운제백련, 은석동학, 죽림천엽 등은 옛 모습 그대로를 볼 수가 없다. 때문에 두 지역에 걸쳐 있는 여러 승경은 전주와 완주 지역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알아보는데 좋은 자료가 될 터이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