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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꽃담

대전시블로그공모전(회덕동춘당굴뚝에 태극과 8궤의 비밀)



 대전 나들목이 가까워 오니 선비마을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저 선비마을이란 이름이 분명 송촌, 즉 송씨마을을 이름하며, 조선 중기 한 시대를 풍미한 우암 송시열(1607-1689)선생과 동춘당 송준길(1606-1672)선생 즉, 양송이라 불리우던 두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이들은 서예에도 영향을 미쳐 제일 먼저 양송체와 미수체를 출현시켰다. 율곡학파의 적통을 이은 양송은 웅대하고 힘차며 장엄하고 정중한 무게를 더하고 있다. 석봉체를 근간으로 도학자 글씨의 전형을 심획(心劃)’으로 실천하며 진경시대 문예부흥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동춘당이 위치한 마을은 윗송촌(상송촌, 원송촌). 송씨들이 많이 살아 송촌이라 하였는데, 이는 상송촌과 아래송촌 가운데 상송촌이 송촌의 중심이 된다 하여 원송촌이라 부르고, 아래송촌은 현재의 중리동이다.

송시열과 송준길은 인조 이래 숙종 때까지 충청도 지역 지식인들이 중앙 정계를 장악하고 일세를 풍미하게 만든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그러나 송준길은 송시열과 동종동문이라고 하여 양송으로 불리며 우암의 그늘에 가려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 당시의 사회적 혼란, 예의 문란, 풍속의 타락, 기강 해이, 사학의 성행 등과 같은 모든 폐단이 주자학이 올바르게 서지 못한 데에서 출발한다고 해석함은 물론 주자학에 기초한 전통적인 정주이학을 올바르게 세우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 비로소 이상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 송준길의 말은 오늘날에도 통용된다.

 하물며 이곳의 지명이 회덕(懷德)’임에랴. 늘 덕을 품고 살고픈 옛 사람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보물 제209호로 지정된 대전 회덕 동춘당(대전 대덕구 동춘당로 80)은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선생의 별당이다. 늘 봄과 같다(與物同春)’는 뜻의 동춘당(同春堂)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한 유형으로, 구조는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크지 않다. 대청의 앞면, 옆면, 뒷면에는 쪽마루를 내었고 들어열개문을 달아 문을 모두 들어 열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차별없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다.



, 대청과 온돌방 사이의 문도 들어 열 수 있게 하여 필요시에는 대청과 온돌방의 구분없이 별당채 전체를 하나의 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의 받침은 4각형의 키가 높은 돌을 사용했는데, 조선 후기의 주택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동춘당은 굴뚝을 따로 세워 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왼쪽 온돌방 아래 초석과 같은 높이로 연기 구멍을 뚫어 놓아 유학자의 은둔적 사고를 잘 표현하고 있다. ,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도 부덕하게 여겼기 때문에 굴뚝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유학적 덕목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특히 격담의 사랑채 뒤안에 있는 태극 문양과 괘를 넣은 (꽃담)굴뚝이 꽤나 인상적이다. 넓적돌과 백회로 굴뚝을 쌓아 올라가다 살짝 문양을 만들었으리라. 이 굴뚝은 서로 편가르기가 아닌, 상생과 조화를 추구하려는 선비정신 같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값진 교훈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랑채의 중문을 들어서면 옹색하지 않은 크기의 안마당이 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내외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담이 처져 있다. 이 격담의 사랑채 뒤안에 있는 태극 문양과 괘를 넣은 굴뚝이 꽤나 인상적이다. 넓적돌과 백회로 굴뚝을 쌓아 올라가다 살짝 문양을 만들었음이 목도된다.

태극은 천지가 개벽하기 이전의 상태로서 우주 만물 구성의 가장 근원이 되는 본체를 일컫는다. , 양의 조화를 나타내며, 붉은색은 양, , 하늘을 뜻하고 푸른색은 음, , 땅을 뜻한다. 때문에 태극의 본질은 서로 파멸이 아닌, 공존공생함에 있다.



고려시대 개성의 공민왕릉에도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고 하며,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의 능에도 이것이 있으며, 경주계림로보검(미추왕릉, 경북 경주시 인왕동, 보물 제635) 칼집에 해당되는 부분 위쪽에 납작한 판에는 태극 무늬 같은 둥근 무늬를 넣었다.


                                                                                

이곳의 꽃담은 절제와 균제를 삶의 자세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고자 하는 노력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가치라고 가르쳐준다.



송준길이 하늘을 섬기고 신을 섬기는 도리는 제물의 크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그것이 의리에 합당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볼 뿐이다고 말한 데에 힌트가 숨어 있다.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글귀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바야흐로, 계족산에 저녁 노을이 물들고 있다. 태양은 항상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존재를 가끔 잊고 살지만 한순간 한순간 기억을 더듬어보면 태극이 공존하므로 괴로운 기억보다 즐거운 추억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

 

 

 동춘당문화제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 동춘당 송준길선생 탄생을 기리는 행사로 해마다 동춘당공원에서 열린다.

선생의 학풍과 인격을 현대 감각에 맞도록 재조명하여 테마가 있는 전통축제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확산을 도모하고 신명이 살아 숨쉬는 축제를 통해 주민화합 및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해 대덕구 출신인 송준길의 호 동춘당에서 축제 명칭을 차용하여 1996년부터 개최해오고 있다.

2006년 동춘당 탄생 400주년을 맞은 이래, 이 축제를 유교 문화와 관련된 전국적인 축제로 발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