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에 215개의 우물과 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수면 대정리(大井里)는 형성된 지 꽤 오래된 곳으로, 야자형(也字形)이라 하여 대야촌(大也村)으로 불러오다가 마을 안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큰 우물이 있음을 특징삼아 큰대(大)자 우물정(井)자 대정이라 부르게 됐다.
지금도 마을 한 가운데에는 큰 우물이 존재하며 마을의 생활용수로 활용하고 있다. 지사면의 대정리도 우물 때문에 생겨난 지명이다.
임실문화원이 ‘임실의 우물과 샘’을 펴냈다. 관내의 12개 읍면 253개의 마을을 대상으로 연구에 착수, 215개의 우물과 샘에 어린 이야기와 전설, 민속 등을 망라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기록으로 본 우물, 현대인의 우물, 우물 연가 등과 함께, 임실, 청웅 등 12개 지역의 우물을 소개했으며, 부록에 우물의 명칭, 위치, 형태, 규모 등을 꼼꼼하게 챙겼다.
오수 방축마을의 효감천은 비석이 전하고 있다. 비석 전면에 “양진당하공효감천(養眞堂河公孝感泉)”이라 새겨져 있으며 후면의 효 감천기(感泉記)는 완산 최병심(完山崔秉心)이 글을 짓고 이기영이 글을 썼다.
현재 주위의 환경은 마을 앞 전체가 경지 정리가 되어 있고 과거의 큰 길도 없어졌으며 우물도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옛날에는 마을 전체가 이 우물을 사용했었다고 한다. 효자 하만리는 1597년에 출생, 일찍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극진히 섬겼는데, 어느 날 모친이 병환 중에 생선을 먹고 싶다 하시는데 때가 추운 겨울이라 어쩔 수 없이 공은 삼계천(三溪川)에 가서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으려 했으나 도저히 잡을 도리가 없자 어머님의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하늘에 애원 하며 또한 눈물로 호소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앞 우물가를 지나는데 샘물이 갑자기 요동을 치기에 구부려 살펴보니 한자(一尺)가 넘는 큰 고기가 있는지라 잡아다가 보양하니 어머니의 병환이 나았다. 이를 알고 마을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고기는 원래 이 샘에 있었던 것이 아닌데 이것은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일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이런 연유로 지금까지 이 우물을 가리켜 '하공효감천(河公孝感泉)'이라 이름 부쳐 전해지고 있다. 성수면의 상이암의 우물은 고려의 왕건과 조선의 이성계가 먹지 않았을까 추정되며, 오수천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최성미 임실문화원장은 “이번 조사로 인해 지역마다 특색있는 임실의 독특한 생활 문화를 찾게 됐다”면서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과 함께 간단한 글로 남기게 됐다”고 말했다. 임실문화원이 이와 함께 펴낸 ‘고고학으로 본 임실’은 군산대 박물관과의 협업을 통해 선보이고 있으며, ‘운수정담’ 14호는 사라진 진구사지 삼족 화로(군산 동국사 종걸스님)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채워졌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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