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비롯, 부안 변산 등에서 변산바람꽃이 피면서 꽃바람이 일기 시작하더니 복수초와 너도바람꽃, 노루귀, 꿩의바람꽃이 꼬리를 물고 꽃봉오리를 활짝 터뜨리며 전국을 뒤덮고 있다. 급기야 산이 산을 껴안고 강이 강을 휘감아 도는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도 봄바람, 꽃바람이 불어 화창한 봄날이 무르익고 있음을 알린다.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가 거의 그렇듯 허리를 숙이고 낙엽 더미나 돌 틈 사이를 세심하게 살펴야 방긋 웃는 ‘변산아씨’의 환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키는 물론 굵기 또한 콩나물 줄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가냘픈 줄기에 달덩이처럼 희고 둥그런 꽃을 한 송이씩 달고 있는 변산바람꽃은 지역에 따라 2월부터 4월 사이 북풍한설이 주춤하는 사이 잠깐 피었다가 이름 그대로 바람처럼 사라진다.
도도하게 피어나 자연생태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변산바람꽃이 학술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3년. 전북대 선병윤 교수가 변산반도 내변산에서 채집된 표본을 근거로 한국특산종으로 발표하면서부터다. 따라서 학명에 첫 발견지인 변산(byunsanensis)이 속명으로 들어갔고, 선 교수(B.Y.Sun)도 발견자로 그 이름이 표기됐다. 그런데 다행히도 자생지가 변산반도 등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누구나 조금만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면 손쉽게 만나볼 수 있다. 변산바람꽃은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에란디스(Eranthis)속 식물로 ‘er(봄)’와 anthos(꽃)의 합성어로 이른 봄에 피는 식물이 꽃에게 붙여진 속명이라고 한다.
‘급하기도 하셔라/누가 그리 재촉했나요,/ 반겨줄 임도 없고/차가운 눈, 비, 바람 저리 거세거늘/행여/그 고운 자태 상하시면 어쩌시려고요/살가운 봄바람은, 아직/저만큼 비켜서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어쩌자고 이리 불쑥 오셨는지요./언 땅 녹여 오느라/손 시리지 않으셨나요./잔설 밟고 오시느라/발 시리지 않으셨나요…’(이승철의 ‘변산바람꽃’ 중에서)
복수초와 함께 봄의 전령사로 꼽히는 변산바람꽃의 발 빠른 개화에 대해 이승철시인은 “남들은 아직 봄 꿈 꾸고 있는 시절 첫 계절을 열어 고운 모습으로” 서둘러 온다며 “누가 이름이나 기억하고 불러줄까”하고 반색하면서도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부안군 상서면 청림마을은 십수 년 전부터 변산바람꽃의 자생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인 만큼 잘 이를 지켜내야 한다. 오늘도 야생화인 변산바람꽃은 봄 기운이 완연한 지금 조용히 허리를 낮춰 수줍게 세상과 인사하고 있다./이종근 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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