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高敞)은 마한시대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백제 때는 모양부리(毛良夫里)라 부르다가 신라 경덕왕 때 고창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고창은 모양(牟陽),무할(無割)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임공빈 선생에 의하면 고창은 ‘마라부리’로 ‘마라’는 모양(毛良)의 음으로 ‘높다’라는 의미로, ‘부리’는 백제 때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해석합니다. 삼국시대 사용된 지명은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 사용하였기 때문에 한자를 풀이하게 오류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창지역에서 발간한 책자에 ‘보리골 고창’이란 책을 출간했는데, 이는 모양(牟陽)에서 따온 말인데, 모자가 ‘보리 모(牟)’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고창은 청보리밭 축제로 세상에 보다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삼태(고창군 성송면 하고리)마을숲을 가족과 함께 찾았습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함께 여행을 떠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함께 떠날 기회를 갖고자 하는데, 마을숲 이야기가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 삼태 마을숲은 작년 ‘생명의 숲’에서 주관하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숲입니다. 삼태 마을 왕버들나무숲은 이미 2002년 8월 2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 117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수령이 오래된 왕버들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례는 많으나 왕버들나무숲이 지정된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삼태마을 왕버들나무숲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뒤늦게 아름다운 마을숲 수상자로 이력을 올림 셈입니다. 왕버들나무는 개울가와 호수가 등지에 서식하며, 습지에서 잘 자라 수원(水源)의 지표식물이기도 합니다. 왕버들나무는 버드나뭇과에 속한 낙엽교목활엽으로 버드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게 자라기 때문에 왕버들나무라 부릅니다.
삼태 마을숲은 암치마을에서 발원하는 대산천이 마을 앞으로 흘러갑니다. 마을이 형성된 이후 잦은 홍수로 인해 마을숲이 조성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삼태 마을은 풍수적으로 배형국이라 전해옵니다. 배는 화물과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으로 ‘항해하는 배’는 재물과 영화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배는 물에 떠다니는 까닭에 언제나 위험이 뒤따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주형 길지(吉地)의 안전을 위해 여러 가지 금기를 지키고 특별한 시설을 해 두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특히 행주형(行舟形)은 주로 양택(陽宅)에 사용되는 형국입니다. 그리고 키, 돛대, 닻을 구비하면 좋지만, 만약 이들 모두를 갖추지 못하면 이 배는 안정을 얻지 못해 전복되든지 또는 유실될 우려가 있습니다. (김두규) 그래서 삼태 마을에서는 배를 단단히 매어 놓지 않으면 마을이 떠내려 갈 모양새라 배를 단단히 매어 두기 위하여 닻의 역할을 하는 마을숲을 조성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마을에서 나무를 베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고 믿어 마을 사람 스스로가 오늘날까지 마을숲을 온전히 보존해 왔습니다. 삼태 마을에서 잦은 홍수가 마을의 심각한 위기를 불려왔고 이를 대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삼태 마을숲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대산천변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수종은 왕버들나무인데 이외에도 느티나무, 느릅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100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상류에서 마을로 내리치는 물길을 막기 위하여 아주 기다랗게 조성된 숲은 물길의 흐름을 늦춰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삼태 마을숲은 홍수로부터 마을뿐 만 아니라 마을 앞 옥토까지 온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조상들은 마을을 이루고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방법을 택하여 살아왔습니다. 그런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 중 하나가 ‘마을숲’이 아닌가 생각하며 전주로 향했습니다. /이상훈 전주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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