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향교와 경기전 일원은 수백 년된 은행나무 등 17그루가 오랜 역사를 이겨내 온 위용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낙엽 비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햇살도 눈부시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향교에는 오래된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맘때쯤 명륜당 앞에 쌓여있는 노오란 은행잎은 전주향교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면 왜 향교에는 꼭 은행나무가 있을까
전주향교에는 400살이 넘은 은행나무들이 서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다. 은행나무는 원산지가 중국 남부이지만, 수 천년 동안 우리나라 전역에 자라왔으므로 우리의 나무라고 할 수 있으며,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나무(자웅이주, 雌雄異株)이다. 은행(銀杏)은 열매가 살구나무의 열매를 닮아 은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행나무를 잎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수(鴨脚樹), 열매는 손자대에 가서 얻는다고 하여 공손수(公孫樹)라고 하며 또는 행자목(杏子木)이라고도 부른다.
옛 사람들은 향교에 반드시 은행나무를 심었다. 은행나무의 연륜이 그대로 향교의 역사가 된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에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를 행단이라 부르고 은행나무를 심어 유교적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알렸다. 공자가 강의를 하는 곳을 '행단(杏壇)'이라고 한다. 한자로 은행나무 행(杏)자보다 살구나무 행(杏)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은행나무는 공자의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을 의미한다. 또, 은행나무는 벌레가 슬지 않는 나무로 관직에 진출할 유생들이 부정에 물들지 말라는 뜻에서 주로 향교에 심었다고 한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부채꼴 모양의 샛노란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에 꽂거나 생각나는 사람에게 가을 소식과 함께 보낸 일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때 전주향교는 '성균관스캔들'을 촬영하던 날이면 어린 소녀 팬들이 몰려들어 뜨겁게 몸살을 앓았다. 꽃미남 유생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향교 안을 여전히 맴돈다. 이제는 먼 곳에서 한옥마을을 찾은 객들이 소슬해진 전주향교에 들러 퇴락해 가는 명륜당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힘겹게 생명을 버텨온 늙은 은행나무에 나도 등을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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