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향교는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조선시대 남원도호부 내의 남원 유생들을 위한 국립 중등 교육 기관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4성(四聖 : 안자, 증자, 자사, 맹자)과 송나라 때의 6현(六賢 :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그리고 우리나라의 역대 18현인 제사를 지내는 곳이며, 유생들의 학습도장으로 윤리를 밝히는 명륜당이 자리하고 있다.
남원향교 들어가는 초입에는 오래된 하마비가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입구에는 진강루의 건물이 웅장함을 드러내고 있다.
즉, 진강루는 일제강점기 때 과거 남원성 내의 동헌의 문루로 쓰였던 환월루가 일제에 의해 문화재적, 역사적 가치가 훼손될 위기에 처해지자, 남원의 지역 유지들이 의연금을 걷어 환월루를 현찰 매입한 뒤 분해와 조립 과정을 통해 남원향교의 출입문격인 진강루로 재탄생시킨 사건은 남원인들의 자존심과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커다란 계기로 작용했다.
진강루의 편액은 무주,고창, 김제, 남원군수를 역임했던 진재 배석린(1884-1957)의 행서 필의가 있는 해서 글씨이다.
배석린은 성산배씨로 영동에서 태어났으며, 오랜 관직생활을 하였고, 전북 일대에서 일생을 마쳤다. 1891년부터 가정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1906년 일어강습소에 들어갔으며 1908년 장흥의숙을 졸업했다.
그는 서화를 독학으로 배워 1924년 선전에서 묵죽으로 입선하고 이후에도 서예 및 산수화로 입상하였다. 특히 산수, 인물, 영모도, 화조, 사군자 등 다양하게 잘 그렸으며, 효산 이광열과 유당 김희순 등과 교유했다.
진강루는 오르는 계단이 없기 때문에 명륜당의 북쪽문을 통하여 들어간 다음 긴 통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진강루 내부에는 대들보에 용이 조각되어 있으며, 기둥 사이에는 화려한 단청과 조각품이 있다.
남원향교 대성전 왼쪽에는 사마재, 고직사, 교육관 등 부속 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1609년(광해군 1)에는 전라감사 윤안성과 남원부사 성안의의 주도 하에 지역 유지인 박대옥과 유인옥의 도움으로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재건하였다.
또한 1829년(순조 29)에는 사마재가 재건되었으며, 1850년(철종 1)에는 남원부사 김병교가 남원향교를 크게 중창하였고, 1876년(고종 13)에는 화재로 전소된 명륜당 건물을 남원부사 오달선과 유림 대표 72명이 모은 총 3,755냥의 자금으로 다시 세웠다.
남원향교의 명륜당을 비롯한 서고에는 조선시대 남원 선비들의 교육 기관답게 많은 서책 보유량을 자랑하고 있다.
비록 남원향교의 서고가 1876년(고종 13)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는 과정을 겪었지만 현재 ‘사서삼경’ 등을 포함한 귀중한 문집 등 600여 권의 장서가 보존되어 남원 지방 사료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남원향교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대제를 봉행해 왔으나 2007년부터의 석전대제는 양력 5월과 9월로 바꾸어 전국 모든 향교에서 봉행되는 석전대제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명륜당 편액은 송나라 주자의 글자를 집자한 글씨체로 호방한 필획과 강건한 느낌이 나며, 다른 향교에서도 같은 글씨체가 나타나고 있다.
남원향교 진강루와 명륜당의 건축 양식은 여느 향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진강루와 명륜당을 잇는 나무다리와 진강루 내부의 화려한 조각품과 단청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전북문화재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