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은 지역과 사람에 따라 달리 다양하게 내용이 알려져 왔으며, 주인공인 이몽룡과 성춘향도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지면서 시대를 달리하였다. 기본적으로는 춘향의 절개와 탐관오리인 변학도를 대비시켰지만 기생의 신분을 타파하여 양반집 규수가 되는 과정을 익살과 코믹으로 전개하고 있다. 어린 춘향의 몸과 마음을 모두 앗아간 이도령은 서울로 가고, 이도령은 신분의 굴레 속에서 보고 싶은 춘향이를 볼 수 없으니 과연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몽룡은 어머니가 꿈속에서 용을 보았기 때문에 과거에 급제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으며, 춘향은 산천초목이 생동하는 봄기운을 받아 태어났으니 이도령인들 그 미모와 향기에 취해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서울로간 이도령은 주야로 시서 백가를 숙독하니 글은 이백이요, 글씨는 왕희지라. 국가에 경사 있어 과거시험을 볼 때 글제가 평소 사랑하는 춘향이의 춘자가 들어가는 “춘당춘색이 고금동”이 아닌가.
이도령은 시지(試紙)를 펼쳐놓고 용지연에 먹을 갈아 황모(족제비털) 무심필을 반중등 덤벅 풀어,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체를 받아 일필휘지하니 상시관이 이 글을 보고 자자(字字)이 비점이요 구구(句句)이 관주(貫珠)로다.
이에 임금은 전라도 어사를 제수하시니 평생의 소원이라. 이에 남대문-청파역-동작-남대령-과천읍-수원-진위읍-성환역-천안읍-공주-은진-황화정을 거쳐, 장애미고개, 여산읍에 숙소 정하고
이튿날 서리 중방불러 분부하되 “너는 좌도로 중방 역졸 너희 등은 우도로 종사는 익산 금산 정읍 옥과 등을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라.” 분부한 후에,
어사또 통새암(통샘), 삼례 숙소하고 한내, 주엽쟁이, 가리내, 싱금정(승금정) 구경하고 숩정이(숲정이), 공북루 서문을 얼른 지나 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소강남(중국 강남) 여기로다. 기린토월(麒麟吐月)이며 한벽청연(寒碧淸煙), 남고모종(南固暮鍾), 건지망월(乾止望月), 다가사후(多佳射侯), 덕진채련(德津採蓮), 비비락안(飛飛落雁), 위봉폭포(威鳳瀑布), 완산팔경을 다 구경하고 차차로 암행하여 내려올 제 임실 국화들 근처에 농부가와 백발가를 듣는다.
이도령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남원으로 들어올 제 박석치를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산도
예보던 산이요 물도 예 보던 물이라. 남문 밖 썩 내달아
“광한루야 잘 있더냐. 오작교야 무사하냐.” 객사청청 유색신(柳色新)은 나귀 매고 놀던 데요, 청운낙수(靑雲洛水) 맑은 물은 내 발 씻던 청계수(淸溪水)라. 녹수진경(綠樹秦京) 넓은 길은 왕래하는 옛길이었다. 이때 옥중의 춘향은 염라대왕의 부름 앞에서 한가닥 실오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시를 남긴다.
去歲何時君別妾(지난 해 어느때인가 낭군과 이별을 했던고)
昨已冬節又動秋(엊그제 이미 겨울이더니 또 가을이 되었네)
狂風半夜雨如雪(광풍이 몰아치는 밤에 찬비는 눈처럼 내리고)
何爲南原獄中囚(어찌하여 남원 옥중에 죄수가 되었던고?)
지금은 오수 국화뜰을 지나면 오리정이 나오고 여기에 남원춘향제를 알리는 청사초롱이 처마 끝에 매달려 있다. 오리정은 성춘향이 언제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한양으로 떠나는 이몽룡을 눈물로 전별하던 곳으로 이별의 눈물이 고여 만들어냈다는 눈물방죽이 바로 앞에 있다. 오리정에서 북쪽으로는 춘향의 애간장을 다 태우며 이몽룡을 쫓아가던 춘향고개와 이별하는 아픔에 허둥지둥 따라가다 버선이 벗겨졌다는 춘향이 버선밭이 있다.
오리정 전면에는 유재 송기면의 아들인 강암 송성룡이 예서로 쓴 편액과 주변에는 노송이 어우러져 있다. 이 정자는 춘향과 이도령이 애절한 심정으로 석별의 정을 나눈 곳이라 해서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5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축은 2층 와가에 팔작지붕의 일자 익공형식이다. 이곳에 들러 춘향과 이도령의 애뜻한 사랑을 한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남원시청 최동열문화재담당 자료협조)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전북문화재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