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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얼차려

 육개장이 청양고추를 우러낸 것인지는 몰라도, 입안에 불이 난 것처럼 입술이 아릿라릿하게 얼얼해 온몸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면서도 숟가락질은 멈춰지지 않습니다. 정말, 지금도 얼얼하군요. 그래서 빨리 얼을 차려야 함이 마땅합니다.

 뛰고, 달리고,  쪼그려 뛰기는 군대의 얼차려는 기본으로 다리가 천근만근이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서 동료들이 힘들 생각을 하면 요령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군인들의 자발적인 훈련 참여를 유도하고 훈련 기강과 군인기본자세를 확립하기 위해 얼차려를 집행할 수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얼차려가 심하면 갑자기 눈에서 불이 번쩍하면서 왼쪽 뺨이 순간 얼얼하기도 합니다.

 어쩌다가 외국에 한 번 나가면 쇼핑몰 내에서 샤넬, 루이비통, 살바토레, 페라가모 등 명품 브랜드 전용관으로 형성된 구역 일대를 몰려다니면서 쇼핑에 열을 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종종 특권과 부패가 만연하고 독선과 아집이 횡횡하며 갈등과 반목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물질만능, 법과 원칙이 무시되고 오로지 돈과 권력이 판치는 가운데 사람은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습니다. 도덕을 외면하고 권력을 잡고자 하는 승자독식의 사회,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어 직업,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들,  끊임없는 가난과 질병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어르신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희망과 웃음을 잃은 국민들의 목소리는 간절하고 강렬합니다.

 이 시점에 얼이 있는 국민, 얼이 있는 국회의원,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 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우리 삶의 중심을 이루던 얼이 그 중심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얼이 빠진 세상이 된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를 문제 삼기는 커녕 얼의 실종을 알아채는 사람조차 거의 없습니다. 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안다면,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이 만사 젖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얼찾기에 나설 것입니다. 얼을 되찾지 않고서는 얼빠진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붙들고 아무리 씨름해도 힘만 소진할 뿐 해결책을 찾을 도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명리(名利)를 중시하지 않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기개이며 긍지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굴욕스러운 삶 보다는, 깨끗한 죽음을 택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믿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허기진 배를 부둥켜 안고도, 큰기침으로 자세를 애써 흐트리지 않으려 노력하던 우리네 조상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랑이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결혼에서조차 조건을 제일로 내세우는 얼빠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정신나간 세상이 눈 앞에 펼져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얼간이'가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얼간이’는 말 그대로 얼이 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들락날락 하는 얼의 속성 때문에 누구든 얼간이가 됐다가 다시 얼찬이로 돌아올 수 있지요. 얼간이가 되는 건  한순간이지만 한 번 바로잡지 못하면 오래 갑니다.

 ‘얼’이 살아야 ‘얼굴’이고, ‘얼’이 죽으면 ‘낯짝’이 됩니다. 얼이 나간 사람, 양심이 없는 사람의 얼굴은 얼굴이 아니고 낯짝이 되지 않나요. 얼이 들락날락하는 굴, 얼이 깃든 곳이 얼굴입니다. 얼이 있는 얼굴은 환한 얼굴이고, 얼이 나간 얼굴은 어두운 얼굴이죠. 얼굴은 있는가요, 낯짝이 있는가요, 얼이 있는가요, 얼이 빠졌는가요.

 얼은 곧 양심이고 기쁨이고 행복이고 성공의 열쇠요, 사랑이고 창조의 힘입니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미남형이나 미인형의 외모을 가진 얼짱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포토샵으로 수정해 올리는 등 변조되는 얼짱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얼이 깨어난 얼굴이 환해진 ‘얼짱 스타일’ , 저 자랑스런 한국인 맞아요, 얼른 얼른 모두 모두가, 얼을 차려 좋은 사람되면 좋겠습니다. 얼얼해야 얼차릴 수 있는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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